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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3393번 등록 2004-11-20 14:27:08
글쓴이 학살규명 글쓴곳
제목 [민간인학살 100문 100답]5편:흰옷 입은 사람은 쏴죽여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100문 100답

발행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ㅣ 편집 사무처ㅣ삽화 박건웅ㅣ발행일 2004년 11월 19 일

 

5 편 : 흰 옷 입은 사람은 무조건 쏴 죽여라!

39. 소달구지와 함께 가고 있는 주민들을 포위하라. 반복한다. 그들을 포위하라

(노 근리 사건)

노근리 사건은 1999년 9월 두 건의 미국 비밀 문서와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군인의 증언을 토대로 AP 통신에 의해 공개된 후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 지 3일간 미군이 피난 가던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주겠다며 끌고 가다 가 폭격, 기총소사로 400여 명을 학살한 것입니다. 당시 7기갑연대의 미군 중 위였던 로버트 앤 캐롤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 사건은 우리가 민간인이건 군인 이건 그 누구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한 사 람도 전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어오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사 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40. 곡계굴의 잠들지 않는 통곡소리 (단양 곡계굴 사건)

1951년 1월 단양군 영 춘면 주민 가운데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노인, 어린아이들과 영월 등지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가다 길이 막혀 더 내려가지 못한 강원도 사람들 등 줄잡아 400여 명이 곡계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1951년 1월 20일 오전 10시쯤, 미군 비행기 4대가 갑자기 곡계굴을 향해 4시간 동안 집중 폭격을 가했고 피난 민들은 흰 옷을 흔들어 피난민임을 알렸으나 폭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폭탄 파편이나 기관총에 맞아 쓰러졌으며 좁은 굴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 대부분이 질식사했습니다.

41. 태극기 흔드는 민간인을 향한 미군의 폭격 (익산)

인민군이 수원 근처에 있던 1950년 7월 11일, 전시 비상 상황에 대한 교양교육을 받고 휴식중이던 기 관사들은 상공에 나타난 비행기에 성조기가 그려진 것을 보고 태극기를 흔들 며 아군임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B29 전폭기 2대가 이리역(지금의 익산역) 기 관차 사무소, 송학동 민가, 평화동 호남선 철길과 변전소 등을 무차별 폭격했 고 이로 인해 3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습니다.

42. 헤이븐 호의 함포사격 (포항 폭격)

미 해군기록도서관의 태평양함대 소속 구축함 헤이븐 호 전투일지에 따르면 1950년 9월 1일 오후 2 시 8분 해안함포사격통제반으로부터 포항 여남동 송골계곡 피난민에 대한 함포 사격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헤이븐 호는 육안으로도 피난민임을 식별할 수 있 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목표물이 인민군이 아니라 피난민이라는 사실 을 사격지휘대에 알렸으나 지휘대는 인민군이 섞여 있다는 첩보가 있다며 재 차 폭격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해변 백사장에는 당일 새벽 포항시내로 들어온 인민군을 피해 포항지역 주민들 1천여명이 피난길에 나선 중이었고, 이 폭격으 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포항 일대에서는 1950년 7월부터 10월 사 이 곳곳에서 미군폭격으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43. 팔 다리가 잘린 시신들이 즐비했다

(사 천 조장리, 마산 곡안리, 진주 등 폭격)

1950년 8월 2일 사천 시 곤명면 조장리 앞 하천 제방에 300여 명의 피난민이 모여 있었습니다. 상공 에 정찰기가 나타났다 사라진 지 30분쯤 지난 후 미군 폭격기 4대가 폭격, 기 총사격하여 1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마산에서는 1950년 8월 11일 진전면 곡안리 재실에 모여 있던 피난민을 폭격, 기총사격하여 학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8월 10일 밤 미군이 통역관과 함께 재실을 찾아 와 이들에게 피난을 권했다는 점입니다. 피난민임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음 에도 11일 아침 인민군과의 교전에 광분한 미군이 피난민 속에 인민군이 있다 며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것입니다.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진주 곳곳에 서 피난민에 대한 폭격이 자행되는 등, 경남 일대에서 유사한 피해가 속출했습 니다.

44. 더 이상 폭격할 곳이 없다? (북한 지역 폭격)

미군의 폭격은 군사시 설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며 민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전쟁 초 6개월 동안 미 극동 공군 폭격 사령관을 지낸 오도넬은 맥아더 청문회 증언에서 중국군이 개입하기 전에 이미 북한의 5개 주요 도시(평양, 성진, 나진, 원산, 진남포) 가 모두 파괴되었다며 "이름을 붙일 만한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더 이상 목표 물이 없었다. 평양 시내는 허허벌판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 자비한 폭격이 정전 1분 전까지도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민 치하에서 살아남은 게 죄? 부역혐의자 학살

 

45. 식량 문제도 있고 해서 죽여버렸다? (강화에서의 학살)

