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15] 투쟁이 아니라 평가가 필요할 때  

회원 최용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은 투쟁도 필요하지만 평가도 필요할 때라고 쓰는 
것이 맞았을까. 그래도 나는 이제 평가의 긴급성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붙인
다. 투쟁이 아니라 평가가 필요할 때.

어제 정부가 보건의료발전 특별대책을 마련했다. 이에 의사협회와 전공의, 의
대생들은 수긍하지 않고 오히려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마침내 잠잠하던 
약사회도 목소리를 높일 태세다. 게다가 제약회사들조차 우리 나라 보험약가
가 미국의 3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나서고 있다.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까? 나는 이번 주말, 다음 주초를 지나면서 사태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한
다. 그러나 의사 측이 정부의 대책을 수용하면서 마무리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파국 상태로 나아가면서 마무리될지 가늠할 수 없다. 언젠가 한번 썼듯이 
지금은 그 누구도 사태 전체를 장악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사태를 다소 객관화시킨다면 이번 사태는 한국의 보건의료 문제-한
국 민중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를 포괄적으로 제기하였다. 의료인, 환자, 사회
운동의 그야말로 일부만이 문제 제기하고 외쳤던 문제들이 언론을 통해 한꺼번
에 쏟아지고 있다. 그간 잠자코 있었던 사회운동 쪽도 마찬가지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제기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문제
를 해결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장애물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가를 우리로서는 
재확인한 셈이다. 무엇보다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운동적 주체는 없다. 결국 의사와 정부, 두 당사자들에게 해결의 실마리가 쥐
어져 있는 것 같다. 이곳 저곳 게시판에 주장과 반박을 되풀이하는 동지들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그 노력이 사태를 반전시킬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여
전히 사회운동 차원에서 이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물리력의 충돌시기라 시민운동의 성명서와 여론몰이로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
을 것이다. 결국 의사 측의 내부 수습에 이은 타협을 통한 해결이냐 아니면 파
국을 통한 해결이냐 두 가지만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엄격한 평가와 분석이 더 필요할 때라고 보는 것이다. 그
간 민중의료연합 등 운동 진영에서는 사태의 궁극적 책임이 국가에 있으며 의
약분업에 이은 일련의 의료개혁이 신자유주의적 전략 속에 포섭될 위험에 관하
여 누차 강조해 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문제를 사회운동 진영에조차 설득
력 있게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인식의 연장선 위에서 어떤 실천으로 조
직하는 데 실패했다고 얘기해야겠다. 건강의 문제, 복지의 문제, 보건의료 문
제를 전략적 사회개혁 투쟁의 하나로 위치짓지도 못한 셈이다. 사실 이 문제
에 관해 의약분업 추진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일부 노동운동, 시민운동
은 의견을 전혀 달리했던 측면 역시 존재한다. 

의사집단에 대한 태도, 또 그 태도를 결정 짓는 냉정한 분석이 부족한 것도 사
실이라고 본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채만수 부소장의 "의사를 포함한 보
건의료 종사자들을 가능한 최대한으로 우군으로 견인하고 그들과 함께하면서, 
무엇보다도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의 극복, 보건의료체계의 국유화·사회화
를 요구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라는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 하더라도, 가능한 
최대한으로 견인하는 데 판단과 전략은 필요한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
만, 나는 궁극적 책임이 국가에 있고 그를 향한 의사집단의 주장이 일견 타당
성 있더라도,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그 결과적 본질이 '반민중적 전문주의'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이해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자본주의가 조장
하는 개인주의, 과학주의 속에서 '전문성에 기반한 독점의 논리'가 그들 논리
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군으로의 견인 문제'는 오히려 더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전근대적인 의사집단의 사고 방식과 행동 
양상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사태의 진전은 표면적인 정부-의사간
의 힘겨루기와는 별개로,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장단에 맞춘 반민중적 전문
주의의 춤바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의사 개인의 고뇌와 항변과는 전혀 별개
로 말이다. 

그래서 투쟁이 필요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욱 평가를 강조하고 싶다. 결국은 맥
을 닿게 된 건강보험의 문제, 의료체계의 문제, 의사들의 자율성·전문성과 노
동자 민중의 참여권·자결권의 문제가 더욱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양상으로 대
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의 처지에서는 이들 문제를 보건의료 정책과 
제도 문제이기 전에, 사회 전반의 쇄신과 변화의 문제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권리 속에 포괄시켜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먼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지금은 아무 의미 
없는 논의가 되었지만, 학생 시절 민족해방운동의 맥락에서 의사대중운동을 주
장하던 사람들은 의료대란 속에서 문자 그대로 용해되어 버렸다. 노동자 민중
을 옹호하던 학생들은 이제 의사가 되어 집단행동의 지도부로 자리 잡고 있
다. 그들의 개인적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럴수록 사태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옛적의 좋은 생각, 지금도 고뇌케 하는 소망을 조금이라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본 전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