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6번 : ... |
| 글쓴이: 지나가다 |
등록: 2003-07-29 12:20:59 |
조회: 524 |
[한겨레]어느 10대 동성애자의 자살-고 육우당
어느10대 동성애자의 자살
‘어려서부터 경험하는 남들의 혐오, 끝끝내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
망’ 때문에… 아홉수 고비를 넘기가 쉽지만은 않다.
19, 29, 39, 49살…. 아홉수를 넘어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된
다.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따라 19살보다 29살, 29살보다 39살을 넘기가
힘들 게다.
그러나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에게 가장 넘기 힘든 아홉수는 ‘19
살’이다.
남들과 ‘다른’ 성적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춘기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동성애 죄악시’ 기독교 교리에도 절망 대다수 동성애자들은 질긴 목숨을 밑
천으로 질풍노도를 헤쳐 살아남은 자가 된다.
그러나 상당수는 해맑은 얼굴의 ‘영정사진’으로 남는다.
지난 4월26일 19살의 한 청소년 동성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성 동성애자였던 윤아무개(19)군은 다음날인 27일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
련) 사무실 문고리에 목을 매달고 앉은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옆에는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세상을 원망하는 6장의 유서와 자신의 전 재
산인 34만원을 동성애자인권운동에 기부한다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술, 담배, 녹차, 파운데이션, 수면제, 묵주.’ 윤군이 좋아했던 여섯 가지
물건들이다.
시조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청년은 이 물건들의 이름을 따 아호를 ‘육우당’
(六友堂)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가 벗삼았던 여섯 가지 물건들 속에서는 한 청소년 동성애자의 쓸쓸한 스무
해가 녹아 있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윤군은 사춘기 때부터 우울증에 시달려왔다.
부모가 따로 사는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윤군의 우울과 허무는 성 정
체성에 대한 고민과 무관하지 않았다.
동성애자 청소년이 의지할 대상은 수면제와 술, 담배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윤군은 용기 있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따돌림을 받은 끝에 지난해 결국 고등학
교를 자퇴해야 했다.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는 “학교에서 커밍아웃을 한 뒤 힘들어 고등학교
를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돌이켰다.
윤군의 유서에는 “죽은 뒤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윤○○은 동성애자
다’라구요”라는 구절이 남아 있다.
묵주를 항상 가방에 넣어다닐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윤군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교리에도 절망했다.
특히 지난 4월 국가인권위가 동성애를 유해매체물로 규정한 청소년보호법 시행
령에 대해 삭제를 권고한 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국
민일보>가 동성애혐오적인 기사를 쏟아내자 누구보다 절망하고 분노했다.
이들을 비판한 윤군의 독자투고가 <한겨레> 등에 실리기도 했다.
윤군은 유서에서도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이고 반인류적인지…”라며 두 단체에 대한 원망을 토해냈
다.
그러나 윤군은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죽기 전 기증한 성모 마리아상은 동인련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윤군은 지난해 말 동인련 회원이 된 뒤 지난 3월부터 상근자로 일해왔다.
동인련 회원을 비롯한 지인들은 그를 ‘쾌활한 청년’으로 기억한다.
인터넷 모임을 운영하고,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다닐 만큼 ‘당당한’ 동성애자
였다는 것이다.
그는 또 4월의 반전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죽기 전날까지 ‘노동절 참가
단’ 준비를 회원들과 함께했다.
그가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대학 가서 공부해야 한
다”며 아들의 성 정체성을 인정했다.
흔히 동성애자의 자살 이유로 지목되는 실연의 상처도 없었다.
자해 시도, 그리고 정신병원…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가져다준 자긍심으로도 치
유하지 못할 그의 우울과 허무는 무엇이었을까. 이성애자의 감수성으로는 뚜렷
한 ‘알리바이’가 없는 윤군의 죽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이해된다”고 입
을 모은다.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인 ‘친구사이’의 전명안 대표는 “어려서부터 경험
하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끝끝내 이해받
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라고 표현했다.
숨막히는 이 사회의 ‘공기’가 동성애자들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윤씨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른다.
지난 4월29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 ‘살아남은’ 30대 남성 동성애자 3명이
모여 앉았다.
이들의 손목에는 한결같이 ‘자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김아무개(34)씨가 먼저 “스물두살 때쯤 막막한 절망감에 혼자 여관에서 손목
을 그은 적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김씨는 ‘동성애자인 내가 어떻게 목회를 하나’라는 회의가 들어 신학대
학을 그만둔 뒤였다.
