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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2158번 등록 2004-01-08 01:13:48
글쓴이 추모위 글쓴곳
제목 17주기를 추모하며
17주기를 추모하며 - 박종철의 삶과투쟁

유난히도 정이 많았던 사람

박종철 열사가 태어난 가정은 평범한 공간이었다. 출세보다는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셨던 아버지, 귀여운 막내를 끔직이 사랑하셨던 어머니와 할아버지 평범
한 구성원들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열사는 정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선배가 
유난히도 인정이 많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어린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생애
의 전반에 걸친 여러 일화들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선생님으로부터 
괜한 오해를 샀던 같은 반의 정신지체 친구를 위해 애쓰던 이야기나, 후배에
게 한 벌밖에 없는 외투를 냉큼 벗어주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운동화를 사주
었다는 이야기, 도피중인 선배에게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했다는 이야기는 
자신의 것으로 선뜻 상대의 부족함을 채워주던 열사의 인간적 심성을 느끼게 
해준다. 

동시대인들과 호흡할 줄 알았던 사람

열사의 이러한 심성이 몸에 배어 있는 생활이었다는 사실은 일상적인 시기의 
모습들에서 확인된다. 절친한 친구의 어머님이 병환으로 입원하셨을 때, 잠을 
줄이며 함께 병간호를 하고, 자신이 갇혀 있는 동안에도 친구의 안부에 먼저 
신경을 썼던 열사. 학생운동의 역사가 깊지 못했던 언어학과의 학우들과 어떻
게든 함께 하기 위해서 열사는 언제나 성실하게 임하였다. 85학번들의 행사에
는 거의 전출하다시피 하였고 후배들과 자신의 삶을 나누려고 노력하였지만 그
들은 선뜻 열사와 함께하지 않았다. 열사의 성실한 노력들은 바로 소기의 결과
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뿐 그들과 호흡하려
던 열사의 삶은 이미 전달되어 있었다. 언어학과 학우들은 늘 성실히 자신들
의 주변에 있었던 열사가 사라지자 한결같이 일어난다.

자신에게는 늘 엄격하였던 사람

아무리 완벽한 운동가라 해도 그가 한사람의 인간인 이상 인간적인 고뇌가 있
기 마련이다. 다른 동지들 앞에서 언제나 모범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열사도 다
르지 않았다.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들에는 열사의 이러한 고뇌들이 종종 드러
난다. 그러나 열사는 스스로 이런 고뇌들을 극복하며 자신을 변화시켜 갔으며 
매시기 중요한 계기들에서 타협하지 않았다. 열사는 부모님이 하시는 걱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삶과 운동 부모님께 당당히 이야기하면서 정직하
게 설득하려 했었다. 열사는 자신을 찾아온 형사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
지, 생명을 위협 당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말하면 되는지를 이
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자신이 지켜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까지
도. 87년의 1월은 그렇게 찾아왔다. 

박종철의 삶과투쟁

1965년 4월 1일 부산 서구 아미동 출생 1984년 3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입학 
1986년 4월1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에 참가하여 구속
1986년 7월15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으로 출소 1987년 1월13일 치안본부 대
공분실요원에 의해 연행
1987년 1월14일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폭행으로 운명당시22세 마석모란공
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14일1시 서울대학 추모식을 14일7시 명동성당 추모제를
박종철열사 17주기 추모위원회 ehfals98 at 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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