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22] 건강보험의 위기인가, 민중건강의 위기인가
             -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둘러싼 논란에 부쳐 -

                                                           2001. 3. 20.
                                                           도 영 경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계기로 다시 보건의료 문제가 신문 일면을 채우고 있
다. 파업 전공의의 복귀가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 해 11월 말이고 보면, 한국 
사회에서 의료대란은 이제 연례 행사, 아니 연중 행사가 될 듯하다. 적어도 지
금 시점에서는 그 말이 과장된 말장난만은 아니다. 아마 건강보험의 재정위기
를 둘러싼 혼란은 올 한 해 동안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뭐가 그리 해결이 어려운가? 보험재정이 바닥났다면 
보험료를 더 걷든지, 지출을 줄이든지 하면 될 것 아닌가? 이 수준의 대안은 
누구라도 내 올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정부나 공단, 또 고명하
신 학자들 중에도 이런 수준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듯
하다. 가계나 기업같은, 추상화된 이론적 경제단위에서는, 적게 쓰고 많이 벌
어 적자를 메우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건강을 의학적으로, 경제적으
로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건강보험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존재의의는 가능한 폭넓은 범
위에서 국민의 의료보장을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재정 수입의 절대적 
증가, 지출의 절대적 감소가 중요한 목표가 아니다. 우리 몸으로 비유하자면, 
영양을 골고루 충분히 섭취하되 뇌와 근육이 건강한 사고와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영양을 공급하는 것, 그것이 소화기관의 응당 수행해야 할 기능이
다.

 제도 자체의 본령, 존재의의를 무시하고, 작금의 건강보험 재정위기 자체에 
매몰되어 저마다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하는 분들이 있다. 국민이 의료이용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금고가 바닥났으니, 소액진료비 본인부담제나 의료저축계
정 같은 것을 만들어 마음놓고(!) 의료이용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
이 있다. 이 견해는 우리의 정부와 보건의료 관련 학계에 상당 부분 확산되어 
있는 듯하다. 즉 의료이용의 경제적 장벽을 국민, 환자 내부에 만들도록 하자
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보험을 왜 운영하는가? 제도 자체의 이론적 매력이
나 나름의 논리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 이야
기가 제기될 맥락이 아니다.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서구 선진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경험해 온 일반적인 의료비의 급증과는 현상 면에서의 유사성에
도 불구하고 그 본질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공공적 성격의 포괄적 의료보
장 하에서도 노인 인구비중의 지속적 증가, 신의료기술 적용의 확대 등에 의
해 유발된 것이 서구 선진 국가들의 의료보험(복지)재정의 위기이다. 한편 우
리의 상황은 어떤가? 극도로 상업적인 의료체계에서 정책적으로 통제되지 못
한 의료공급의 폭발적인 증가, 이에 의약분업을 즈음한 설상가상의 정책적 무
능이 결정타를 먹이면서 급격하게 보험재정이 고갈된 것이다. 그 건강보험이라
는 것도 실질적인 본인부담이 무려 50-60% 내외에 이를 정도로 취약한 보장성
을 자랑하여 과연 보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이같은 상
황을 무시하고 지출요인 억제책으로 소액본인부담이니 의료저축이니 운위한다
면, 학자로서는 학문적 양심과 객관적 시야의 문제이고, 정부 관료로서는 무책
임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보험적용을 줄임으로써 재정
적자의 문제를 해결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늘여서 건강보험이 명실상부하
도록 만들 때이다. 민중건강의 위기를 도외시한 건강보험의 위기 타개책은, 그
렇기에 책상머리 수학 문제 풀이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대번 이런 반론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보험재정이 적자인데, 보험
적용을 확대하자고, 즉 보험재정 지출을 더 늘이자는 말인가? 그렇다. 행위별 
수가제에 기초해 있는 우리 의료체계는 공급의 증가로 인한 재정위기의 요인
을 늘 지니고 있다. 합리적 경제주체로서의 공급자는 제도의 틀 내에서 공급
의 증가와 비보험 항목의 개발이라는 최선의 선택을 매일 매행위마다 하게 된
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들은 그대로 의료인, 의료기관의 수입원이 되
고 왜곡된 진료행태를 조장하게 된다. 결국 국민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거나 
더 증가한다.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그나마 보험료 징수를 통한 소
득에 따른 부담원칙이, 본인부담에서는 전혀 실현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즉 
빈자의 육체적 고통이 부자의 그것보다 몇 배는 더 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이다. 따라서 보험적용 확대의 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소득역진적인 국민의 직접 부담은 줄어들고 의료공급은 보험제도의 틀 안에 포
용된다. 최근 보험재정 위기는 개인이 약국에 가서 임의조제로 항생제를 사 먹
어야 했던 것을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하게 되면서 서비스 보상 비용이 
늘어난 것, 환자의 직접 부담이 그만큼 크게 늘지는 않은 대신 보험재정에서 
그것을 감당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현 보험
재정의 위기에 대해 환호해야 한다. 좀더 많은 본인부담을 공적 보험의 틀로
써 포섭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보험재정의 확대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의 문제이므로 그것을 가능케 할 전제는 그 다음 문제이다.

 먼저 보험료가 그만큼 인상되어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필요하다면 보험료
를 더욱 인상해야 하나 이 문제를 국민의 본능적 직관을 거스르는 설득의 문제
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복통으로 응급실에 가서 치료받은 후 아무 제약없이 병
원 문을 나설 수 있다면, 대중들은 적정부담-적정급여의 모델에 대한 설득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재정위기에 대
한 미봉책으로 보험료를 인상하면서 적정급여를 약속한다면 어느 누구하나 미
더워할 리가 없다.
 