옆에 있던 천아무개(33)씨도 손목의 자해흔적을 내보이며 “스무살 때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형에게 ‘나 동성애자다’라고 말했지만 형은 장난으로 받아들
였다.
화도 나고 허망하기도 해 뛰쳐나가 손목을 그었다”고 돌이켰다.
그 뒤 가족들을 모아놓고 커밍아웃을 한 천씨를 그의 누나들이 데리고 간 곳
은 정신병원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성애자 의사 전아무개(33)씨는 “성매매 여
성 다음으로 동성애자들의 자살비율이 높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윤군이 자살한 지 사흘 뒤인 이날 청소년보호위원회 등은 ‘동성애, 표현의 자
유와 청소년’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유해매체물 규정에서 ‘동성애’를 삭제할지 여부가 주
된 쟁점이었다.
이날 토론회를 지켜본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모임 ‘끼리끼리’ 박수진 간사
는 “청소년에게 동성애 표현물을 보여주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토론회의 의제
설정 자체가 한국 사회의 저열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며 “청소년보호위원
회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을 자살의 유혹에서 ‘보호’하
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 자살 중 30%가 동성애 등 성적 정체성
비관으로 인한 것이다.
지난 4월 공성옥 정신과 전문의가 발표한 논문 <남성 동성애자와 남성 이성애
자의 삶의 질과 정신건강 비교>에서도 동성애자들의 높은 자살시도 비율이 확
인된다.
남성 동성애자 129명과 남성 이성애자 114명의 설문조사를 비교분석한 결과,
이성애자의 14.8%가 자살시도 경험을 가진 반면 동성애자의 25.0%가 자살시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누군가 또 죽음을 고민한다 자살의 원인으로 ‘성 정체성’을 상상하지도 않
는 사회 속에서 수십년 동안 성적 소수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죽음’의 행렬
은 이어져왔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 죽음을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윤군의 죽음이 알려지자 동성애자 사이트에는 ‘언제까지 죽음의 행렬이 이어
져야 하나’,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미 1998년 5월 동인련 사무실 앞에서 오아무개(21)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적도 있다.
고승우 동인련 사무국장은 “청소년 동성애자와 그 부모들을 위한 상담전화,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교육만이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동인련은 오는 6월 미국 성적소수자기금인 ‘아스트리아’ 기금에서 2천만원
을 지원 받아 청소년 동성애자 상담전화(핫라인)를 개설할 예정이다.
5월3일 서울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동인련 정욜 대표
는 “동성애자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살인자인 이 사회와 전쟁을 벌이겠다”며
울먹였다.
윤군이 유서에 남긴 “형,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 세대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
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다짐이었
다.
자살하기 전, 윤군의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은 ‘비명소리’였다고 한다.
그것은 동성애자 청소년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이 사회에 보내는 경고음이 아니
었을까.
글 신윤동욱 기자/ 한겨레 ‘왜냐면’담당 syuk at 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 at hani.co.kr
[한겨레]어느 10대 동성애자의 자살-고 육우당
어느10대 동성애자의 자살
‘어려서부터 경험하는 남들의 혐오, 끝끝내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
망’ 때문에… 아홉수 고비를 넘기가 쉽지만은 않다.
19, 29, 39, 49살…. 아홉수를 넘어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된
다.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따라 19살보다 29살, 29살보다 39살을 넘기가
힘들 게다.
그러나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에게 가장 넘기 힘든 아홉수는 ‘19
살’이다.
남들과 ‘다른’ 성적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춘기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동성애 죄악시’ 기독교 교리에도 절망 대다수 동성애자들은 질긴 목숨을 밑
천으로 질풍노도를 헤쳐 살아남은 자가 된다.
그러나 상당수는 해맑은 얼굴의 ‘영정사진’으로 남는다.
지난 4월26일 19살의 한 청소년 동성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성 동성애자였던 윤아무개(19)군은 다음날인 27일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
련) 사무실 문고리에 목을 매달고 앉은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옆에는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세상을 원망하는 6장의 유서와 자신의 전 재
산인 34만원을 동성애자인권운동에 기부한다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술, 담배, 녹차, 파운데이션, 수면제, 묵주.’ 윤군이 좋아했던 여섯 가지
물건들이다.
