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25] 노동자■민중에게 '도덕적 해이'는 없다.
- 도덕적 해이는 보험자와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계급적 용어 - 

2001년 5월 27일
회원 도영경

- 한 노동자가 있었다. 그는 그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했다. 수
출물량이 밀리면 사나흘씩 잔업철야도 마다하지 않았고, 휴일도 없이 일만 했
다. 그러다가 그가 다니던 공장이 쫄딱 망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한 소리씩 하
기 시작했다. "당신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장이 망한거야", "그
러길래 월급 좀 작작 올려달라고 그러지", 처음엔 '그게 아닌데...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일만 열심히 했고, 월급도 쥐꼬리만한데...'라는 생각이 들기
도 했지만, 주위의 말을 하루 이틀 계속 듣다보니 정말 자기 때문에 공장이 망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장이 망하면서 그는 퇴직금도 변변히 
못 받고 거리로 나 앉았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 켠에는 자기 때문에 공장
이 망했다는 죄스러운 마음이 남아 있다. -

요즘 이 바닥에서 먹물 꽤나 먹었다는 사람치고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아니, 먹물 먹은 식자층뿐 아니라 정부, 경제계, 언론 심지
어는 시민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해이'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고 있는
데, 이런 말 잔치의 요지는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건강보험재정이 파
탄났다', '의약분업이 도리어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의료보험통
합으로 인한 보험자의 도덕적 해이가 양산되었다' 등이다. 마치 쟁점이 되고 
있는 보건의료부문의 제 사안에 '도덕적 해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만 하면 그럴
싸한 설명틀이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이다. 

본래 '도덕적 해이'는 '의료서비스 이용의 빈도와 강도를 증가시키는 보험의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즉, 의료보험으로 인해 경제적 부담이 적어진 보험가
입자가 의료서비스 이용을 증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료보험재정을 위협하는 
현상을 '도덕적 해이'라고 하는데, 통상 보험의 필연적인 특성 중의 하나로 언
급되곤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도덕적 해이'의 기원과 역사적 의미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런 가장 기본적인 사전 지식의 결여로 인해 현상
의 본질이 너무나 쉽게 왜곡되고 있고, 너무나 어이없게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당하고 있으며, 또 당하고도 당한 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로 설명되는 현상은 영국에서 근대적인 보험회사가 설립된 18세
기부터 관찰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유럽과 미국에서 민간보험과 사회보험이 
광범위하게 도입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도덕적 해
이'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범죄적 행태의 일종으로 다루어졌는데, 이런 
사실은 그 즈음에 '도덕적 해이'를 묘사한 대표적인 표현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거짓과 도덕성 상실(John Haynes, 1894)', '가벼운 질환을 과장하
는 거짓말과 도둑질(George McNeill, 1900)', '허위 진술과 태만(Alexander 
Campbell, 1913)', '사회보험은 위험 자체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사고, 질병, 
실업을 부추긴다. 사회보험은 사람들을 전업 거지가 되도록 부추기고, 꾀병에 
대해 쉽게 보상을 해 줌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을 타락시킨다(I. M. Rubinow, 
1913)'. 

그러나 보험가입자들의 행태를 도덕적으로 징죄하던 보험학의 전통은 1960년대
에 이르러 경제학과 수학에 그 자리를 내 주게 된다. 즉, '도덕적 해이'는 도
덕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주인
(Principal, 보험자)이 대리인(Agent, 보험가입자)의 행동을 완전히 관찰할 
수 없을 때, 대리인이 자신의 효용(utility)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
종의 경제적 행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방식의 변화는 도덕적 해
이 문제를 가치중립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 것
으로 평가되었으며, 그 후 보험문제를 분석하는데 있어 '도덕적 해이'는 '당연
하고 의심이 필요 없는' 전제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근래 들어 경제학과 수학의 전통에 입각한 소위 '가치중립적 접근
법'은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가치중립적 접근법의 분석기법
은 근대 경제학에 기초해 있지만, 노동자■민중에 대한 비난과 악의적인 태도
는 과거 보험학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도덕적 해
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연구자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도덕적 해
이'를 다룬 연구논문의 수가 600편 이상인데, 이들 연구는 한결같이 '보험가입
자와 의료이용자'의 도덕적 해이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도
덕적 해이를 다룬 대부분의 연구들은 '보험급여 수준을 확대할 때, 보험청구 
빈도나 요양기간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보험청구 빈도와 요양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제한조치들이 효과적인지?'를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 즉, 분석
의 끝은 항상 보험가입자와 의료이용자를 향해 있다. 따라서 분석기법이 가치
중립적인 것일지라도 분석의 내용은 이미 한 쪽(보험자와 고용주)의 입장을 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적 연구자들은 '보험급여 수준을 30%에서 40%로 늘
일 때, 도덕적 해이로 인한 의료이용 증가가 어느 정도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30～40%의 보험급여 수준이 노동자■민중의 건강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수준인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다루
는 경제학자들은 후자의 주제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문제는 경제학자들의 
연구결과가 현실에서 활용될 때, 더욱 극명하게 발생한다. 미국의 경험을 살펴
보면, 경제학자들의 연구결과는 보험급여 청구를 한 적이 있는 노동자의 고용
을 거부하고, 오랫동안 요양을 한 노동자의 재고용을 거부하며, 불건강한 노동
자를 분류해내고,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노동자의 작업과정을 비디오로 녹화, 
감시하는 고용주의 조치들을 합법화시켜 준다. 고용주들은 질병이 있거나 재해
를 당한 노동자들을 나쁜 노동자, 사기꾼, 꾀병쟁이로 분류하는 경향을 가지
게 되며, 보험급여 청구를 잠재적 범죄(potential crime)로 취급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들의 연구결과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줄이
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위험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
의 질병과 재해를 자초한다. 게다가 이런 질병과 재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완화시키기 위해 사회보장 수준을 높이면, 그들은 보다 부주의해지며, 결과적
으로 더 많은 질병과 재해를 당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질병과 재해에 대해 
보장해 주는 시스템을 과용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보장 수준을 높이면, 노동자
들은 있지도 않은 질병을 가지고 보험급여 청구를 할 것이고 회복 후에도 계
속 급여 청구를 할 것이다' 등이 대표적인 논리이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이
루어진 몇 몇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실은 이와 반대이다. 도리어 노동자들은 
해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질병과 재해를 숨기고 있다(이런 현상은 우
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직업성 팔목터널증후군(Occupational carpal 
tunnel syndrome)의 경우에는 불과 전체 환자의 22.6～62.5%만이 보험청구를 
하고 있으며, 직업성 염좌(Occupational sprain)는 11.6～46.9%만이 보험청구
를 하고 있고(Biddle et al., 1998), 직업성 상지 근골격계질환의 경우에는 11
～21%가 보험청구를 하고 있다(Morse et al., 1998). 어떤 연구에서는 치명적
인 직업성 질환인 경우에서조차 무려 40% 이상이 해고의 두려움 때문에 보험청
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Stout et al., 1991). 여기서는 주로 산
재보험에 관련된 사례를 살펴보았지만, 일반 의료보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즉, 노동자■민중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도덕적 해이로 인한 의료서비스의 과용'이 아니라 '필수적인 의료
조차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열악한 건강권의 현실'이다. 

