[민의련칼럼10] 민중의 추가부담 없는 의약분업 실시하라!  

회원 최용준
 
1999년초 우리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약분업의 '본질적' 목표가 '신자유주
의적 구조조정을 통한 질서 있는 시장의 실현'이라는 점을 비판한 바 있다(김
대중 정부의 보건의료 개혁 평가,「의료와 진보」19호). 의약분업이 '신자유주
의 전략의 일환'이라는, 어쩌면 가당찮은 주장은 예상대로 몇몇 의료운동가들
의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의약품의 분류, 임의조제의 근절, 
국민들의 불편 등의 문제 속에 파묻혀 있던 의약분업의 근본적 쟁점이 다름 아
닌 제도 시행에 수반되는 재정 부담 문제임이 더욱 분명해지면서 우리는 의약
분업에 대한 그간의 실질적 무대응을 중단하고 다시금 발언의 필요성을 절감하
게 된다. 

바로 오늘 정부는 '의약분업 관계부처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의약분업 대책을 
논의했다. 여기서 주사제가 사실상 분업 대상에서 제외되고 국무총리실 산하
에 '보건의료발전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의료계가 제기한 현안을 논의하겠다
는 입장이 발표되었다. 또한 복지부 장관의 입을 통해서가 총리 서리의 입을 
통해서 분업 시행 이후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의
약분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총리 서리가 주재한 범정부 차원의 제안에 대하
여 의사단체는 주초 다소간의 액션을 취하면서 정부의 조처를 못이기는 채 받
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예정된 폐업과 휴업을 지속 강행하여 끝내 파국 상태에
서 사태가 혼란으로 발전할 것인가? 오늘 정부 입장에 대한 의사단체의 반응
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우리는 의약분업의 시행이 이미 약사법에 따라 예고된 것이기는 해도, 의약분
업 추진이 '국민건강에 득이 되는 바람직한 제도로서 의약분업' 이상의 의미
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국내 제약산업 구조조정과 다국적 제약기업의 토대 
공고화, 중장기적 차원의 의료비 절감 효과, 의료기관 경영의 투명성 확보 등 
의료분야의 전근대적 관행의 근대화 등이 그것이다. 의사와 개국 약사의 입장
에서 중요한 것은, 따라서 그러한 근대화에 걸맞은 수입의 정상화이며 이것은 
의사든, 약사든 의료행위의 정상화를 전제하게 된다. 즉, 의사의 경우 리베이
트·랜딩 등 이른바 '의료비리'로 표현되는 전근대적 관행에 따른 수입선을 봉
쇄―이미 시행된 의약품 실거래가의 효과다―하고 진료수가의 단계적 조정을 
통해 '정상적인' 진료행위를 유도하는 것이다. 약사의 경우 의사와 마찬가지
로 실거래가 시행은 물론이고 의약분업을 계기로 이른바 '임의조제'를 근절함
으로써 이로부터 발생하는 수입선을 봉쇄하고 복약지도와 환자교육에 철저한 
약사 본연의 역할을 찾게하는 것이다. 이로써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
게'라는 '근대적'·'합리적' 의료 담론이 현실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양
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합리화'·'근대화'에는 비용이 든다. 복지부는 16일 처방료 및 조제
료 수가를 발표하면서 그 비용의 규모를 9,262억원으로 추산하고 절반을 국고
지원, 절반을 보험료 '조정'(인상이 아닌?)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지
역의료보험이 8,000억원 적자를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추가 국고지원
이 없는 상태에서 의료보험과 의약분업의 파국을 막으려면 결국 1조 2,600억원
을 감당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역의보 적자해결을 위한 보험료 인상폭
만 해도 지역 가입자의 28%에 달한다. 결국 의약분업에 대한 지난 2년여의 의
사·약사·정부·시민단체간의 가열찬 논쟁과 싸움은 결국 한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민중의 부담으로 귀결되고야 마는 것인가? 이것이 현재 정부에 의해 추
진되고 있는 의약분업을 그저 '합리화'·'근대화'라고 얼씨구나 환영하지 못하
는 중요한 이유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의약분업은 시행되기는 할 것이다. 그
러나 의사들의 저항이 제도 자체의 운영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국정 책임자의 단안이 요청될 것이며 또 의사들의 요구대로 보험수
가 조정이 선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재원의 출처와 관련해서 정부
가 극적으로 필요재원을 재정에서 충당케 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때 의
사들과 시민단체는 민중에 재정부담을 전가하지 말라고 과연 지금처럼 싸울 것
인가? 그렇지 않다면 제도 자체는 연기되더라도 이와 함께 수가 조정 계획도 
원점에서 재검토되어 이후로 미뤄질 것이다. 그러면 동네의원들을 비롯한 의사
들은 의약품 실거래가 하에서 의약분업이 철회되었다고 좋아라 할 것인가? 아
니면 정부안이 철회된 상태에서 다시금 '완전한' 의약분업을 실시하라고 지금
처럼 또 한 차례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의사들로서는 탈출구가 없다. 때는 이미 늦었다. 위의 두 가지 경우중 어
느 쪽이라도 수가 인상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아니면 수가는 제쳐 두더라
도 '임의조제' 근절되는 의약분업을 위해서는 간단 없는 싸움을 요구할 것이
다. 그러나 여전히 의사들의 주장은 지금처럼 사회적 정당성과 반향을 얻지 못
할 것이다. 그렇다면? 늦었더라도 총구를 제대로 겨눠야 한다. 의약분업의 기
술적 문제는 근거를 가지고 차차 보완하더라도 지금의 정부 발표대로 의약분업
의 재정 부담을 민중에게 지우려는 시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해야 한다. 의료
보험의 재원을 국민에게서 빼앗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부담
을 늘리라고 주장해야 한다. '임의조제' '의약품 분류' 어쩌고 하는 주장이야 
의사들 입장에서는 가장 강력한 논거중의 하나지만, 이 문제야말로 의약분업
의 시행 과정에서 진짜 실천적으로 해결할 문제다. '민중의 추가부담 없는 의
약분업 실시!'. 그 가능성에 여전한 회의를 가지면서도, 이런 방향으로의 의사
들의 전향이야말로 진짜 국민건강을 위하는 의사들의 유일한 선택(選擇)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점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의약분업 시행에 적극 나섰던 시민단체의 
이율배반은 지적되어야 한다. 지역의보 국고지원 50% 이행 없는 보험료 인상 
반대를 주장해 놓고서 의약분업의 재정 부담을 민중에게 지우려 하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서는 왜 이리 소극적인가? 내심 민중의 부담을 전제하고서 의약분
업 시행을 주장한 것은 아닌가? 지역의보 국고지원 이행 없는 보험료 인상은 
반대하고 의약분업 시행을 위한 보험료 인상은 찬성한단 말인가. 게다가 노동
운동, 예컨대 바로 오늘 기자회견을 한 보건의료노조가 의약분업 시행에 관련 
의료기관의 폐업을 질책하면서도 정부의 재정부담 전가에 대해 일언반구 한 마
디도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말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렇
게 '합리화', '근대화'의 가면을 쓰고서 시나브로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사고
마저 교묘하게 농락하는 것인가. 의약분업에 관여하는 시민운동, 노동운동은 
마치 정부당국자들 같은 태도를 벗어 던지고 진정 국민건강을 위하는 '민중의 
추가부담 없는 의약분업' 시행 주장을 제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 본 칼럼의 내용은 민중의료연합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