시조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청년은 이 물건들의 이름을 따 아호를 ‘육우당’
(六友堂)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가 벗삼았던 여섯 가지 물건들 속에서는 한 청소년 동성애자의 쓸쓸한 스무
해가 녹아 있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윤군은 사춘기 때부터 우울증에 시달려왔다.
부모가 따로 사는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윤군의 우울과 허무는 성 정
체성에 대한 고민과 무관하지 않았다.
동성애자 청소년이 의지할 대상은 수면제와 술, 담배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윤군은 용기 있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따돌림을 받은 끝에 지난해 결국 고등학
교를 자퇴해야 했다.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는 “학교에서 커밍아웃을 한 뒤 힘들어 고등학교
를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돌이켰다.
윤군의 유서에는 “죽은 뒤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윤○○은 동성애자
다’라구요”라는 구절이 남아 있다.
묵주를 항상 가방에 넣어다닐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윤군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교리에도 절망했다.
특히 지난 4월 국가인권위가 동성애를 유해매체물로 규정한 청소년보호법 시행
령에 대해 삭제를 권고한 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국
민일보>가 동성애혐오적인 기사를 쏟아내자 누구보다 절망하고 분노했다.
이들을 비판한 윤군의 독자투고가 <한겨레> 등에 실리기도 했다.
윤군은 유서에서도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이고 반인류적인지…”라며 두 단체에 대한 원망을 토해냈
다.
그러나 윤군은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죽기 전 기증한 성모 마리아상은 동인련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윤군은 지난해 말 동인련 회원이 된 뒤 지난 3월부터 상근자로 일해왔다.
동인련 회원을 비롯한 지인들은 그를 ‘쾌활한 청년’으로 기억한다.
인터넷 모임을 운영하고,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다닐 만큼 ‘당당한’ 동성애자
였다는 것이다.
그는 또 4월의 반전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죽기 전날까지 ‘노동절 참가
단’ 준비를 회원들과 함께했다.
그가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대학 가서 공부해야 한
다”며 아들의 성 정체성을 인정했다.
흔히 동성애자의 자살 이유로 지목되는 실연의 상처도 없었다.
자해 시도, 그리고 정신병원…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가져다준 자긍심으로도 치
유하지 못할 그의 우울과 허무는 무엇이었을까. 이성애자의 감수성으로는 뚜렷
한 ‘알리바이’가 없는 윤군의 죽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이해된다”고 입
을 모은다.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인 ‘친구사이’의 전명안 대표는 “어려서부터 경험
하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끝끝내 이해받
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라고 표현했다.
숨막히는 이 사회의 ‘공기’가 동성애자들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윤씨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른다.
지난 4월29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 ‘살아남은’ 30대 남성 동성애자 3명이
모여 앉았다.
이들의 손목에는 한결같이 ‘자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김아무개(34)씨가 먼저 “스물두살 때쯤 막막한 절망감에 혼자 여관에서 손목
을 그은 적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김씨는 ‘동성애자인 내가 어떻게 목회를 하나’라는 회의가 들어 신학대
학을 그만둔 뒤였다.
옆에 있던 천아무개(33)씨도 손목의 자해흔적을 내보이며 “스무살 때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형에게 ‘나 동성애자다’라고 말했지만 형은 장난으로 받아들
였다.
화도 나고 허망하기도 해 뛰쳐나가 손목을 그었다”고 돌이켰다.
그 뒤 가족들을 모아놓고 커밍아웃을 한 천씨를 그의 누나들이 데리고 간 곳
은 정신병원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성애자 의사 전아무개(33)씨는 “성매매 여
성 다음으로 동성애자들의 자살비율이 높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윤군이 자살한 지 사흘 뒤인 이날 청소년보호위원회 등은 ‘동성애, 표현의 자
유와 청소년’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유해매체물 규정에서 ‘동성애’를 삭제할지 여부가 주
된 쟁점이었다.
이날 토론회를 지켜본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모임 ‘끼리끼리’ 박수진 간사
는 “청소년에게 동성애 표현물을 보여주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토론회의 의제
설정 자체가 한국 사회의 저열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며 “청소년보호위원
회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을 자살의 유혹에서 ‘보호’하
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 자살 중 30%가 동성애 등 성적 정체성
비관으로 인한 것이다.
지난 4월 공성옥 정신과 전문의가 발표한 논문 <남성 동성애자와 남성 이성애
자의 삶의 질과 정신건강 비교>에서도 동성애자들의 높은 자살시도 비율이 확
인된다.