 또하나의 전제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대체하는 것이다. 한국 의료공급의 양
적 팽창은 이제 진료비지불제도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단행하지 않고서는 항상
적인 재정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음을 최근의 재정위기는 웅변하고 있는 것이
다. 물론 행위별수가제를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 등으로 바꾸는 것이 만병통
치약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빠져나갈 구멍(loophole)은 어디에나 있다. 진료
실 안에서 환자와 마주한 의사가, 고해성사를 듣는 신의 대리자가 아닌 이상, 
어떤 지불제도를 택하건 간에 환자의 대리인 對 직업인으로서의 갈등, 공익의 
감시와 사익의 은밀함은 늘 긴장관계로 존재할 것이다.

 그 전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료가 
자본축적의 장이 되는 것을 국가가 허용하고 조장하는 이상, 그 어떤 타개책
도 공공정책으로서의 현실성을 지니기 힘들다. 따라서 현재의 보험재정의 위기
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상업적 보건의료의 한계를 폭로하는 동시에 총체
적 차원의 제도 개혁을 절규하는 목소리로 들려야 한다. 그 절규 속에 감추어
진 민중의 신음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언론은 앵무새마냥 의약분업이 위기를 
불렀다고 노래하고, 숨죽여 반격의 기회를 엿보던 사람들은 의료보험 통합으
로 인해 의료보험같은 문제가 공연히 국가적 위기로 비화하게 되었다고 말한
다. 

 그런데 정말 의약분업이 보험재정 위기의 주원인인가?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
용에 따라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산수 이상의 분석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의약
분업 시행으로 인한 추가 재정 소요 때문에 보험재정이 파탄났다고 주장한다. 
지난 해 정부의 홍보 문안에 따라 항생제 내성률이 어떻고 저떻고 하며 의약분
업의 장점만을 절절하게 이야기할 때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의약분업 
자체가 아니라 의약분업 실시 과정의 몇 차례 수가 인상과 처방료 산정에 따
른 과다 처방 유인의 존재, 그로 인한 진료공급량의 대폭 증가(의약분업 관련
요인)라고 해야 반만이라도 옳다. 보험재정의 적자라는 만성병이 1996년부터 
지속되었고, 의약분업 이후 단가(수가)와 총량(진료량)의 동반 증가가 급성 악
화를 유발했다면, 문제는 급성 악화가 아니라 만성 질환 자체이다. 그것은 앞
서 말한 한국 보건의료의 상업적 본성과 그 토양 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자본
주의적 성격을 띠는 행위별 수가제, 그것에 의한 불필요한 의료의 과도한 공
급, 사회적 적정성이라는 잣대를 통과하지 않고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의
사들의 양적 증가에 의해 꾸준히 누적되어 온 문제라는 것을 이제는 좀 제대
로 인식해야만 한다.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단기 처방에 머무르고 있어 해결의 전망을 보여주지 못
하고 있다. 부당청구 방지나 고가약 사용에 대한 역유인, 환자수에 따른 진료
비 체감 등과 같이 공급자측의 공급 축소를 통한 지출요인의 억제를 눈물겹도
록 계획하고 있으나 별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문제는 그 정도의 손사래에 꼬리내릴 호랑이가 아니다. 문제의 크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무능함이 너무나 심각하다.
 
 많은 시민단체들의 진단은 수가인상 이후 의사들의 과다한 이윤 확보에 초점
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즉 심정적 불만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
가? 다시 수가를 내리라고 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의사집단에
게 수가를 내리도록 강요할 '비용'이라면 차라리 근본적인 의료개혁을 추구하
는 편이 비용-효과 면에서 훨씬 나을 듯하다. 대개 인격적 주체로서의 의사에 
대한 비난은 개혁보다는 카타르시스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수가 혹은 소득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구조의 개혁 속에 배치되지 않음으로 인해 당사자에게는 
호주머니에 대한 도전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구조의 개혁을 위한 생산적이
고 진지한 논의보다는 방어 본능과 인신 공격이 횡행할 밖에 없음을 지난 해 
이미 똑똑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의사 집단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도 자신의 소
득에 대한 무매개적 공격에 대해서는 극도의 방어 본능을 갖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보험재정 위기라는 도마 위에 남은 것은 의사들이다. 지난 해 투
쟁은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의 대장정이었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복귀 이후에
도 국민과 함께 하는 의료개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현재 
의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반적인 통계를 보더라도 월진료비의 증가는 
현격하며 여기에는 약제비까지 제외된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에게는 이 보험
재정의 위기가 어떻게 읽혀야 할까? 현재의 수가 수준, 수가 체계 하에서 수익
을 현재처럼 올리기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 즉 현 추세의 수익 창출의 
여지는 이제 다 잠식되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위기는 
의사들에게는 먼저 수익창출의 위기이며, 현 의료체계 하에서는 비보험 항목 
활용과 공급 절대량의 증가를 통한 환자 부담의 증가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
로 공멸의 길이다. 의사들에게도 긴장과 위기의식, 진정 개혁을 위한 성찰과 
모색이 필요하다. 파업의 구호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면 다시 한번 진지
한 반추가 필요할 때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건강보험의 재정위기는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집단의 문
제가 아니다. 한국 보건의료의 총체적, 구조적 문제가 지난 해에 이어 또 한
번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분석의 수고로움을 마다하고 피상적 진단과 
단기적 처방만을 내리는 사이, 민중건강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무엇
을 해야 할 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

P.S. 본 칼럼은 민중의료연합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