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앞가림도 못 하는 놈"이라는 표현이 있다. 예컨대, 형편없는 제 몰골은 아
랑곳하지 않은 채 남루한 남의 행색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옮기는 사람, 
제 집안도 콩가루면서 남의 집안 일에 시시콜콜하게 상관하는 주책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보다 좀더 강한 의미 전달을 원할 때에는 "너나 잘 
해라"란 다소 격하고 도발적인 표현도 많이 쓰인다.

싸움 잘 한다고 집안살림까지 잘 꾸려 나가는 것은 아닐진대, 제 주먹 힘 하
나 믿고 남의 집 살림살이 뜯어고치라며 오지랖 넓게 나대는 놈이 있으니, 바
로 이라크 전쟁 이후 더욱 기고만장해진 '미국'이다.  

최근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중의 하나인 '이라크 보건의료체계 복구 사업'의 
주계약자로 미국계 컨설팅 회사인 Abt Associates社가 선정되었다. 두 차례의 
미국과의 전쟁과 십수년 동안 지속된 경제봉쇄를 거치면서, 공공보건의료를 중
심으로 꽤나 훌륭했던 과거의 이라크 보건의료체계는 거의 붕괴되다시피 했
다. 이제는 독재자의 폭정과 전쟁도 끝났고, 미국의 경제봉쇄도 풀려가고 있으
니 이라크 민중의 건강과 의료이용을 위해 붕괴된 보건의료체계를 복구하는 것
은 당연지사일터. 

그런데 이라크 보건의료체계 복구사업 전반을 미국계 컨설팅 회사가 기획·총
괄한다는 사실이 영 석연치 않다. Abt Associates社는 국가 정책의 '시장 친화
적 개편'을 기본 가치로 하는 회사로서, 미국 정부와 함께 십수년 전부터 개발
도상국의 농업, 보건의료, 환경프로그램을 시장 친화적으로 개편하도록 자문하
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 보건의료체계 복구의 기본 방향이 어떨지는 쉽게 미루
어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사회경제 부문과 마찬가지로 보건의료 부문도 시장원
리를 기본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Abt Associates社는 이 같은 미국 정부와 자
본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여 보건의료체계 복구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실상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한 미국 정부와 자본의 콤비 플레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 의료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해외시장에 대한 의료자본
의 요구가 높아졌는데, 1980년대 이후 미국 정부와 미국 주도의 국제기구에 의
해 이루어진 남미 국가에 대한 미국식 의료제도 이식은 이 같은 의료자본(기
업)의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후, 남미 국가의 견실했던 공공보건
의료체계는 붕괴되었고, 자본은 돈을 벌었다. 재정 지원을 미끼로 보건의료체
계를 개선해 준답시고 벌이는 이런 행악질은 남미 국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
었다. 동남아,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자본이 돈을 불릴 수 있는 것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마수를 뻗어나갔다. 그리고 이제 그 마수는 폭정과 전쟁의 참화
를 뚫고 살아난 이라크 민중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사실 미국은 남의 나라 보건의료체계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주제넘게 간섭할 입
장이 못 된다. 제 코가 석자요, 제 앞가림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
산(GDP)의 14%를 보건의료에 쏟아 붇고 있으며, 일인당 보건의료지출이 다른 
선진국의 2∼3배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건강수준과 의료에 대한 만족도
는 다른 나라에 턱없이 못 미친다. 게다가 전체 국민의 약 15%에 달하는 4천만
명 이상이 의료보험 미가입 상태로 의료보장의 사각지대에 완전 노출되어 있지
만, 이에 대한 국가적인 대책은 전혀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이렇듯 보건
의료에 관한 한, 거시적 비효율의 대명사인 미국이 남의 나라 보건의료체계를 
복구해 주겠다니, 그것도 영리 컨설팅 회사에 맡겨서 해 주겠다니 놀랄 '노'자
가 따로 없다. 

미국이 이라크 보건의료체계 복구를 돕는 길은 공공보건의료를 중심으로 한 예
전의 이라크 보건의료체계로 스스로 돌아가도록 두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모국(母國)인 미국이 이라크를 그렇게 둘 리 없다. 이라크 보건의료체계 복구
사업을 통해 자본이 얻을 이익은 단지 Abt Associates社가 복구사업비로 챙기
게 될 수백∼수천억원(초기 계약금액은 약 12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에 머물
지 않을 것이다. 인력과 시설을 확충하고, 체계를 정비한 이후에도 보건의료체
계의 일상적 유지·운영에는 의약품, 의료용구와 장비, 소모성 재료, 의학기
술 등 수 많은 유무형의 재화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보건의료체계의 기본 성
격과 지향에 따라, 이런 재화를 가지고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돈을 벌어먹을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예컨대 보건의료서비스의 생산과 분배의 공적 성격이 
두드러진 체계에서는 돈벌이가 신통치 않을 것이고, 보건의료서비스의 생산과 
분배의 사적 성격이 두드러진 체계에서는 돈벌이가 쏠쏠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자본이 돈벌이를 쏠쏠하게 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에서 민중의 생명과 
건강이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까?

이번 침략전쟁 직전, 캐나다 조사팀과 인터뷰한 이라크의 한 어린이는 "어른
이 될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을 했다. 폭정과 전쟁, 그리
고 경제봉쇄는 철없이 뛰어 놀아야 할 예닐곱 살 어린이로 하여금 '어른이 되
기 전에 나는 어떤 식으로든 죽을 것이다'라는 차마 떠올리기 끔찍한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폭정과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는 이런 참담한 불안감과 
공포가 끝날 때도 됐으련만, 제 앞가림도 못 하는 미국과 이윤에 굶주린 자본
은 이라크 민중의 미래를 병들게 만들려 한다. 하여, 이라크 민중은 자신의 건
강과 생명과 삶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할 것 같다. 부디, 이라
크 민중의 승리를! 부디, 이라크 민중을 그들의 신이 축복하여 건강과 생명과 
삶을 되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