남성 동성애자 129명과 남성 이성애자 114명의 설문조사를 비교분석한 결과,
이성애자의 14.8%가 자살시도 경험을 가진 반면 동성애자의 25.0%가 자살시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누군가 또 죽음을 고민한다 자살의 원인으로 ‘성 정체성’을 상상하지도 않
는 사회 속에서 수십년 동안 성적 소수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죽음’의 행렬
은 이어져왔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 죽음을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윤군의 죽음이 알려지자 동성애자 사이트에는 ‘언제까지 죽음의 행렬이 이어
져야 하나’,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미 1998년 5월 동인련 사무실 앞에서 오아무개(21)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적도 있다.
고승우 동인련 사무국장은 “청소년 동성애자와 그 부모들을 위한 상담전화,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교육만이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동인련은 오는 6월 미국 성적소수자기금인 ‘아스트리아’ 기금에서 2천만원
을 지원 받아 청소년 동성애자 상담전화(핫라인)를 개설할 예정이다.
5월3일 서울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동인련 정욜 대표
는 “동성애자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살인자인 이 사회와 전쟁을 벌이겠다”며
울먹였다.
윤군이 유서에 남긴 “형,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 세대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
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다짐이었
다.
자살하기 전, 윤군의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은 ‘비명소리’였다고 한다.
그것은 동성애자 청소년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이 사회에 보내는 경고음이 아니
었을까.
글 신윤동욱 기자/ 한겨레 ‘왜냐면’담당 syuk at 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 at hani.co.kr
[오마이뉴스]고 육우당 기사
오마이뉴스 2003.5.5(월) PM 1:14
"슬퍼하지 맙시다. 다시 떠나보내지 맙시다"
"오랜 세월 박해받아온 우리들,
이제는 희망을 찾아 무지개를 휘날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성적소수자. 제우스의 번개로 내 반쪽 찾아다니는 아름다운 방랑자.
-2003. 4. 9. 육우당
(19살로 생을 마감한 고인은 평소 사설시조를 즐겼고 또 우리 전통문화를 사랑
했다. 이 시조는 영화 <헤드윅>에 나오는 노래 'Origin of Love' 가사에서 모
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플라톤의 '향연'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
게 "태초에 인간이 쌍으로 붙어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남녀로, 어떤 사람
은 '남남' '여여'로 붙어 있었다가 제우스의 번개에 의해 나뉘어졌다"고 가르
쳤다....편집자 주)
"죽은 뒤에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나는 동성애자다'라고요"라
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4월 26일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A씨는 노제를 치르지 못했다.
노제에 나선 다른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당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폭력적인 사회다. 그의 죽
음은 신문에 단신으로 처리됐다.
사회의 차별에 항의하며 죽은 동성애자는 이로써 2명. 5년 전인 98년 5월에도
동인련 회원이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까? 동성애자들은 "한 번쯤 자기 손목에 칼 안 대어본 동성애자는 없
을 것"이라고 말한다.
"죽은 뒤에 당당하게" 찾은 성정체성
"한국 동성애자, 한번쯤 죽을 생각한다"
A씨가 숨진지 1주일 째 되는 5월 3일 오후 7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에
는 A씨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다. '추모'라는 이름과 달리 술과 안주가 도는
유쾌한 자리. 이 자리는 A씨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고, 이제 더 이상 슬
퍼하지 말고 힘을 내 싸우자는 결의의 자리이기도 하다.
입구에 마련된 제단에는 여느 추모행사장과는 달리 고인의 영정이 없다. 이름
조차 나와 있지 않다. 실내는 사진촬영금지. 동성애자들이 느끼는 아웃팅(타인
에 의해 '커밍아웃'당하는 것)의 위험은 이성애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
다.
단에는 영정 대신 시조를 좋아했던 고인의 아호 '육우당(六友堂)'의 내용물이
올려져 있다. 육우는 그가 좋아했던 여섯 친구, 즉 술, 담배, 녹차, 파운데이
션, 수면제, 묵주 등이 그것. 모두 고인이 생전에 자주 사용하던 '벗'들이다.
고인은 신경이 예민해 수면제를 자주 복용했다고 한다. 또한 천주교 신자라서
묵주를 좋아했다. 그는 동인련 사무실에도 '예수님과 마리아의 축북'을 바라
는 마리아상을 놓아두었다.
'육우당'과 함께 올려져 있는 것은 고운 한복이다. A씨는 유서에 '한복을 입
고 죽고 싶었다'고 남겼다. 왜 이 옷을 입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한
복을 옆에 놓아둔 채 목을 맸다.
