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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얘기 7 - 아! 광주여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 (중략)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 (후략) 『 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1. 들어가며 스물 세 번째 맞이하는 광주민중항쟁이 다가 왔습니다. '우리는 왜 총을 들어야 했는가...' 세련되진 않았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듣고 있노라면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짜르르 한 전율을 주던... 항쟁의 정당성을 외치던 어느 여성동지의 피맺 힌 절규... '저벅 저벅' ... 안드로메다 군단의 행군소리처럼 약간은 머리가 쭈뼛해지는 군화발 소리와 굉음의 탱크 소리... 핏빛 오월 광주는, 비디오로 보았던 여러 잔상들 그리고 매캐한 최류탄 내음 을 떠올리게 하면서 어김없이 우리곁에 다가왔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광주 순례단' 이든 뭐든 다양한 이름의 참가단들이 무 리지어 망월동을 참배했고, 자칫 해이지기 쉬운 맘을 다잡던 것이 이제는 옛일 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광주학살의 괴수 전두환의 재산은닉이 또다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즈 음... 잊혀져 가는 광주를... 그 피맺힌 절규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되살렸으면' 하 는 바램으로 이 글을 씁니다. 2. 광주항쟁의 시대적 배경 (1) 소위 '박 통' 시절 몇 십년에 걸친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숨조차 마음대로 쉬지 못했던.. 그리하 여 겉으로는 그 모든 투쟁이 철저히 짓밟히고 있거나.. 민주화의 싹이란 도대 체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저 지독한 철권통치 속에서도... 생존권과 민주화에 대한 민중의 요구와 의지는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으 니.. 학생들의 그칠 줄 모르는 민주화 투쟁과 높아지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투쟁 에 바탕하여.. 한국민주화 운동은 그 대중적 정당성을 한껏 높여갔고 그와 더 불어 초보적인 조직들을 하나 둘씩 만들어 갔으니.. 특히, '노동자도 사람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며 죽음으로써 항거했던 고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초보적인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넘어서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에 수많은 각 계각층이 주목하게 되는 일대사건이 되었고, 이는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류를 차지하던 '학생' 과 '재야' 가 단순한 '민주화' 문제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중 심으로 한 '계급적 문제' 에 주목하게 하는 폭발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전태일 열사 자신이 일하던 곳에서 '청계피복노조' 가 만들어지고, '원 풍모방' '동일방직' '콘드롤데이타' 'YH노조' 등 당시 지극히 열악한 정치사 회적 조건 속에서도 노동자의 생존권적 요구 실현을 위한 기본 대중조직인 '노 조건설' 과 함께.. 점차 일방적으로 재벌.자본가를 비호하던 정권에 대한 비판 과 투쟁이 늘어 갔습니다. 'YH노조' 의 신민당사 점거투쟁과 고 김경숙 동지의 의문사.. 그리고 이에 대 한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은 드디어 부산마산항쟁(부마항쟁) 으로 터져 나왔 고.. 4.19혁명의 성과를 찬탈했던 5.16군사 쿠테타 이후 숨죽여 왔던 민중들의 노도 와 같은 반정부 민주화 열기가 마침내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남한의 안정적인 식민지화와 분단고착화(힘이 되고 여건이 조성되면 '북' 까 지 흡수통일하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 가 한반도에 대한 기본정책이었던 미국 에게..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광범위한 남한 민중의 반대여론은 매우 위협적 이었으니... (2) 암살 그리고 또다시 쿠테타, 광주학살 중앙정보부장(현재의 국정원) 이었던 김재규의 영웅적인 애국심?(^^ 하하. 정 말 웃기는 얘기죠~~ ) 과 구국의 결단?(^^) 은 결코 무너지리라 그 누구도 생 각지 못했던 박정희의 죽음과 박 정권의 종말을 가져 왔습니다. (아 물론.. 경 호실장 외에는 그누구도 무기를 소지할 수 없는 자리에 어떻게 총을 가지고 있 었는지.. 여론의 발표대로 경호실장을 꼬셨다면.. 이렇게 체계적으로 포섭하 고.. 그러고도 정권을 인수할 능력과 자신감과 전망이 대체 어떻게 김재규 개 인에게서 나올 수 있었는지.. 한국CIA 주미대사관 등등 온통 거미줄처럼 쳐저 있어서 한국 내외의 그 모든 정보를 한 손에 쥐고 있던 미국이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입니다만.. 독자 여러분이 알아 맞춰 보세요.) 전두환 노태우는 12.12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합니다. (군 최고 실력자가 아니 었던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군 최고 실력자가 아니었던 전두환이 어떻게 군을 장악하고 - 이건 군 체계상 명백한 하극상, 즉 총살감이죠 - 거사(?)를 성사시 켰는지...