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공지사항

글번호 3324번 등록 2004-11-08 11:19:09
글쓴이 민중의료연합 글쓴곳
제목 [사회화와노동 244호] 헌재 판결 이후
[사회화와노동 244호] 헌재 판결 이후 
 
 


[사회화와 노동] 제 242호 2004년 10월 22일 금요일




헌재 판결 이후
- 신자유주의 정치의 한계와 위기 

-------------------------------------------------------------------------
-------



지배권력 간의 난타전이 계속되고 있다. 탄핵 사태와 총선 이후 신자유주의 개
혁세력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상생의 정치'가 거론되면서 정국이 비교적 
안정될 것처럼 예상했던 주류적 견해는 완전한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과거
사 청산에 관한 여야간의 공방부터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갈등, 국가 정체
성 논란, 성장우선론 vs 분배론 등으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는 양당의 
대결 구도는 한반도 남녘이 한국전쟁이후 가장 치열한 이념논쟁에 접어든 듯
한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지배권력 간의 이념대결은 행정수도 '위헌' 판결
로 인하여 입법부와 사법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까지 비화되더니 이제
는 총리와 한나라당의 일개 말싸움으로 국회 일정 파행까지 치달아 정국은 가
히 파국이 되었다. 진정 이념의 투사들이요 신념의 강자들이다. 

정책/이념/색깔 논쟁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처럼 노무현 정권 등장이후 -입법부의 장악에도 불구하고-지속적으로 발생하
고 있는 갈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도대체 '왜' 이러한 논란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가? 
애초에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승인하는데 있어서는 양 당 체제로 나눠져 있
는 지배세력간에 이견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지배권력 간의 헤게모니 다툼은 
오늘날의 구조적 위기를 지연시키는 프로그램에 불과한 신자유주의를 누가 유
능하고 효과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남한 경제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종속된 상황에서 90년대 
이전과 같은 (민족)국민국가 단위의 발전전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정
책도 대중의 삶, 구조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이제 위기에 대한 처방전을 낼 수 없는 지배계급에게 대중의 견고하고 안정적
인 지지는 요원한 일이 되었으며 다만 누가 일시적으로 대중을 좀 더 동원하는
데 성공하는가라는 문제로 지배 정치가 전화한다. 2002년 겨울 이 게임에서 승
리자였던 노무현은 집권 이후에도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중단 없는 개혁과 그
를 지탱할 실질적인(관리 가능한) '동원력'을 필요로 했다. 집권 초 노무현이 
꾸준히 추진했던 정치개혁이나 '재신임', '탄핵'과 같은 도박도 모두 '동원과 
지속'에 무게 중심이 실렸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박은 일시적인 효과를 창출
하였고 입법부의 교체라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도박은 도박일 뿐이며 환각제는 
환각제일 뿐이다. 현실에서 아무런 변화도 창출할 수 없는 노무현의 카드들은 
유통기한이 대단히 짧을 수밖에 없으며 바로 여기서 보수주의의 역공이 가능
한 공간이 창출된다.
그러나 보수주의 세력이 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
적 경제전망을 공유하는 터에 뾰쪽한 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이유로 정
치는 점점 답이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경제 위기의 진실을 두
고 이전과 같은 형태로 통치할 수 없는 지배세력이 상호간의 난타전을 통해서 
위기를 호도하는 시나리오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배질서의 위기를 봉합
하기 위하여서 서로간의 아무런 차이도 없는 이들 간의 외형적으로는 대단히 
격렬한 정쟁이 치루어 지는 것이다. 즉 종래의 정치는 간데없는 정치의 위기
인 것이다. 
이제 모든 정책은 동원을 위해서 제시되거나 역설적으로 모든 정책이 개혁으
로 포장되기에 이르는 쇼쇼쇼다. 쇼에는 사회 경제적인 영역들의 이슈는 당연
히도 철저히 배제되며 외형적으로 안정적인 양당체제간의 허구적이지만 선명
한 듯한 차이가 드러나는 의제들이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이 의제들에는 명쾌
한 우선순위조차 없이 정쟁의 도구로서 얼마나 실용성을 띄는가, 얼마나 대중
을 동원할 수 있는가로 서열이 정해진다. 소위 4대 개혁 입법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기에 개혁의 성격은 당연히 공허할 뿐이다. 개혁의 내용은 비
록 그간 민중의 요구를 불충분하게나마 대변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정치적 반대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활용된다. 그렇기에 설사 달성된다 하더라도 반공발전주
의 국가 노선의 잔재로 인해 지체된 정치-행정-사법구조의 혁신 정도를 목적하
는 것일 따름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사생결단을 할 태세지만 각각의 이슈들은 
놀랍게도 1-2달을 넘기지 못하고 다른 의제로 교체된다. 이는 이념논쟁이 실
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덧붙여 이 정치 쇼에서 필수적으
로 출현하는 또 하나의 집단은 NGO와 미디어집단이다.
결국 이 정치 쇼의 유일한 임무는 대중의 분노를 왜곡하여 폭발시키거나 질식
시킴으로서 대중의 정치에 대한 냉소를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정책개
혁/의제를 둘러싼 갈등 역시 무정형적이며 이는 정치 자체를 불확실성의 공간
으로 밀어 넣는다.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행정수도 이전 역시 태생적으로 동원을 위한 정책
과 궤를 같이 한다. 애시 당초 지역균형-분권발전이라는 것은 현재의 구조에
서 진정 레토릭일 뿐이다. 우선 오늘날의 지역 경제 파탄의 원인을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남한의 지역간 격차는 60년대 군사독재개발 시대 이후 경부선을 
축으로 추진된 수출지향의 산업구조(수도권과 영남)와 저곡가 정책이(호남) 맞
물려서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역 차는 IMF이후 수도권/비수도권 구도로 재구조
화되고 있다. 금융, 법률을 중심으로 한 각종 서비스와 통신, 교통이 확보된 
초-민족화된 '글로벌 시티'만을 요구하고 있는 금융적 세계질서는 민족국가 내
부의 분할을 가져온다. 글로벌 시티가 될 수 없는 모든 (비-수도권) 지역은 특
정한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형적 경제구조를 강요당하게 된다. 정권은 
지역 분권화, 자치 등을 외치지만 실상으로는 통치를 포기한 것에 진배 없으
며 지자체들에게 남은 선택은 지역경제의 사활을 걸고 자 지역에 투자개발을 
유치하는 것이다. 투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은 더욱 참혹한데 각종 특구 열풍이
나 기업도시 계획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법적, 정책적 규제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미명아래 철폐된다. 게다가 선택된 쇼케이스 지역도 정작 개발 이익
이 지역민에게 돌아가기보다는 '서울 사람이 내려와서 서울 사람이 일하고 살
며 이익을 챙겨갈 뿐'이기에 지역균형발전과 하등 무관하다. 지역 경제에 돌아
가는 것은 강화된 노동조건 하에서 소규모의 고용효과와 식음료 서비스업을 중
심으로 한 부수적인 수익, 그리고 지자체의 일정한 세수에 불과하다. 결과적으
로 몇 몇 지역이 선택받겠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쇼 케이스에 불과하며 지역 불
균형은 되레 심화될 뿐이다.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空約은 금융세계화에 종속된 경제체제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구호를 통해 대중의 박탈감, 소외감을 자극하여 
충청권에서의 지지로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지 지역균형발전은 애초에 관심사항
도 국가의 명운을 건 사업계획도 아니었다. 