처음 A씨를 발견한 정욜 동인련 대표는 "사무실에 짐을 정리하러 갔는데, A가
혼자 마셨을 것 같은 술과 그 전날 함께 먹던 컵라면 그릇 등이 그대로 있었
다. 목을 맨 끈과 가방도 있었다"며 생생하게 그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조문객들이 단상에 바친 꽃은 채 피지 않은 백합. 스무 해를 살지 못하고 만
19세의 나이로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했던 영혼을 위한 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자녀'예요"
"널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다행히 이날 추모의 밤 행사에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200여 명의 조문객들은
의자가 모자라자 서서 추모제를 지켜보고 지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오후 8시 추모제가 시작되면서 애써 밝게 이야기를 나누던 까페는 눈물
바다가 됐다. 추모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떨리는 목소리였고 고인과의 추억
을 되새기면서 나오는 울음에 말을 멈추기도 했다. 추모사를 듣는 사람도 착잡
한 마음은 마찬가지. 고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눈시울을 붉히며 손수건을 찾았
고 고인과 친했던 몇몇 지인들은 통곡을 했다.
특히 A씨의 죽음이 지인들에게 무거웠던 것은 그가 "형, 누나들의 수고가 다
음 세대의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 잊지 마시구요"라는 메시지
를 남겼기 때문이다.
A씨는 한 장씩 지장을 찍은 총 6장의 유서와 함께 자신의 재산인 34만원을 봉
투에 담아 동인련에 남겼다. A씨는 동인련을 처음 찾을 때부터 담배를 좀더 저
렴한 종류로 바꾸면서 회비를 납부하던 성실하고 밝은 청소년이었다.
동인련 회원 B씨는 "반전집회에 나갔을 때, 춥다며 안아달라고 했는데 주변 사
람 시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B씨를 더욱 안타깝게 한 것
은 장례식 다음날 열린 청소년보호위원회의 '동성애,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세미나였다.
바로 전날 동생을 땅에 묻고 돌아섰던 동성애자들은 '가정의 파괴', '음양의
조화' 등 동성애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논의들을 듣고 세미나장을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세미나 참가자 어느 누구도 A씨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A씨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이성애자들도 마찬가지다.
동인련의 다른 회원 C씨는 "처음엔 동성애 인권을 지지하는 이성애자가 있다
는 게 힘이 될 것이라는 '가벼운 마음'에서 회원이 됐지만 A씨가 죽고나니 내
가 동성애자와 연대해야하는 이유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C씨
는 "A씨의 죽음이 너무 무거워 처음에는 피하려 했지만 이제 그러지 않겠
다"는 결의를 보였다.
김바울 한국기독청년연합회 회장은 추모사를 하는 내내 자신이 기독인이라는
것을 미안해했다. 김 회장은 "이제서야 왔다는 게 죄송하다"며 "성경의 뜻은
억압없는 인간해방"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보수 기독단체들이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규정
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 역시 천주교 신자였으며 평소 기독교 반 동성애 기사
에 분노해왔다. 그는 유서에 "난 여러분들이 유황불 심판을 받을 거라고 생각
하지 않아요. 여러분도 '하느님의 자녀'니까요"라는 글을 남겼다.
"어린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간 폭력적 사회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연대해 함께 싸우겠다"
이날 추모제의 마지막 순서는 결의였다. A씨가 숨져 있던 사무실을 급하게 정
리한 동인련은 아직 새 사무실도 구하지 못한 상태. 아직 결의가 이를지도 모
른다.
그러나 정욜 동인련 대표는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으
로 더 적극적으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A씨를 벼랑 끝으로 몰고간 사회에 대
한 싸움, 특히 그를 분노하게 했던 청소년보호위원회와 기독교단체에 대한 싸
움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국가인권위는 지난달 2일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를 삭제하
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는 동성애가 수간,
혼음, 근친상간 등과 함께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동
인련은 이후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실현시키고 나아가 이번 권고에 대해 반대했
던 한기총과 기독교단체들을 비판하는 운동들을 전개할 예정이다.
"만국의 동성애자가 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성애자도 함께 연대해야 합니
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함께 할 때 동성애 인권운동을 의미있는 것입니다"
정욜 대표의 호소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을 버려야 했던 한 청소
년의 호소이기도 하다.
/권박효원 기자 (10zzung at 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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