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기 없는 얼굴로 한 아이가 녹슨 침대에 누워있다. 그 아이의 얼굴과 몸에
는 파리가 들끓고 있다.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아이의 엄마는 힘없이 손을 휘
저어 파리를 쫓고 있다. 어두컴컴한 병원은 소독약 냄새 대신 각종 오물로 인
한 악취가 가득 차 있다. 걸핏하면 전기가 나가고, 의약품도 없다. .... 뇌
막염에 걸린 두 살배기 여자아이가 방금 전에 숨을 거두었다. 담당 의사는 50
센트 짜리 호흡용 튜브만 있었더라도 아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경제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호흡용 튜브를 구하는 것
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엄마는 시신 옆에서 숨죽여 울고 있고, 아빠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1999년 미국의 「시애틀 포
스트 인텔리전서」(Seattle-Post-Intelligencer)에 게재된 기사 중의 일부
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걸프전 때의 민간인 희생은 익히 알려져 
있다. 미국의 첨단미사일은 민간인의 피난처를 무참히 파괴했었고, 10만 여명
의 이라크 어린이가 찢겨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학살'이라는 말 외에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참상이었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것은 걸프전 이
후에도 학살이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걸프전 이후, 경제제재 때문에 사망한 이라크 민중이 무려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유엔은 추산하고 있다. 전쟁으로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가 붕괴되었
고, 계속된 경제제재로 인해 전쟁 이후에도 붕괴된 사회 인프라를 복구할 수 
없었다. 경제제재 이후 이라크의 국가 소득은 97% 가량 떨어졌고, 수입물량
도 90% 이상 떨어졌다. 식량과 의약품을 포함한 각종 생필품의 가격은 천장부
지로 뛰어올랐다.

전쟁 전 이라크는 비교적 훌륭한 보건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의료장비
와 전문인력을 갖춘 의료기관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으며, 의료기관간의 연
계도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시 거주민의 97%, 시골 거주민의 79%가 보건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과 경제제재는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허물어 버렸다.

병원에 가도 약이 없고, 마취제와 수술장비가 없어서 외과수술을 할 수도 없
다. 이라크의 의료기관은 시설 운영에 필요한 장비와 물품을 1/4 밖에 갖추
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현재 이라크에서 행해지고 있는 외과시
술은 1990년의 30∼35% 수준에 불과하다. 유니세프의 추산에 따르면 매일 최
소 200여명의 어린이가 경제제재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망하고 있다. 유엔은 
매달 5,000여명의 5세 미만 어린이가 경제제재의 결과로 사망하고 있다고 밝
혔다. 이라크 어린이의 1/3이 영양실조이고, 1/4이 저체중 상태이며, 1/4
이 깨끗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 전쟁 이전에는 영양실조 때문에 사망
한 5세 미만 어린이가 거의 없었는데, 전쟁 이후에는 매월 최소 2,690명에
서 최대 5,357명의 5세 미만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다. 1990년 인
구 10만명 당 11명 꼴로 발생하던 장티푸스가 1994년에 이르러서는 142명이 
발생해서 무려 10배 이상 발생률이 증가했다. 그리고 1989년에는 한 건도 발
생하지 않았던 콜레라가 1994년에는 인구 10만명 당 1,344명 꼴로 발생했
다. 결핵 발병률은 1989년에서 2000년 사이에 무려 세 배 가까이 증가했고, 
말라리아도 1994년과 1995년 사이에 매년 10만명이 발생했다. 홍역과 소아마
비도 2배 이상 증가했다.

영아 사망률과 5세 미만 어린이 사망률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1990년 1천명
당 40명 수준이던 영아사망률이 1998년에는 1천명당 100명으로 증가했고, 5
세 미만 어린이 사망률도 1천명당 50명에서 125명으로 증가했다. 최근의 '경
제제재가 이라크 어린이 사망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경
제제재로 인해 이라크 어린이의 사망 위험률이 약 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
다. 이와 함께 인슐린과 같은 기본 의약품 부족으로 만성질환 사망률도 증가
했다. 유니세프는 만약 경제제재가 없었다면 1991년에서 1998년 사이에 사망
한 어린이 중 약 50만명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는 이라크의 가난한 민중을 역병이 창궐하는 중세의 어
느 시대로 몰아넣었다. 그로 인해 걸프전 희생자의 몇 곱절에 달하는 이라크 
민중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다. 지난 12년간 이라크 민중은 오로지 살기 위
해서 걸프전 당시보다 더 격렬한 삶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전세계의 묵인 
아래 이라크 민중은 계속 학살당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민중을 그렇게 죽이고도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미·영 제
국주의는 지난 12년간 계속된 집단학살의 대미를 장식하기라도 하듯 이라크 
침략전쟁을 기어코 시작했다. 전쟁이 전개되면서 무고한 희생자도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다. 독재자에게 고통받고, 경제제재로 곤궁한 삶을 이어오던 이라
크 민중은 이제 자칭 '해방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번 침략전쟁이 집단학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전쟁의 승리자가 될 것으
로 예상되는 미국은 이라크 경제를 손아귀에 틀어쥘 것이고, 그만큼 이라크 
민중의 삶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유엔도 지난 1월 출간한 보고서에서 이라
크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5세 미만 어린이의 30%, 약 1백26만명에 달하는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의 학살을 방조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라크 민중에게 결코 씻
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이제 더 이상의 학살은 없어야 한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만들면 그 사람도 피눈물 흘리게 된다'는 옛 말을 무섭게 여
길 줄 알아야 한다. 부디 우리 손에 더 이상 이라크 민중의 피를 묻히지 않
게 되기를...... 두 살배기 아이의 시신을 옆에 두고 통곡하는 여인이 더 이
상 없기를...... 굶어죽고 병들어 죽을 이라크 민중을 놓고, 주판알을 퉁기
기에 여념이 없는 권력자의 행악이 바로잡아지기를...... 독재, 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전쟁, 침략, 자본, 이 따위 것들이 더 이상 세계 민중을 고통스
럽게 만들지 않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