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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항쟁 온전한 복원, 남은 과제 많다 우익 반발 딛고…진상보고서 한계 딛고 나아가야 제주 4·3항쟁(아래 4.3)이 55돌을 맞았다. 3일 제주에서 열린 희생자 위령 제에는 사상 처음으로 고건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대표들이 참석했고, 지난달 29일에는 4 ·3이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인권침해'였음을 인정한 4·3진상조사보고서가 정 부차원에서 채택되기도 해 4·3의 위상이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4·3 의 온전한 역사적 의미가 복원되고 과거와 같은 대규모 인권유린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익세력들의 마지막 발악 우선 제주4.3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가 진상보고서를 채택하 는 과정이나 보고서 채택 이후 가해지고 있는 우익세력들의 압력은 4·3의 온전한 복원 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4.3진상보고서는 4·3특별법에 따라 2001년 1월 구성된 4·3진상보 고서작성기획단(단장 박원순 변호사)이 2년여의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 미군 정 하의 군· 경 토벌대와 서북청년단 등에 의해 엄청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음을 밝혀낸 소중한 성 과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신고된 희생자의 수만 해도 1만4천여 명에 이르고, 미확인 희생자까지 포함하면 희생자 수는 2만5천∼3만 명에 이른다. 이중 78% 정도가 군·경 토벌 대에 의해 이뤄졌다. 보고서는 또 이러한 민간인 학살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가혹히 탄압하라"는 명령에 의해 이뤄졌고, 미군도 진압작전에 개입했음을 밝혀내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채택되는 과정에서 김점곤 진상규명 위원(경희대 명예교 수)이 '보고 서의 좌편향'을 지적하며 사퇴하는 한편, 보고서 채택 이후에는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나 서 "진상규명이 보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등 보고서의 의미를 깎 아내리려는 우익세력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 우익단체인 헌법을생각 하는변호사 모임도 신문광고를 통해 "4.3은 공산무장폭동"이었다며 "살인자들을 희생자라 며 명예회복 을 시키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고 총리 역시 보고서 채택 당시, '향 후 6개월간 추가사실이 발견될 시 수정할 수 있다'는 유보 단서를 달아 보고서의 최종 채 택을 미루 는 데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작성기획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김순태 교수(방송대 법학)는 "이는 고 총리가 보 수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면서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의 4.3관련 공식 사과를 내년으로 미루도록 한 것도 고 총리의 작품이라는 의혹을 제기하 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2일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 들은 고 총 리의 위령제 참석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김교수는 "향후 6개월 간 민간인 희 생 사실을 추가로 입증하는 증거 외에 나올 게 있겠냐"며 보고서 내용의 후 퇴 가능성을 부정하면서도 "6개월 유보나 정부의 사과 연기 등 이 모든 일은 궁지에 몰린 보수기득권 세력의 마지막 발악인 셈"이라고 평했다. 4.3 보고서, 모호한 타협의 산물 보고서 자체가 가진 한계도 있다. 관련 전문가들에게는 "전반적으로 무난하 다"는 평가를, 제주의 유족들과 4.3관련 단체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은 이번 보고서는 막판 심 의과정에서 학살자측을 대변하는 위원들에 의해 주요 용어들이 수정되면서 '조직적인 국 가범죄'로서 의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지 못했다. 애초 초안에 쓰여졌던 '집단살상'이라는 용어는 '집단인명희생'으로, '초토화 작전'이라는 용 어는 '강경진압작전'으로 변경되는 등 내용상의 후퇴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승 교수(국민대 법학)는 "강경진압이라는 말은 국가권력의 과도한 행사를 의미할 뿐, 국가범 죄임을 명확히 하기 힘들다"며 "당시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억울한 인명피해가 아니라 명백한 국가범죄였음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양정심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은 "4.3특별법 자체에 한계가 내정되어 있지 만, 이번 보고 서 역시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마 치 빨갱이는 죽여도 되는 것인 양 해석될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양 연구원 은 "4.3을 무 고한 양민이 희생된 '수난의 역사'로만 바라볼 뿐, 당시 미군정과 경찰 등 부 당한 권력의 탄압에 저항했던 '항쟁의 역사'로서는 바라보지 못함으로써, 4.3의 온전한 진 실을 드러내 지 못했다"며 "지금의 진상규명을 통한 명예회복이 당시 4.3항쟁의 주체들보다 는 '살아있 는 유족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서처 럼 4.3을 단 지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 이 희생당한 사건"으로만 규정해서는 4.3의 온전한 역사적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인 것 이다. 