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8번 : 盧武鉉-權良淑 부부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
| 글쓴이: 김대업 |
등록: 2002-12-12 11:34:30 |
조회: 540 |
학살당한 유족들이 盧武鉉-權良淑 부부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6·25 때 盧武鉉 후보의 장인(남로당 간부)이 주도한 학살사건의 피살자 가족
들 공개 證言·편지, 그리고 사실 검증
『당신네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의 가슴을 송곳으로 찌릅니다』
가족 대표집필·卞在奐 경제학 박사
1947년 경남 창원군 진전면 출생. 마산高·서울大 약학과 졸업. 워싱턴주립大
경제학 박사. 뉴욕시립大 교수, 충남대 교수 역임.
50여 년 전에 경남 창원군 진전면에서 토착 좌익들이 인민군의 비호 아래 11명
의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 최근 왜곡 보도되고 있다. 李仁濟 민주당 대통령 경
선후보 측에서 盧武鉉 후보 장인의 좌익활동을 거론하고부터 장인 權五晳의 친
족, 함께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 盧武鉉 후보 자신과 부인 權良淑씨, 盧후보
의 여성특보 이은희 등이 사건의 전말을 축소, 왜곡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6·25 당시 좌익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양민의 유족들은 이에 분노가 폭발
하여 50년 간 묻어 두었던 아픈상처를 들추어내서라도 사건의 진상을 밝혀 故
人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 글은, 6·25 때 인민군이 우리 마을을 점령하기 전까지, 盧武鉉 후보의 장
인 權五晳씨 등에 의해 학살된 卞百燮 면장의 사랑을 받고 자란 조카인 필자
가 사건 당시 함께 학살된 양민 유족들의 뜻을 모아 쓴 글이다.
분노로 잠 못 이루는 밤
아무리 극악한 사건이라도 법의 심판을 받고 세월이 지나면 피해자이든 가해자
이든 법의 판결을 수용하고 잊어버리면서 상처가 아문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재
론될 때, 비록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가해자 측이 의도적으로
죄를 부정하거나 왜곡한다면 피해자는 사건 당시보다 더 큰 분노와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盧武鉉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장인 權五晳씨가 관련된 경남 창원군 진전면 치
안대 사건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李仁濟 후보
가 盧武鉉 후보 장인의 좌익활동을 거론한 후 언론에 보도된 權五晳씨 측 해명
과 변명을 보고, 權五晳씨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족들은 가슴 깊이 묻
어 두었던 분노가 새삼스럽게 치밀어 올라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權五晳씨의 친족과 權五晳씨와 함께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權五晳씨가 시
각장애인이었다는 점을 들어 범죄를 축소하고 연민의 정을 끌어내려 하고 있
다.
權五晳씨의 조카라는 사람은, 『전혀 앞을 못 보는 종숙께서 공산당에게 부역
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 공직에 근무하다 하루아침에 두 눈을 실명
해 기나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외로운 종숙은 전쟁이 발발하자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외로움에, 주·객관이 무시된 채 군당위원회에 부역을 하였으나, 이
름만 선전부장이지 종숙께서 행한 부역형태는 우리 모두가 그때 당시를 보지
못 했지만 이해가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했다(月刊朝鮮 2002년 5월호).
그 외에도 『완전 실명한 상태에서 어떻게 좌익활동을 할 수 있었겠느냐』,
『당시 수사당국은 權씨가 장님이라는 점을 이용, 權씨의 손도장을 마구 찍은
뒤 온갖 죄명을 뒤집어씌운 것으로 알고 있다』, 『눈이 먼 뒤부터 집안에 틀
어박혀 외부와 접촉을 끊었는데, 한밤중에 양민 학살을 감시했다는 게 도대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 『맹인이 학살현장을 어떻게 감시할 수 있었겠
나』, 『눈먼 봉사가 좌익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나』 등 權五晳씨가 시각장애
인임을 들어 權씨의 좌익활동과 범죄사실을 축소하고 있는 발언들이 많다.
權五晳씨의 아들 권기문(盧武鉉 후보의 처남)씨마저도 『사고로 눈을 잃었는
데 …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지만 이
를 입증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임을 부각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동정도 살 수 있고, 상
식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발언들이다.
대검찰청의 「좌익사건실록」에 기술된 『학살하는 현장 부근에서 학살을 용이
하게 감시하고』라는 표현과,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서로 부합
되지 않는다는 「상식」에서 보면 호소력이 더 커진다.