헌재 판결의 의미: 국가기구의 응집력 부재와 정치의 사법화 

금번 행정수도 위헌 판결은 국가기구간의 응집력 부재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사
안이며, 지배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근대 이후 형식적인 
삼권의 분립과는 별개로 삼부의 역할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재조정되어
왔다. (물론 애초에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상이 아니며 오히려 왕
과 귀족 인민의 갈등 속에서 귀족을 보호하려던 사고의 산물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조정의 핵심은 대부분 내각제와 대통령제 등으로 드
러난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리고 현재 신자유주의 
질서가 일반화된 이후 행정부의 입법부에 대한 우위가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
제 금융세계화에 편입한 개별 국가들의 입법부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일정한 제약 하에서만 그 권리가 인정된다. 입법부는 행정부와 각종 
국제기구에 의하여 정해진 입법방향을 선전하고 의결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
행하는 한편 대중의 분노와 열망을 조작 봉합하는 공간으로 기능할 뿐이다. 
올 봄 정치개혁 논의에서 불거져 나왔던 정책정당, 원내정당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아이콘이다.
한데 이번 행정수도 위헌 판결의 경우 의회 내부의 갈등과 의회와 행정부의 갈
등에 사법부의 적극주의가 더해져 충돌을 야기했다. 행정부의 입법부에 대한 
정책적 논리의 우위가 확보되고 행정부가 스스로 대중을 동원하는 구조를 확립
하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로 상징되는 사법부의 법적 논리가 불안정한 행정부
의 논리와 충돌한 것이다. 이는 지배계급 내부의 정치적 응집력이 부재한 상황
을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헌재의 판결은 그러나 단순히 국가기구 내부의 응집력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는
다. 주목할 것은 지배분파간의 갈등/대립에서 누구도 헤게모니를 얻거나 정당
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현상이 상시화 되고 그 종국적인 해결을 법을 통해서 얻
는 경향이다. 일상적인 정치세력간의 갈등이나 의견대립 일반이 헌법재판소를 
통해서야만 해결되는 현상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력 일반이 새로운 정치
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데 실패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지배세력이 안정적
이었다면 탄핵과 행정수도 문제가 헌법재판소까지 갈 이유는 하등 없었다. 이
러한 법치주의의 소환을 후진적인 한국사회의 정상화로 파악해서는 결코 안 된
다. 대중의 정치적 대표의 원리로 운영되는 의회의 지위가 하락하고 기술적 관
리적 지식으로 무장한 행정부의 우위가 확실한 상황에서 물리적 권위적 힘을 
갖는 사법부로 권력의 중심이 최종적으로 이동된다는 것은 민중의 정치적 해결
능력을 봉쇄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남한의 사법부는 철
저한 관료재판으로서 아직까지도 인민의 최소한의 참여(배심제)도 허용하지 않
고 있는 철저히 '임명'된 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억압적 
국가기구에 불과하거늘 그 위상 강화는 결국 민중에 의한 해법이 봉쇄되고 사
법에 의한 위로부터의 심판이 강화되는 것은 폭력적 장면이다. 