전체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으로 나아가야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4.3관련 단체들이 지적하듯, 4.3진상보고서의 채택 이 "반세기 넘게 제주도민을 짓눌러왔던 4.3의 상처를 씻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은 분명하다. "내년 위령제에는 꼭 참석하겠다", "보고서가 최종 확정되는 대로 공식 사과하 겠다"는 대 통령의 약속이 지켜지고, 국가 차원의 재발방지 노력이 병행된다면 국가폭력 을 제어하는 물꼬가 될 것임도 틀림없다. 그러나 4.3이 광주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4.3을 제주 만의 것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수난의 역사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4.3 진상보고서의 채택은 100만이 희생된 한국전쟁 전후 민 간인학살 문 제를 푸는 하나의 교두보가 마련된 것일 뿐"이라는 김 교수의 지적에 귀기울 일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 앞에서는 33일간의 국가인권위 점거농성을 마치고 국회를 향 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제정을 목놓아 외치고 있는 유족들과 인권사회단 체가 있다. 이들의 정당한 요구에 응답하는 것 역시 4.3의 온전한 복원과 함께 가야 할 길이다. [배경내] <1면 허리기사>--------------------------------------- "동성애, 청소년유해매체 기준 될 수 없다" 국가인권위, 청보법 시행령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삭제 권고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동성애'를 청소년유해매체의 판단 기준으 로 삼는 것은 '차별행위'라며 청소년보호법(아래 청보법)의 심의기준에서 '동성애'를 삭제 할 것을 권고 했다. 이로써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동성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온 인권침 해 규정이 사라질 전망이다. 2일 인권위는 "청보법 시행령 제7조 '개별 심의기준' 중에 '동성애'를 차별적 으로 명시한 것은 헌법에서 보장한 행복추구권, 평등권,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행 위"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지난해 동성애자인권연대와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 끼리가 제 기한 진정에 따른 것이다. 97년 청보법이 제정된 이후, 인터넷을 포함해 '동성애'와 관련한 출판 및 간행 물·영화· 방송 등 모든 매체가 각종 심의기구의 통제를 받아왔고, 그에 따라 이 자의적 기준에 대 한 비판 역시 커져왔다. 실제로 피시방 등에 강제로 설치돼 청소년들의 동성 애 사이트 접근을 막는 '음란물차단프로그램' 역시 이 심의기준을 근거로 한다. 한국동성애자인권연합의 박수진 활동가는 인권위의 권고를 크게 환영하며 "그 동안 있었 던 청보법 시행령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국 가검열반대 공대위도 2일 성명을 통해 "동성애는 무조건 청소년유해매체라는 어이없는 조 항 한 줄을 없애기 위해 오랜 시간 벌여온 투쟁이 이제 그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차제 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온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 모두가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라 고 주장했다. 한편, 인권사회단체들의 비판에 따라 이 심의기준의 개정을 언급해 왔던 청보 위가 인권 위의 권고를 과연 어떻게 수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청보위 보호기준과 이주 현 사무관 은 "단순히 동성애라는 이유로 유해매체로 규정되는 일이 없도록 할 계획"이라 고 밝혔다. 그러나 심의기준의 개정은 청보법 개정 이후에 이뤄질 예정이어서 올 연말에 나 가능하다 는 설명이다. 이 사무관은 "개정이 늦어지는 만큼, 유해성을 판단하는 심의기 구에 '동성 애'를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결정하는 일이 없도록 공문을 보낼 것"이라 고 밝혔다. [고근예] <2면 머리기사>--------------------------------------- <기획 연재> 소리없는 '사형선고', 사회보호법 ② 보호감호, 빈곤계층을 향한 덫 "청송보호감호소는 흉악범들의 소굴이다." 우리 사회가 청송보호감호소에 대 해 갖고 있는 가장 큰 편견이다. 그러나 실상도 그럴까? 사회보호법에 의거한 보호감호는 '동종 또는 유사한 죄로 2회 이상 금고이상 의 실형을 받고 형기가 3년 이상인 자'에 부과된다. 대상 범죄로는 절도, 사기, 폭력을 비롯해 강간, 강도상해, 약취, 살인 등이 폭 넓게 망라돼있다. 하지만 현재 청송보호감호소에 수용된 사람의 절대 다수는 단순절도범이다. 2001년 법무 부 국정감사 자료는 피감호자의 76%가 절도사범임을 확인해 준다. 