필자도 시각장애인이 「학살을 용이하게 감시」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말들을 뒤집어 생각해 보자. 얼마나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얼마
나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기에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선전부장
이 되고,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되고, 치안대가 되었겠는가. 눈이 멀쩡한 많
은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시각장애인을 간부로 기용한 사실은 權
五晳씨의 좌익사상이 투철하였고 좌익활동에 적극적이었음을 방증하고 있다.
직속 상관을 학살한 냉혈한
權五晳씨에 의해 학살당한 필자의 仲父(중부) 卞百燮씨가 權씨가 면서기로 일
할 당시 면장으로 재임한 사실로 보아 權五晳씨가 바로 직속 상관이었던 사람
을 학살한 것이고, 그만큼 극렬한 공산주의자였고 냉혈한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필자가 들은 증언들에 의하면,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험준한 산의 비탈
에 위치한 오지 마을에서 자행된 인민재판을 주도했고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고 한다. 군 단위의 조직, 즉 창원군 노동당, 창원군 인민위원회, 창원군 반동
조사위원회 등에서 부위원장을 했다고는 하나 당시 인민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
은 창원군 면 중 맨 서쪽에 위치한 진전면이 유일하였기 때문에 진전면 출신
의 부위원장인 權五晳씨가 실질적으로 최고의 지위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
작할 수 있다.
걸어다닐 때는 부인이 인도하였으며, 말은 분명하고 유식하게 했다고 한다.
「반동분자」를 심문하고 판별할 때 손바닥을 만져보고 손바닥이 거칠고 못이
박여 있으면 노동자 그룹으로, 손이 매끄럽고 부드러우면 부르주아로 분류하였
다고 한다.
일제시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면서기로 일했을 정도라서, 동료직원의 증언처
럼 『외모도 준수하고 똑똑한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양민을 학살하
기로 결정한 인민재판에서 검사·변호사·판사 역할 등 1인 3역을 한 유일한
재판관이었고, 그의 말 한 마디로 양민의 生死를 가름하였다고 한다. 『인민군
이 「반동분자」 색출작업에 협조하라고 요구하여 어쩔 수 없이 면직원과 경찰
의 이름을 알려준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용의주도하게 인민재
판을 수행했던 것으로 확신한다.
權五晳씨의 아들 권기문씨가 『… 의문이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은 없다』고 말
한 것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입증할 방법은 있다. 지금도 생존해 있는 권기문씨의 어머니가 입증할 수 있
다.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권씨의 부인, 즉 권기문씨의 어머니
가 항상 인도하여 다녔다. 그래서 권기문씨 어머니는 권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봤다. 시각장애인이라도 지팡이로 걸어다니면서 혼자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
고 생각할지 모르나, 권씨가 인민군 치하에서 활동한 장소는 보통 사람도 눈
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 할 정도로 길이 험하고 비탈진 곳이라서 안내자 없이
혼자서 지팡이로 다니기는 불가능한 곳이다. 권씨는 당시 실명한 지 5년이 채
안 되었기에 그런 험한 길을 혼자서 다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생존해 있는 權五晳씨의 부인, 즉 권기문씨의 어머니가 권씨의
활동내용을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당시 3세였던 盧武鉉
후보의 부인權良淑씨도 아버지가 활동한 현장에 같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고,
權五晳씨의 시각장애, 權良淑씨의 연령 등으로 보아 세 가족이 동거했을 것으
로 생각되지만, 權良淑씨는 세 살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기문씨의 어머니는 모른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를 비판할 자격이 있나?
權五晳씨의 활동현장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權五晳씨가 시각장애인임을 부각시
켜 동정심을 유발하고 상상을 동원하여 사건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 시각장애
인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현장을 목격하였기 때문에 權五晳씨의 활동을 가
장 자세히,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을 權五晳씨의 부인이 증언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놓아두고 왜 주변에서 변명하려 드는
가.
權五晳씨의 부인은 지금이라도 공개석상에 나와서 남편인 權五晳씨가 어떤 활
동을 했는지, 남편의 진짜 사상은 어떠했는지, 왜 權五晳씨가 무기징역형을 받
았는지, 수감중 폐결핵과 양안 실명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병보석
으로 풀려 나왔다가 잔형 집형을 위해 再수감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왜 남편
은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옥중 사망을 하게 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죄가 있
으면 죄인으로서, 떳떳하면 떳떳한 대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 국민은 이것들
을 알 권리가 있다.
사위가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사람도
없고 시비 걸 사람도 없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큰일이 있으면 조상의 영
혼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고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盧武鉉 후보가 장인
의 무덤을 찾은 것은 보통 사람의 조상 성묘와 다르다.
