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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글번호 1627번 글의 답장글 등록 2003-07-23 17:00:34
글쓴이 민의련회원 글쓴곳
제목 Re: [공개질문] 본인부담금 인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 '민의련 칼럼' 란에 실린 글을 옮겨왔습니다.



우리가 원숭이만도 못한가? 
-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정부의 본인부담금 상한제 도입 방침 -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거나 눈 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꾸짖을 
때 쓰는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 고사성어는 열자 황제편
(「列子」, 黃帝篇)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길지 않아서 아래에 전문을 인
용해 볼 터이니 원숭이의 심정으로 한번 음미해 보시라.

「송나라때 저공이 있어, 원숭이를 사랑하여 이를 길러 여러 마리가 되었다. 
이 때문에 저공은 능히 원숭이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의 마음을 알았
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주더니 마침
내 먹을 것이 떨어졌다. 앞으로 원숭이에게 줄 먹이를 줄이고자 하나 먹이를 
줄이면 앞으로 원숭이가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먼저 이를 속여 말
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
니 좋으냐?"하니 원숭이들이 다 일어나서 화를 내거늘 바로 말하기를 "너희들
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원숭이
들이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하였다」 

새해 벽두부터 웬 원숭이 타령이냐고 탓하지 마라. 요즘 우리 꼴이 사실은 고
사성어에서 조롱의 대상이 된 원숭이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정부는 2003년 상반기 중에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요란
하게 선전을 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란 본인부담금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그 초과분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그 동안 건강보험제도랍
시고 뭔가가 있기는 있지만 집안 식구 중에서 누구 한 명이라도 중한 질병에 
걸리면 살림이 거덜나 버렸던 열악한 의료현실을 감안할 때 반가운 마음이 드
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 그런데 "이게 뭔가!" 그 내용을 곰곰이 뜯어보니 가관
도 이런 가관이 따로 없다. 
정부는 2003년 상반기 중 시행될 '본인부담금 상한제' 준비를 위해 한 연구기
관에 연구의뢰를 했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를 기초로 해서 '본인부담금 상한
제'를 실시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구결과를 보니 막대한 추가예산이 들어
가는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실시해도 오히려 돈이 남아도는 것으로 되어 있
다.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는가! 신통방통한 정부로고!

그러나 정부가 무슨 마법사가 아닌 이상, 어디에서 엄청나게 돈을 줄이는 데
가 있으니 '본인부담 상한제'를 도입하고도 돈이 남아도는 것 아니겠는가? 그 
비밀은 바로 정부의 발표자료 한 귀퉁이에 잘 보이지도 않게 적어놓은 [감기
와 같이 가벼운 질환 치료에 드는 환자비용은 다소 높이고]라는 문구에 있다. 
정부가 의뢰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이 문구가 무슨 의미인지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 도입을 통해 중한 질환·희귀질환·난치성질환
의 환자 본인부담을 줄이는데 추가로 들어가는 돈보다 감기와 같이 가벼운 질
환의 환자 본인부담을 늘리면서 절감하는 돈의 크기가 항상 크도록 본인부담
금 부과체계가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본인부담금 부과
체계를 개편함으로써 남겨먹는 돈의 규모도 엄청나다.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기
준과 외래 본인부담금 조정 기준 등에 따라 다양하기는 하지만, 가벼운 질환
의 본인부담금을 높이면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도입하고도 최소 832억원에서 
최대 1조5,864억원에 이르는 돈이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정책 실행과정
에서 본인부담금 상한제 도입의 형식과 내용, 외래진료('가벼운 질환') 본인부
담금 인상의 형식과 내용 등에 따라서 다소간의 변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기
본적인 골격은 연구보고서에 담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정도면 신통방통한 여느 마법사 부럽지 않다.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도
입해서 생색은 생색대로 내고, 가벼운 질환의 본인부담금은 올려서 걸핏하면 
병원을 방문하는 국민들의 못된 버릇도 고치는 한편 돈도 엄청나게 남겨서 건
강보험재정 안정화에 혁혁한 기여를 할 수 있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님
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렷다. 

어떤 것이 과할 때 이를 덜어내어 부족한 것을 메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러나 부족한 것을 덜어내어 더 부족한 것을 메우는 것은 한국식 부실공사의 전
형이다. 지금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둘러싸고 정부가 보이고 있는 작태가 바
로 이짝이다. '가벼운 질환'이라고 해서 경제적 부담은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
다. 가벼운 질환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인상함으로써 엄청난 규모의 돈이 남게 
된다는 연구결과로도 이런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단지 중한 질환에 
대한 보장성이 워낙 떨어지다 보니, 그에 비해서 가벼운 질환이 좀 나은 편일 
뿐, 뭘 덜어주고 자시고 할 형편이 안 되기로는 중한 질환이나 가벼운 질환이
나 매일반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고사성어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메세지가 따로 있다. 그
것은 '아침에 세 개이든 저녁에 세 개이든 간에 하루 먹이로 도토리 일곱 개
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즉 원숭이의 어리석음은 '절대적으로 부족
한 먹이의 양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배분의 순서를 문제삼았다는 것 때문'이
지, '아침에 세 개이든 저녁에 세 개이든 합은 일곱 개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원숭이들이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면 아침에 도토리 네 개를 준다고 해서 주인에게 엎드려 절하며 기뻐하지는 않
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트릭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자(주인)들
이 즐겨 쓰는 통치기술이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를 보자. 
보통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던 유권자들이 선거기간 중에는 그 
쟁쟁한 국회의원 후보들로부터 상전 취급을 받는다. 기분이 우쭐우쭐한다. 유
권자는 그 기간 동안에 '누구를 찍을까?'라는 선택의 권리를 맘껏 향유한다. 
실상 뽑아놓고 보면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
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금 유권자는 아무 것도 아닌 그런 것으로 되돌아간
다. 이런 요란스러운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절대적 부재'라는 근본적인 문
제는 가려지게 된다. 

아무튼 원숭이는 그래도 우리보다는 낫다. 비록 먹이의 절대량은 적을지라도 
저공은 인정이 있는 주인인지라 원숭이에게 주는 도토리 양은 어떻게든 일곱 
개로 맞추어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말만 요란하고 정작 돌아오는 건 도리어 
엄청나게 줄어버렸다. 그러고도 생색은 생색대로 내고 있으니 인두겁을 쓰고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어차피 민중에게 많은 것을 해 줄 의지도, 능력도 
없는 정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원숭이보다는 낫게 대접받기를 바
랄 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던데, 원숭이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면 좀 그렇지 
않는가? 제발 부탁이다. 원숭이 앞에서 자존심 한 번 세워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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