강도 7.9%, 폭력 5.9%, 사기 3.0%가 그 뒤를 이었고, 흔히 흉악범이라 불리는 강간과 살인은 각 각 2.0%와 0.8%에 그쳤다. 법 시행 20년동안, 절도범들이 피감호자의 절대 다수를 점하 는 통계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주목을 끄는 또하나의 사실은 피감호자들의 대다수가 학력이 낮은 빈곤계층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무학이 21.9%인 것을 비롯해 초졸이 40.3%, 중졸 이 25.4%에 달했다. 이에 반해 대졸은 0.4%에 불과했다. 이들의 가정형편이 사회정착의 걸림돌로 작용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통계들은 피감호자들의 대다수가 빈곤계층 출신으로 범죄성향 역 시 '좀도둑들', 즉 '빈곤범죄자'들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0년 현재 피감호자들 의 재범율은 35.5%, 피감호자들의 과반수는 6범 이상의 전과자들이다. 피감호 자들의 대다 수가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 형편에서 제대로 배운 것도 없이 보호감호로 인 한 장기수 용으로 사회적응력마저 저하된 상태로 출소하다 보니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 순환이 되 풀이되는 것이다. 빈곤은 개개인의 부도덕함이나 나태함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낳 는 필연적 병폐이며, 따라서 그 해결 역시 사회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빈곤 해소 를 위해 노 력하기는커녕 모든 문제를 소외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오히려 이들에게 보호감호라 는 굴레를 하나 더 덧씌우고 있다. 결국 사회보호법은 빈곤계층을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 시키기 위한 '합법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 해설: 사회보호법에 따른 보호처분은 보호감호와 치료감호, 보호관찰로 나 뉜다. 보호 감호는 일반적으로 상습범에게 부과돼 7년의 기간동안 청송보호감호소에서 집 행된다. 심 신장애자 및 마약·알코올 등 약물중독자로서 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치료감호 가 부과된 다. 매해 2백여 명에게 부과되는 치료감호는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집행되는데 기간은 따 로 정해져있지 않다. 보호감호와 치료감호가 가종료된 이들에게는 보호관찰 이 기다리고 있다. 보호관찰은 가출소 후 3년간 일상생활에 대한 신고의무를 부과해 제재 를 가하는 것이다. [유해정] <3면 상자기사>--------------------------------------- ☞ 클릭! 인권정보자료 초등학교 인권교육, 이렇게 해봐요 -『얘들아, 인권공부 하자』 엮은 이: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펴낸 곳: 사람생각/ 2003년/ 345쪽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담은 교재를 출간했다. 그동안 인권교육에 관심이 있어도 어디서부터 어떻 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교사들에게 이 책은 초등학교 인권교육을 위한 실천적인 실무지침 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차별금지, 생명권, 인간다운 삶, 노동권, 교육·문화권, 생각과 표현의 자유, 법 앞의 평등, 프라이버시권 등 각각의 권리에 대해 교사들이 쉽게 개념을 잡 아나갈 수 있도록 이론적 배경을 소개하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안들 을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인권교육방법론은 아이들이 인권침해가 없는 세상을 만 들기 위해 익혀야 할 지식과 가치는 물론, 인권을 옹호할 수 있는 행동능력을 유발하는 것을 목표 로 한다. 또 이 책에는 수업 진행시 필요한 교육자료로 교사들을 위한 다양 한 읽을거리 와 시청각 교재가 담겨있고 실제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장단점과 보충해야 할 사항까 지 자세히 싣고 있다. 하지만 권리개념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피해 사 례를 통해 제시하려 한 점이나 아이들의 행동능력을 기르겠다는 애초의 의도를 충분히 담 아내지 못 한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권이 살아 숨쉬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98년 결성된 「인권교육을 위한 교 사모임」은 "인권교육이란 인권에 관한 교육, 인권을 위한 교육, 인권을 통한 교육"임을 재확인하면 서 인권교육이 아이들과 교육자, 아이들과 아이들이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 뤄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최은아] <3,4면 전체 기사>--------------------------------------- [요약]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채택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조사 결론' 29일 4·3진상규명위원회에서 심의 확정된 진상조사보고서는 본 보고서와 4· 3일지, 참 고문헌, 토벌대·무장대 조직표 등이 수록된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6개월간 의 수정 기한 설정으로 추후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이 보고서의 