강화 지역에서는 1950 년 9. 28 수복 후인 11월경부터 1951년 1.4 후퇴 직후까지 선원면 냉정리 찬우 물터, 길상면 온수리 공설운동장 부근, 강화대교 갑곶나루터, 옥림리 옥계갯 벌 등 곳곳에서 인공치하의 부역혐의자 및 그 가족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고 피해자의 수는 수백 명에 이릅니다. 학살은 경찰의 방조 아래 우익청년단 인 '강화향토방위특공대'가 저질렀습니다. <중앙일보>에 연재된 '민족 의 증언'(1972년 7월 17일)에서 특공대장 최중석은“1월 7일 인천형무소에 수 감돼 있다가 석방된 공산당원 1백여 명을 생포, 그중 악질당원 60여 명을 식량 문제도 있고 해서 처형했다”고 당당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46. 저기, 금정 구뎅이에 가서 다 죽었다 (고양금정굴 학살)

1995년 고양시 탄현동 일제 시대에 금을 캐던 수직폐광굴인 금정굴 을 발굴하기 전까지는 경찰과 우익치안대, 태극단에 의해 자행된 고양, 파주 일대의 민간인학살은 전설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유골이 나올 리 만무하다고 장담하던 금정굴에서 어린아이, 부녀자를 포함해 최소 153구의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고양 파주 지역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1950년 한국전 쟁이 발발하자마자 피난갈 틈도 없이 인민 치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9.28 수복 직후인 1950년 10-11월 사이에 인민군에게 부역했거나 부역자의 가족이라 는 혐의로 수천 명이 고양 금정굴, 그리고 가까운 강가나 골짜기에 끌려가 불 법 학살되었습니다.

47. 죄가 가벼울수록 죽을 확률이 높다니 (부역자 재판)

수복 직후 전국 곳곳에 서 자행된 부역혐의자 학살의 경우 인민 치하에서 피해를 당하거나 억눌려 있 던 사람들에 의한 보복학살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때문에 부역 정도가 경미할 수록 학살당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족을 데리고 월북한 열성 부 역자들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으며 단신으로 월북한 경우에는 그 가족이 대살되 었습니다. 또 스스로 부역이라고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인민 치하에서 그 저 '생존'했을 따름인 많은 이들이 우익에 의해 자의적으로 좌익 혹은 좌익 동 조자로 분류되어 군, 면, 리 단위에서 즉결심사 후 학살되었습니다. 이 과정에 서 사적 보복이 빈번하게 자행되었고, 이렇게 혐의가 적어 재판에도 넘겨지지 않은 사람들이 임의로 학살된 데 반해서, 재판을 받은 부역자들의 경우에는 대 부분 훈방되어 살아남았습니다. 참고로, 서울 지역에서 재판에 회부된 5만 5천 여 부역혐의자의 경우, 수복 직후의 광풍 속에서 검거된 160여 명이 사형당했 을 뿐 대부분 경미한 형을 살거나 훈방되었습니다. (6편에서 계속)


4대 개혁입법(과거청산법 제 정,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법 제정)을 위한

연합집회가 20일 토요일 오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있습니다. 참여, 지지, 격려 바랍니다.

일시 : 2004년 11월 20일 토 요일 늦은 5시 30분 / 장소 : 여의도 국민은행 앞


1호 법 쟁취 농성 투쟁 돌입 (2004/11/3)

2호 340명 인권활동가, 과거청산 법 제정 촉구 선언 (2004/11/4)

3호 어찌 잊겠는가 그 속에서 스 러진 영령들이여, 합동위령제 엄수 (2004/11/8)

4호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 민위원회 공식 발족 (2004/11/9)

5호 과거청산법 국민 절반 이상 지지 (2004/11/12)

6호 한나라당 과거사진상규명법 에 대한 흑색선전 중단하라 (2004/11/16)

7호 과거청산법 포함 입법청원 (2004/11/17)


1편 : 이땅에서 해원하지 못한 억울한 죽 음들 (보러가기)

2편 : 온 국민이 잠재적인 적! 국가가 국 민을 선별하다 (보러가기)

3편 : 불안정한 해방정국에서 학살은 이 미 시작되었다 (보러가기)

4편 : 학살은 의심할 바 없는 최상층의 지시 (보러가기)

*자세한 내용은 학살규명 범국민위 사무처(이춘열 019-265-5694, 02-773-5158)로 문의바랍니 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는 학살의 진실을 세상에 널리 알려 사회적 공론화와 입법 을 통한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 학살의 진상을 밝혀 다음세 대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잣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살 아남은 우리들이 해야할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여려분의 참여와 후원은 폭력과 억 압의 시대를 넘어 인권과 평화의 시대로 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100만 피 학살 원혼들이 해원하고 유족들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은폐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동참해주십시 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서울 용산구 후암동 445-8번 지 3층(140-190)ㅣ전화/전송 02-773-5158 ㅣ genocide2002 at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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