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쥐고 있던 미국과의 관계에서 독자들이 판단 해 보시라.) 끊임없는 민주화 투쟁과 부마항쟁, 그리고 박정희의 죽음으로.. 이땅 수많은 민중은 '아 드디어 민주화의 봄이 왔구나' ..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 우리나라 역사의 전환기 때마다 '짠' 하고 등장하는 약방의 꼴통이 있었으니... 누군 누구겠습니까.. '미 ~ 국(尾國)' 이죠. 미국의 사주와 든든한 빽에 의거하여.. 정권찬탈 작업에 착착 들어간 전두 환... 전국적으로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 는 구호와 함께 전두환 반대투쟁이 거세 게 일어났지만.. 안타깝게도 투쟁을 중도반단하고 말았습니다. (서울역 회귀) 아, 그러나 언제나 역사의 고비마다 줄기차게 투쟁해온 우리 광주민중들은 민 주화의 요구를 그치지 않았으니... 남녀노소, 직업과 임산부 여부를 가리지 않고.. 미국의 승인 하에(항공모함까 지 한반도 근해에 진주시키는 친절함을 미국은 잊지 않았죠.) 공수부대를 투입 하여 무참히 학살하였습니다. 정부의 터무니없는 발표만 보더라도 무려 2,000여 명 (실제로는 그 열배는 넘 을 듯) 이 넘는 무고한 시민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전두환은 자신이 선출한 사람들로 채워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습니다. 3. 광주민중항쟁의 교훈 (1) 미국, 그 더러운 가면이 벗겨지다! 광주항쟁을 통해서 비로소, 한국군 작전지휠궈을 가진 미국의 사주와 지원에 의거하여 광주학살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밝혀지면서, 한국사회 변혁 운동(민주화운동 포함)을 고민하던 모든 이들은 '자주없이 민주없다' 는 진리 에 충격을 받았으며.. 이는 80년 내내 몰아친 사회과학 학습 열풍과 함께.. '해방군, 민주와 자유의 수호자' 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던 미국에 대한 인식 의 전면적 재고, 그리고 한국변혁운동의 총체적 방향(자주 민주 통일)을 과학적이고 대중적으 로 정립하게 한 일대사건이었습니다. (2) 노동계급에 대한 인식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고 노동운동이 대중적으로 전개되었다고는 하지만, 80년 이전까지 투쟁의 선봉부대는 단연 학생이었습니다. 광주항쟁 또한 버스.택시노동자 구두딱이 중국집배달원 등등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한 투쟁이었지만, 제조업체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계급 이 그 중심적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학생 시민이 주축이 된 4.19의 성공과 좌절에서.. 그리고 광주민중항쟁을 통해 서.. 노동자가 변혁운동의 중심으로 확고히 서지 않으면 그 어떠한 투쟁도 승리할 수 없음이 또다시 입증되었습니다. (3) 전국적 투쟁, 전국조직 '서울역 회군' 은 더욱 가열찬 투쟁이 요구되던 당시 정황에 맞지 않는 판단이 었으며 결과, 광주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당한 채 외로운 저항을 해야만 했습니 다. 이는 투쟁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 그리고 '타협없는 견결한 투쟁' 을 해야 한 다는 것과 함께, 전국적 투쟁 그리고 전국적 투쟁을 통일적으로 전개할 전국적 인 조직의 절심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4. 남은 숙제들 (1) 광주학살 주범이자 배후원흉이 미국임을 확고히 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 광주학살의 책임자임은 이미 대중적 으로 입증되었고, 또 이를 통해 '광주학살 책임자' 로서 전두환 노태우 반대투 쟁 즉, 반정부민주화 투쟁이 그 어느 년대보다 활발하고 가열차게 펼쳐졌던 때 가 80년 대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12.12쿠테타와 광주학살을 사주 지원하고 민주화 투쟁의 열매 를 찬탈해 버린.. 최종 최고 학살원흉이 미국에 있음이 대중적으로 명명백백하 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2) 미국의 인정과 사죄 그리고 보상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단 한번도 광주학살의 책임자가 자기자신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양한 투쟁을 통해 미국이 학살의 최고 책임자임을 밝히는 것에 기초하여, 미 국이 이를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죄와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게 강제해 야 합니다. (3)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 현실이 증명하듯이, 이땅에 미군이 존재할 이유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 다. 남한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분단을 고착화 하고 이를 이용하여 남한을 안정적으로 식민지화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 고 북을 고립압살하여 궁극에는 한반도 전체를 식민지화하고자 하는 것이 주한 미군 주둔의 최고 목적인 바, '우리민족 끼리 힘을 합쳐 통일하자' 는 것이 대세가 되어 있는 지금, 더 이상 의 미군주둔은 전혀 필요치 않으며 나아가 해악적인 존재입니다. 역대 독재자들을 사주하고 육성했던 것이 미국이며, 이렇게 미국이 남한을 좌 지우지 할 수 있는 물질적 근거인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국군 작전지휘권 을 당당히 돌려 받아야 합니다. '주한미군 철수와 작전지휘권 환수' 없이, 이땅의 민주화를 바란다는 것은 허 망할 꿈일 뿐입니다. (4) 반미자주화와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분명히 들고 나아가야 한다. 