핵심인 '조사결 론'의 주요 내용 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주> 미군정기에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4·3사건은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 인 사건이었 다. ◎ 4·3사건의 정의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서북청 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 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 까지 제주 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 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 발발 원인 발발원인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긴장 상황이 있 었고, 이후 외지 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서청에 의 한 검거선풍, 테러, 고문치사사건 등이 있었다. 이런 긴장상황을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 린 남로당 제 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 남로당의 개입과 역할 이 과정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 다. 그런데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선거관리요원과 경찰 가족 등 민간인 까지 살해 한 점은 분명한 과오이다. 그리고 김달삼 등 무장대 지도부가 인민민주주의정 권 수립을 지지함으로써 유혈사태를 가속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판단된다. ◎ 무장대 조직 무장대는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 산하 조직이다. 4월3일 동원된 인원은 350명 으로 추정 된다. 4·3사건 전기간에 걸쳐 무장세력은 500명 선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판 단된다. ◎ 희생자의 수 4·3사건에 의한 사망, 실종 등 희생자 숫자를 명백히 산출하는 것은 매우 어 렵다. 본 위 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4028명이나, 이 숫자를 전체 희생자 수로 판단 할 수는 없 다. 본 조사에서는 여러 자료와 인구 변동 통계 등을 감안, 잠정적으로 인명 피해를 2만5 천∼3만 명으로 추정했다. 50년 4월 김용하 제주도지사가 밝힌 2만7719명과 한국전쟁 이후 발생된 예비 검속 및 형 무소 재소자 희생 3천여 명도 감안된 숫자이나, 향후 더욱 정밀한 검증작업이 필요하다. ◎ 가해별 통계 본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의 가해별 통계는 토벌대 78.1%(1만955 명), 무장대 12.6%(1764명), 공란 9%(1266명) 등으로 나타났다. 토벌대와 무장대와의 비율 로만 산출하 면 86.1%와 13.9%로 대비된다. 이 통계는 토벌대에 의해 80% 이상이 사망했 다는 미군 보고서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10세 이하 어린이(5.8%·814명)와 61세 이상 노인(6.1%·860명)이 전 체 희생자의 11.9%를 차지하고, 여성의 희생(21.3%·2985명)이 컸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가 리지 않은 과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 무장대에 의한 피해 제주도 진압작전에서 전사한 군인은 180명 내외로 추정된다. 또 경찰 전사자 는 140명으 로 파악되고 있다. 4·3사건 당시 희생된 서청, 대청, 민보단 등 우익단체원 들은 '국가유 공자'로 정부의 보훈대상이 되고 있다. 보훈처에 등록된 4·3사건 관련 민간 인 국가유공 자는 모두 639명이다. ◎ 서북청년단의 개입과 역할 서청 단원들은 '4·3' 발발 이전에 500∼700명이 제주에 들어와 도민들과 잦 은 마찰을 빚 었고, 그들의 과도한 행동이 '4·3' 발발의 한 요인으로 거론되었다. '4·3' 발발 직후에는 500명이, 1948년 말에는 1000명 가량이 제주에서 경찰이나 군인 복장을 입고 진압활동을 벌였다. 서청의 제주 파견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미군이 후원했음을 입증하는 문헌과 증 언이 있다. ◎ 강경 진압작전에 의한 피해 1948년 11월부터 9연대에 의해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강경 진압작전은 가 장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하였다. 강경 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많은 인명 이 희생됐다. ◎ 집단피해 마을 9연대에 이어 제주에 들어온 2연대도 공개적인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즉 결처분하기 는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주민 집단총살사건인 '북촌사건'은 남녀노소 가리 지 않고 한 마을 주민 400명 가량이 2연대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한 사건이다. 