盧후보가 필부가 아닌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이고, 묘소의 주인공이 6·25 때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양민 학살을 주도한 죄로 무기징역을 받고 옥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盧武鉉 후보가 장인의 묘소를 찾은 것은 보통 사람의 경우
와는 달리,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어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삼
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우리의 민주 국체와 정반대의 사
상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유린한 인민군의 힘을 빌려 양민을 학살한 사람의 무
덤을 참배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盧武鉉 후보가 장인의 묘소를 찾은 자리에서, 『(장인은) 사랑하는 아내의 아
버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했다. 어디서 많
이 듣던 소리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신사에
안장된 사람들은 우리 조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했다. 우리
나라와 중국 등 일본의 침략을 받은 국가들은 자기들 나라를 침범한 전범들이
함께 있다고 하여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를 극렬히 반대했다.
만약 盧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재직하고 있었을 때 일본 총리가 다시 위와 같
은 변명을 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면 盧후보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일본 총리가 자기 조상의 영혼에게 참배하는 것을 이웃나라 한국
과 중국이 왜 극렬하게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올 때 「盧武鉉
대통령」은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
盧후보가 장인 묘소를 참배할 때, 멀지 않은 거리(3km 이내)에 그 장인에 의
해 무참히 학살당한 「반동분자」들의 묘소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였는가. 좌익
활동을 하고 양민을 학살한 장인의 영혼은 위로하고 또 후손의 출세를 고하면
서, 그 장인에 의해 학살된 양민의 영혼은 무시해도 되는가. 아버지를 잃고 남
편을 잃고, 형과 오빠를 잃고 평생을 가슴앓이한 후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는가. 살인자의 자식이 출세하여 아버지 묘소에서 성대하게 성묘를
할 때 그 옆에 누워 있는 피해자의 영혼과 그 유족의 마음은 어떠할지 생각해
보았는가.
자기 가족만 생각하면 되는 보통 사람들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살인사건이라
고 하더라도 가해자는 그 위세를 자제하고 삼가야 한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 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盧후보가 장인의 묘소에 참배하지 말았어
야 했다는 뜻이 아니다. 백보 양보하여, 盧후보의 말대로 『좌우로 갈라 싸운
사람 모두가 시대와 역사의 피해자였다』고 하더라도, 다른 한쪽 피해자에게
한 마디 위로의 말은 있었어야 하지 않는가?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좌익 유가족에게도 연금을 줄 것인가?
盧후보는 장인의 묘소에서 『막상 일선에서 죽창 들고 싸운 사람들은 정치하
던 사람이 하는 대로 깃발만 보면 편 갈라 바닥에서 싸웠다. 어쨌든 좌우로 갈
라 싸운 사람 모두가 시대와 역사의 피해자였다. 전쟁은 민중이 아니라 지도자
가 했다. 지도자가 결정하면 수천, 수만의 민중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깃발 들
고 사명감 갖고 목숨을 던진다』고 말했다고 보도되었다.
자신의 장인이 일선에서 죽창 들고 싸운 말단 노동당원이었고, 전쟁을 결정한
지도자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 다른 사람들은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들린
다.
盧후보가 장모나 부인으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겠지만, 盧후보의 장인 權五
晳씨는창원군 노동당 부위원장,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반동조사위원회 부위원
장 등의 직함을 가진 양민학살의 최고책임자였다. 이런 사람을 민중의 한 사람
으로 간주하여 죄상을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5共청문회 당시 盧후보는 광주사
태의 최고책임자인 전두환 前 대통령은 물론 일선 지휘관에게까지 책임을 추궁
하지 않았는가?
만약 盧후보의 부친이 토착 좌익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하겠는가? 모두가 피해자라면, 좌익에 의해 희생된 우익인사의 유족에게 국
가에서 연금을 주듯이 좌익활동을 하다 감옥 간 좌익인사의 가족에게 똑같이
연금을 줄 것인가?
좌익의 유가족들이 『우리도 연금 탈 날이 올 것이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
닌다고 한다. 경찰을 시너불에 태워 죽인 동의大 학생들을 민주화운동가로 추
앙하자는 판국이니 그들도 그런 기대를 가질 만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거니와
盧후보는 좌익과 우익 모두가 피해자라는 고도의 수사로서 장인에 관한 진실
을 호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
盧후보는 장인 묘소를 찾은 자리에서 『장모와 처남은 다시 들추기 싫어한다.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 장인은 얼굴도
본 적이 없다. 변명하자면 나는 모른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의미를 붙인다
면 그것은 백성의 일이다. 지난날의 일이다』고 했다고 보도되었다. 5共청문회
도 「지난날의 일」을 두고 따졌다. 장모와 처남이 들추기 싫어한다고 묻어둘
일도 아니다. 盧후보 말대로 「백성의 일」이고 국민의 관심사다.
