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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번 :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15일의 이야기
글쓴이: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등록: 2003-03-04 10:06:20 조회: 356
안녕하세요.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입니다.

오늘로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가 꾸려져서 선전전을 시작한지 벌써 15일 되었
습니다.
저희는 지난 2월 17일, 손해배상·가압류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새벽부터 
잠이 덜 깬 애를 들쳐 업고 나와 오늘이 벌써 보름째입니다.

그 동안 아침 7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피켓을 들고 정문 앞에서 선전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닷바람과 매캐한 매연 덕에 필요
에 의해 하나씩 착용하게 된 것들에 의해 저희들은 점점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그런 투사(?)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모자를 쓰고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마스
크를 쓴..

회사 정문 건너편에 통근버스가 서는 관계로 저희들 앞을 지나치는 조합원들
은 저희에게 수고한다는 말을 한 마디씩 건네주시기도 하고 춥다며 캔커피 하
나씩 쥐어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저희들과 눈이 마주치기를 꺼리십
니다. 저희들을 보고 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가 봅니다.

아침 선전전에는 여러 단체에서 나오셔서 같이 도와주십니다.
바쁜 출근시간이고, 또 영도는 시내에서도 한참 멀기도 한데.. 남의 일에 참 
오지랖도 넓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도와주십니다. 그 분들을 보면 우
리 아줌마들은 참 세상 모르고 살았구나, 저렇게도 사는 사람이 있구나.. 그
런 생각이 듭니다. 이 자릴 빌어 그 분들게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
다.

새벽 6시도 안 돼서 들쳐 업고 나온 애들을 노조에 계신 분들이 엄마들이 선전
전을 하는 동안 지들끼리 놀기도 하고 씨우기도 하는 놈들을 업어도 주고 과자
도 사주며 달래 줍니다. 선전전을 다녀와 애들을 밥 먹이고, 엄마들도 밥을 먹
고 잠시 쉬면 또 다시 점심 선전전 시간입니다.

점심 선전전은 그 나마 아침보다는 덜 추워서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는 않구요. 여전히 저희들과 눈 마주
치는 것을 꺼리시는 분들이 태반이고, 아침에 그렇게 많이 들어가셨던 분들이 
별로 나오지 않아 지나다니는 분들도 그리 많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래도 덜 춥다고 낮에는 애들이 같이 나오기도 합니다. 7억 4천이 넘는 손해
배상 금액은 이대로 가다간 우리 애들에게까지 빚으로 남는다는 생각에 조금
도 소홀해 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같이 나오면 바로 찻길이라 불안해
서 애들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느 누구 얼굴 한 번 찡그리
지 않고 애들을 봅니다.

처음에 애들이 복닥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가량 엄마도 지치고 애들도 지쳤는데, 
요즘은 애들이 지들끼리 잘 놀고, 다른 분들께도 '이모, 이모'하며 잘 따라서 
한 시름 놓았습니다.
또 애들이 고생한다며 지나시던 조합원들이 하나씩 쥐어준 과자덕에 가대위가 
쓰는 노동조합 회의실에는 과자가 떨어지지 않고 있을 정도입니다. *^^*

그래도 아예 어린 꼬맹이나 어느 정도 큰 애들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애들은 방학 때는 친척집에 맡겨 놓았지만 오늘부터 
개학인지라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학교 다녀와도 다른 집 애들처럼 학원을 보
낼 수가 없어서 혼자 놀아야 하는 애를 생각하면 하루에도 열 두 번 가슴이 철
렁 내려앉습니다.

점심 선전전 이후 가족대책위도 밥을 먹고 나면 그 때부터 오후 일정이 시작됩
니다.
그 동안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일정들도 정리하고 내일 일정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보통 가족대책위 회의가 있는 시간이죠. 아직은 경험이 적어 
가끔 우리 능력보다 많은 것들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하나
씩 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번 주는 오후에는 유인물 작업도 할 것이고 부산지방노동청장과 한진중공업 
사장에게 면담 요청서를 접수한 상태입니다. 아직 정확한 답이 없어 언제 될 
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군요.

저녁 퇴근 선전전은 보통 5시에 시작합니다. 그러나 저녁 퇴근 선전전은 지난 
주 까지만 하기로 하고 이번 주 부터는 하지 않습니다. 가족대책위가 무서웠는
지(?) 회사측에서 조합원들에게 잔업을 시켜서 5시 퇴근 시간에는 거의 대부분
이 퇴근을 하지 않아서 매주 수요일만 퇴근 선전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저희는 유인물 작업을 하려고 일찍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우리가 싸우
는 것이 비단 우리에게 떨어진 7억 4천 4백만원이라는 손해배상·가압류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가족이 힘이 되어주어야만 우리 남편들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멉니다.
손해배상·가압류를 철회하라니 회사측은 아줌마들 집시법 위반이라고 잡아 넣
는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 엄포가 무서우면 이렇게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IMF를 기억합니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 노동자도 산다고 얼마나 허리띠 졸라 메었습니까?
이제 우리 밥그릇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시 머리띠를 고쳐 맵니
다.


                     가정파탄 일으키는 가압류를 철회하라!!
                     뛰는 물가 외면하는 임금동결 웬말이냐!!


                               2003년 3월 3일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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