정치의 위기에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력은 구조적 위기를 구원할 수 없고 동시에 기존의 형태
로서 정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의 불안정한 반민중적 개
혁은 지속될 것이며 외적으로 격렬한 상태의 의회 내부의 갈등은 반복될 것이
다. 실상 양당의 태생이 근본적으로 모두 보수-반공주의이자 (한민당, 공화
당) 친미파일 뿐인데다가 그 차이는 미디어와 NGO 및 지식인 집단을 활용한 스
타일의 정치에 의존할 정도로 빈약하다. 의회 내부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개혁
이라는 이름으로 피지배계급의 의제를 압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뿐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정치의 위기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상시적인 위기에 대응하여 
(안정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것은 포기한 채) 우선 이를 지배세력간의 무능/교
체를 통하여 책임을 전가하는 한편 정책의제들의 끊임없는 생산 동원함으로서 
대중의 열망을 사안별로 쟁점들을 분할하거나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
간의 갈등을 기존의 보수/자유-진보의 낡은 관념으로 인식한다면 대중운동이 
사태를 적합하게 해결하기 위한 대중의 정치적 공간은 봉쇄된다. 
그렇다면 운동진영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
의 위기, 정치의 실종현상이 노무현 정권 이후 반복되어 출현해왔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운동 진영의 대응이 한계적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
재의 정세에서 기존 '지배정치의 위기'가 드러난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노동
자 민중운동의 활성화, 급진화라는 '기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태를 냉정하
게 직시한다면 민중운동 진영은 국가기구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자신의 의제
를 설정하기보다는 선점(합의)당해오며 지배 정치의 위기에 편입되어왔다. 4
대 입법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에서 보여지듯이 운동진영이 자신의 과제를 위
로부터 부여받거나 혹은 정당을 통한 입법, 직접적인 교섭 등의 형태로 해결하
는 경향은 결과적으로 민중운동 역시 현재의 정치의 위기를 폭로하고 드러내기
보다는 공명하는 역할, 관리된 변화에 포섭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정치로
는 대중에게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가진 세력으로 각인될 수 없다. 오히려 민
중의 심판. 정치 역시 곤란에 빠진 셈인데 이는 기존의 국가내부의 정치로부
터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이 지점을 넘어서지 못했기에 그동안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외적으로는 격렬
한 형태로 벌어지고 시기시기 구조적 위기가 폭로된 '열린 정세'를 형성하고
도 종국에는 국가기구에 의하여 분할-포섭되어 핵심적인 쟁점들이 부차화 되거
나 소멸되는 혹은 기존의 정치에 위탁하여 끝나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며 정
국의 주도권은 다시 노무현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만약 민중운동 진영이 응집력을 상실한 채 계속 국가기구들과의 갈등/교섭을 
통해서 민중의 요구가 가지는 고유의 '보편성'을 포기하고 일부의 '특수성'에 
그치는 투쟁에 머무르거나 불확실하게 나열(당)한 요구들만 표출한다면 이는 
지배정치의 위기를 심화하는데 함께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배정치 그 자체와 정치의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지 지배정치의 틈새
를 메워 줄 수 있는 또 다른 (진보)정치가 아니며, 대중운동을 통한 봉기이지 
사법/입법을 통한 문제해결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의 운동은 현
실적이고 실증적인 대안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면서 지배세력에게 그 책임을 전
가시키는 형태로서는 더 나아갈 수 없다. 관건은 누구도 대답을 갖지 못한 구
조적 위기를 그 자체로 발본적으로 드러내어 대중 스스로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형성하는 봉기적 관점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데 있다. So-La



-------------------------------------------------------------------------
-------


발행처: 사회진보연대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신성빌딩 4층 T.778-4001 F.778-
4006 
E-mail:pssp at jinbo.net 홈페이지 : http://www.pssp.org 통신방 : go pssp(참
세상)
패스워드를 입력해 주십시오. 삭제한 게시물은 복구할 수 없습니다.
패스워드:    
| 목록보기 | 이전페이지 |

 

 

[140-801]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48 신성빌딩 4층
TEl : 02) 774-8774   Fax : 02)774-8773  E-mail : tsmyr@jinbo.net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