자,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최근 건강보험재정 위기를 타결하기 위
해 제시되고 있는 방안들 중 '보험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의료서비스의 
남용'을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들은 민간의료보험, 의료저축제도, 소액진
료비 본인부담제도, 진료비 전액 선불제도, 환자 본인부담 정률제, 진료비 총
액 상한제, 정액본인부담금 인상, 고가약값 환자 본인부담제 등으로 주로 정부
와 보험자, 경제계, 보건의료 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시민사회단체
에서조차 선험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인정하고 있는 듯 하다. 단지 '의료이용
자의 도덕적 해이보다는 의료공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더 크다'라는 책임의 경
중(輕重)을 다투는 측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도덕적 해이'란 딱지는 노동자■민중을 주눅들게 한다. 마치 건강보험재
정 파탄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가진
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와 보험자, 경제계, 주류 학계, 모든 언론이 나서
서 "도덕적 해이, 도덕적 해이"를 외치고 있으니 그렇게 세뇌당할 수밖에 없
다. 그 와중에 자신의 열악한 건강권의 실상은 간과된다. 그러나 '도덕적 해
이'는 노동자■민중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노동자■민중에게 '도덕적 해
이'는 없다. 도덕적 해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뎀버 등(Dembe et al., 
2000)에 따르면 정부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는 이유
는 "도덕적 해이 자체가 의료비 급증의 원인이어서가 아니라, 보험가입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기 위한 명분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보험자에게 실사팀을 구성하여 모든 의심나는 청구를 조사하도록 한 
결과, 5년 동안 보험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로 의심되는 청구는 전체의 1% 미만
이었다.

당장 필자만 해도 벌써 1년 전에 어금니가 부러진 상태이지만, 아직까지 치과
진료를 받지 않고 있다. 밥을 먹는데 큰 불편함이 없고, 특별한 통증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밥을 먹는데 큰 불편이 있거나 통증이 심하다면 그 때서야 치
과를 찾을 것이다. 필자가 게으르고 무딘 탓도 있겠지만, 이 땅의 노동자■민
중들 역시 이런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이 이 땅 노동자■민중의 보편
적인 의료이용 행태이다. 그런데 의료이용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보험재정
이 파탄났으며, 건강보험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조
치들을 시행하라니? 이런 어불성설이 어디 있겠는가? 

'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선험적으로 인정하
는 것은 이미 분석의 출발 단계에서부터 편견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도록 만
든다. '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은 보험재정 문제에 대한 하나의 가치중립적인 
설명틀로 치장되지만, '도덕적 해이'는 그 태생에서부터 현실적인 활용에 이르
기까지 한 번도 가치중립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보험자와 자본가의 이
해에 충실한 철저한 계급적 개념이었다. '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을 선험적으
로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와 논점은 '의료이용 억제, 비용절감, 혹은 보
험수입 증대 운운'에 갇혀버리게 된다. 그리고 "어쨌든 도덕적 해이는 있는 것
이고, 그러면 도덕적 해이를 막는 조치는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식으로 논리
적 귀결의 방향은 정해진다. 어디에도 '노동자■민중의 건강권의 전면적 확
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게 된다. 시민사회단체에서조차 '건강보험
재정이 이 모양인데 전면적인 급여 확대 요구가 가능하겠느냐?'라며 부담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스스로 주류적 틀 속에 이념적으로 갇혀 있음
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대치는 '보험 급여 수
준의 부분적 확대'와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비용 부담 증대'를 교환대상으
로 상정하는 정도이다. 

노동자■민중 입장에서 쟁점을 새롭게 형성시켜야 한다. 지배계급이 만들어 놓
은 틀 안에서 달성가능한 최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시각과 
입장에서 논의틀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험자와 자본가의 이해
에만 충실한 '도덕적 해이' 따위의 용어와 개념은 애초부터 없던 것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또한 건강유지에 필수적인 의료이용조차 제한당하고 있는 상황에
서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것은 노동자■민중에 대한 기만이며 사기 행각임
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계급사회에서 현실의 의미있는 변화는 주류적 담론
을 거부하면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