장모와 처남이 들추기 싫어하더라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盧후보가 모른다
는 것은 거짓말이다. 장인의 얼굴을 못 본 것은 사실이지만 장인의 행적을 모
른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정말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장모에게 진지하게 물어보
아야 한다. 5共청문회 때 盧후보처럼 소위 「모르쇠」로 우겼던 「증인」에게
盧후보는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권양숙씨, 모르면 어머니에게 물어보세요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고? 판사를 하고, 변
호사를 하고, 국회의원을 하고, 장관을 역임한 盧후보가 어떻게 이렇게 사리
에 맞지 않는 말을 인용할 수 있는가? 무식해서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
이 죽창 들고 따라다닌 것과 소신에 따라 양민 11명을 죽인 것과 차이가 없는
가?
인민군 총부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노역을 한 사람과 자기가 모시던 직속 상
관(卞百燮 면장)을 체포한 지 20여 일 만에 처형한 인민재판관 사이에 의미 있
는 차이가 없는가? 盧후보가 판사로 재직할 때도 살인의 주범과 공범을 똑같
은 형량으로 판결하였는가?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은 盧후보의 장인이 아
주 크게 가담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들린다. 盧후보는 장인이 주범이었
는지 공범이었는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盧武鉉 후보의 부인 權良淑씨가 아버지 權五晳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 언급
한 것
은, 지난 4월27일 盧후보가 민주당 大選 후보로 결정되는 것을 지켜보다 중앙
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했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언급하
기는 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아 상세하게 얘기할 수 없습니다 … 사실 저는 부모님 일은
잘 모릅니다. 부모님 일을 모른다는 게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땐 나이
가 어려서…』라는 말뿐이었다.
「옆에 있던 이은희(36) 여성특보는 『부친은 1948년 막걸리에 메틸알코올을
잘못 타 먹어 사모님이 두 살 때 실명했다. 그 상태에서 6·25 당시 공산군의
부역을 강요받아 수복 후 구속됐으나 곧 석방됐다. 그런데 5·16 이후 사회불
안 요소를 격리한다는 차원에서 벌어진 예비검속으로 다시 투옥돼 1971년 마산
교도소에서 옥사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되었다.
두 사람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權良淑씨가 사건 당시 어려서 그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수긍이 가지만, 부모님 일을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라
는 것을 확신한다. 필자도 權良淑씨와 동갑으로 6·25 때 세 살이었는데, 그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 피란을 동생 돌잔칫날 갔다는 것, 돌잔치 떡을 해놓고 먹지 못하
고 갔다는 것, 피란길에 나에게 붙여진 별명이 뭐라는 것, 피란지가 어디라는
것, 인민군이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아버지의 소재를 대라고 했다는
것, 숙부님이 어떻게 살해되었다는 것, 우리 집 본채가 미군의 폭격으로 불에
탔다는 것 등 피란과 전쟁에 관련된 얘기는 귀가 따갑도록 여러 번 들어서 알
고 있다.
權良淑씨는 지금도 생존해 있는 어머니로부터 6·25 얘기를 듣지 않았는가. 어
릴 때 아버지가 어디 계신다고 들었는가. 아버지가 무기징역형을 받고 복역중
질병으로 인하여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가족과 함께 생활한 1956년에서 1961
년 사이는 權良淑씨의 나이가 9세에서 14세이었는데, 성장기의 호기심에서라
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물어보지 않았는가?
얼마나 큰죄를 지었기에 무기징역을 받았느냐고 묻지 않았는가? 남은 형기를
집행하기 위해 아버지를 再수감할 때 아버지가 왜 감옥에 가야 하느냐고 물어
보지 않았는가? 權良淑씨가 성인이 된 24세 때 옥사하였는데 아버지 면회를 가
지 않았는가? 면회 가서나 갔다 와서 왜 감옥에 있는지 알아보지 않았는가? 그
리고 아버지께서 자기 생각을 말해 주지 않았는가?
금년 말 盧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통령 부인이 되더라도 3·1 독립운동
은 직접 못 보았기 때문에 모른다고 할 것인가? 盧후보의 부인 權良淑씨의 아
버지 權五晳씨의 주도 아래 무참하게 학살된 진전면장 卞百燮씨의 외아들은 權
良淑씨보다 세 살 아래로 더 어리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학살되었는지 생생하
게 자세히 알고 있다.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기억은 할 수 없지만 수십 번 수
백 번들어서 아버지가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다 알고 있다. 언제 어떻게 피란
가고,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치안대에 체포되고, 시신은 어떻게 누구에 의
해 수습되었는지도 알고 있다. 權良淑씨 부친이 단독으로 행한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權良淑씨는 충분히 기억할 만한 나이에 아버지와 5년 동안 같이 살았다. 비록
감옥이었기는 하나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가 살아계셨다. 그런데도 어렸다
는 핑계로 부모님 일을 모른다고 할 것인가?