위원회에 신 고된 자료 에 의하면, 100명 이상 희생된 마을이 45곳에 이른다. ◎ 군법회의의 적법성 여부 1948년 12월과 1949년 6월 모두 두 차례 253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는 '4·3 사건 군법 회의'는 재판서·공판조서 등 소송기록이 발견되지 않은 점, 재판이 없었거 나 형무소에 가서야 형량이 통보되는 등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는 관계자들의 증언, 하 루에 수백 명씩 심리 없이 처리하는 한편, 이틀만에 345명을 사형선고 했다고 하나 이런 사실이 국 내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은 점, 시신들이 암매장된 점 등 당시 제반 정황 을 볼 때 정 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 계엄령의 집행 문제 1948년 11월 17일 선포돼 그해 12월 31일 해제된 '4·3 계엄령'에 대해서는 계엄법 제정 이전에 법적 근거 없이 발효됐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측과 일제 계엄령이 계속 효력을 갖 고 있기에 적법하다는 측의 다툼이 있다. 여기서는 계엄의 법적 근거 여부를 떠나 제주 도에서의 계엄령 집행이 법 테두리를 이탈했음을 지적한다. 계엄령 하에서 재 판절차 없 이 즉결처분이 빈번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군지휘관들조차 계엄 령을 잘 알 지 못했다. ◎ 집단 인명피해 지휘체계 중산간마을 초토화 등의 강경 작전을 폈던 9연대장과 2연대장에게 1차 책임을 물을 수밖 에 없다. 이 두 연대장의 작전기간인 1948년 10월부터 1949년 3월까지 6개월 동안에 전 체 희생의 80% 이상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 책임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 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미국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 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 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해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 화할 것이 며 지방 토색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해 법의 존엄을 표 시할 것이 요청된다"며 강경작전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 미군의 개입 범위와 역할 4·3사건의 발발과 진압과정에서 미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도 자유로울 수 없 다. 이 사 건은 미군정 하에서 시작됐고, 미군 대령이 제주지구 사령관으로 직접 진압작 전을 지휘 했다. 미군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한미군사협정에 의해 한국군 작전 지휘 권을 계속 보유하였고, 제주 진압작전에 무기와 정찰기 등을 지원하였다. 특히 중산간마 을을 초토화 시켰던 9연대의 작전을 '성공한 작전'으로 높이 평가하는 한편, 군사고문단 장 로버츠 준 장이 송요찬 연대장의 활동상을 널리 알리도록 한국정부에 요청한 기록도 있 다. ◎ 연좌제 피해 죄의 유무에 관계없이, 4·3사건 때 군경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희생자의 가족들은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활동을 제약받았 다. 제주도민 들과 유족들은 법적 근거도 없는 연좌제로 인하여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렸 다. 1981년 연좌제가 폐지되었지만,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948년 제주섬은 (당시) 국제법이 요구하는, 문명사회의 기본원칙이 무시되었 다. 특히 법 을 지켜야 할 국가공권력이 법을 어기면서 민간인들을 살상하기도 했다. 토벌 대가 재판 절차 없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살상한 점, 특히 어린이와 노인까지도 살해한 점 은 중대한 인권유린이며 과오이다. 결론적으로 제주도는 냉전의 최대 희생지였다. ◎ 조사의 한계 이 조사는 4·3사건의 전체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 수 없다. 경찰 등 주요기관 의 관련문 서 폐기와 군 지휘관의 증언 거부, 미국 비밀문서 입수 실패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부는 이 불행한 사건을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 나지 않도 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그 유족을 위 로하고 적절한 명예회복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 <대정부 건의문 > 1. 진상보고서에 규명된 내용에 따라 제주도민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2. 추모기념일을 지정해 억울한 넋을 위무하고, 그런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 지 않도록 교 훈으로 삼아야 한다. 3. 진상보고서의 내용을 평화와 인권교육 등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적극 노 력해야 한 다. 4. 추모공원인 '4·3 평화공원' 조성에 적극 지원해야 한다. 5. 생활이 어려운 4·3관련 유가족들에게 실질적인 생계비를 지원해야 한다. 6. 집단 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사업을 지원하고, 유해 발굴절차는 희생자들 과 그 가족들 의 존엄성과 독특한 문화적 가치관을 충분히 존중해 시행해야 한다. 7. 진상규명사업과 기념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나가야 한다. ▶ 다음 하루소식은 4월 8일자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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