미국이 한국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적 명분은 분단입니다. '북의 남 침공에서 지켜주겠다' 는 것이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이며, 이러한 현 실은 아직도 이땅에 '민족공조' 보다는 '한미일 공조' 를, '자주통일' 보다 는 '예속분단'을 인정하는 이념적 기초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총체적으로 이땅의 목줄을 죄고 있는 미국을 몰아내 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도 민족자주권도 조국의 통일도... 그리고 노동자 민 중의 생존권도 쟁취할 수 없음이 현실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한맺힌 광주학살이 다시는 자행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미자주화 와 민족대단결' 의 기치를 분명히 하고, '자주통일' 투쟁에 한치 흔들림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5. 마치며 요즘 열받는 일이 연이어서 터지고 있습니다. ① 가진 돈이 27만원 밖에 없다는 전두환. 밝혀진 것만 해도 너무나 엄청난 부정축재와 광주학살의 책임을 지고 전두환 노태우는 호텔 생활같은 가벼운(!) 감방생활을 하고 나와서는.. 법정에서 선고 된 국가에 환수해야 할 추징금 몇 천억 원에 오리발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최근, 어느 양심적인(?) 검사에 의해 몇 천억에 달하는 추징금을 거의 다 내 지 않고 있다가 소환명령을 받고서 전두환 왈, ' 제겐 29만원 밖에 남지 않았 어요.'.. 참으로 철면피하고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며..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② 노무현 대통령의 사대굴종 행각 ‘전쟁만은 안된다’며 제법 '자주적' 인 것 같아 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미 국에 가서는, 연일 실망과 분노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5월 15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전문과 오갔던 언행들을 보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관련해서는 군사공격 옵션을 삭제하지 못한데다, 이 후 미-일간에 논의될 대북제재에 대해 인정함으로써 한국민중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요구이기도 했던 '전쟁만은 안된다’는 입장을 관철하는 데 실패했고 두 여중생의 죽음과 같은 주한미군의 범죄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유감’표시 는 커녕, “주한미군 장병들에 대하여 경의를 표”했으며 "북핵불용 및 완전한 제거”에 합의함으로서, 북-중-미 3자회담에서 나온 북 의 '대담한 제안’에 대한 '미국의 거부' 에 동의하는 꼴이 되었으며. “무역개방, 투자, 투명성의 제고가 동북아 경제중심 개념을 실현하는 데 필수 적 요소”임을 강조해 한-칠레무역협정 한미투자협정 등 한국을 보다 경제식민 지화할 것에 대한 미국의 중장기적 신자유주의와 민영화 계획에 찬성을 표한 셈이고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해 나갈 것 이라는 입장”을 표명해 김대중 정부 이후의 ‘정경분리’ 원칙을 포기할 것임 을 시사했습니다. 말같지도 않은 변명으로 오리발 내밀고 있는 전두환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니, 열이 받긴 하지만 끝까지 추적해 안 낸 돈을 받아내고 반성문 쓰게하면 된다지 만, 노무현 대통령은, 아니 도대체 왜 미국에 갔는지 도통 이해가 안됩니다. 효순이 미선이 투쟁을 정점으로 한 작년의 거세찬 '미국반대' 여론은, 12월 대 선에서 승리가 그토록 확고해 보였던 한나라당에게 패배를 안겨주면서, 국민 대다수의 '자주와 진보' 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업고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습니다. 그런데, 지금 집권한 지 얼마나 됐다고, ' 날 믿어달라' ' 전쟁만은 안된다' 는 국민적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렇게 굴종적으로 고개를 숙일 수 있단 말입니 까? ☜☞☜☞☜☞☜☞☜☞☜☞☜☞☜☞☜☞☜☞☜☞☜☞☜☞☜☞☜☞☜☞☜☞☜☞ ☜☞☜☞☜☞ 한달이 채 남지 않은 6월 13일 이면, 채 피지도 못했던 우리의 누이동생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1주기입니다. 여전히 전두환이 반성하지 못하고, '그나마 나을 것' 이라고 뽑아 놓았던 노무 현 대통령이 사대굴종 행각을 노골화하는 이 시점, 1년이 다 되어 가건만,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 앞에 '사과' 는 커녕, "주한미 군 장병들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면서, 4천 8백만 아니 8천만 우리민족을 철 저히 얕잡아 보고 있는 미국 부시의 오만방자하고 철면피한 행태를 보면서... 이번 5.18 광주민중항쟁이 다시금 반미자주화에 대한 투쟁의지를 가다듬는 소중한 날로... 원통하게 죽어가신 광주선혈들의 핏값을 반드시 되돌려 받겠다는 각오를 다지 는 날로... 광주를 너머 자주통일과 평화로, 효순이 미선이 1추기 추모를 범국민적으로 전 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날로 자리매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울산북구노동단체 현장21 : http://cafe.daum.net/hj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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