가해자의 딸로서 피해자의 아들·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 없는가?
필자가 들은 증언에 의하면 權良淑씨도 인민재판 현장에 있었다. 인민위원회,
반동조사위원회, 치안대가 소재했던 진전면 일암리 대방마을에서 인민재판이
열린 당시 그 현장에 시각장애인은 權良淑씨의 아버지 權五晳씨가 유일했으
며, 부인이 장님의 손을 붙잡고 인도하였고 다른쪽 손에는 서너 살짜리 여자아
이가 있었다는 생생한 증언이 있다. 가족 세 사람이 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금 유추하
면 바로 그 「여자아이」가 權良淑씨라고 생각된다.
생존해 계시는 權良淑씨의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다. 權良淑씨에게 죄가 있다는 뜻도 아니고 기억해 내라는 뜻도 아니다. 어려
서 부모님 일을 모른다고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방증하기 위해서 한 말
이다.
權良淑씨는 부모님의 일을 말해야 한다. 이제 필부의 아내가 아니다. 대통령
후보의 부인으로서 대통령 부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아버지가 무슨
죄로 감옥살이를 하였는지, 아버지는 자신을 어떻게 해명하였는지, 아버지는
왜 끝까지 전향하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 국민들의 궁금
증을 풀어 주어야 한다. 가해자의 딸로서 피해자의 아들과 딸들에게 하고 싶
은 말이 있으면 해야 한다.
거짓말은 침묵보다 더 나쁘다
이은희 여성특보의 거짓말은 더 가증스럽다. 權五晳씨는 『6·25 당시 공산군
의 부역을 강요받아 수복 후 구속됐으나 석방』된 것이 아니다. 토착 좌익이었
고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반동분자」 색출과 처형 활동을 하였으며, 구속
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복역중 폐결핵과 양안 실명의 사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풀려난 것이다. 구속됐으나 죄가 가벼워 석방된 것이 아니다. 구
속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에 질병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
다. 사실이 이런데도 왜 죄가 가벼워 석방된 것처럼 호도하려 하는가.
『5·16 이후 사회불안 요소를 격리한다는 차원에서 벌어진 「예비검속」으로
다시 투옥』된 것이 아니다. 5·16 전인 1961년 3월27일 잔여 형기를 집행하
기 위해 再수감한 것이다. 석방되었다 再수감된 것이 아니고, 형집행정지 처분
을 받고 나와 있다가 남은 형기를 채우기 위해 再수감된 것이다. 再수감된 것
이 5·16 後가 아니고 5·16 前이다.
예비검속과 잔형집행은 천양지차다. 朴正熙 대통령이 아무리 군사독재를 하였
다고 하지만 예비검속으로 구속한 사람을 10년 넘게 복역시켰겠는가? 거짓말
일 뿐 아니라 상식 이하의 말을 하고 있다. 군사독재의 만행을 연상케 하여 무
기징역을 선고받을 정도의 중죄를 「강제부역」 정도로 오도하려 해서는 안 된
다. 거짓말은 침묵보다 더 나쁘다. 盧武鉉 후보 측과 가해자 측의 말 한 마
디, 한 마디가 피해자 측의 가슴속 상처를 송곳으로 찌르듯 아프게 한다는 것
을 아는가?
6·25 전쟁의 와중에서 악질 좌익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양민들의 유족들은
가슴 쓰라린 지난 일을 되새기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누가 무슨 목적으로 발설
하였건 간에 일단 거론된 이상 사건의 진실은 밝혀야 한다.
왜 왜곡하고, 은폐하고, 축소하고, 책임전가하고, 거짓 증언하고, 경거망동하
여 아물어 가는 상처를 후벼 파는가?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權五晳씨의 죄상
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밝히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고, 최고의 선거전략이다. 재론되게 한 원인제공자인 盧
武鉉 후보가, 그 다음으로는 盧후보의 부인 權良淑씨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건의 진상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盧후보의 장모가 지금이라도 사건의 진실
을 공개하고 인정하여 억울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의 원혼과 그 유가족들의 피맺
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고 유족들의 되살아난 슬픔과 억울함을 어루만져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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