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이땅에 많은 민중들은 거리로 나와 지하도나
역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체 살아가는 이 땅의 최 변방의 민중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정부는 넘쳐나고 있는 노숙인들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쉼터를 만들어
종교단체 위탁을 하였던 것은 종교의 사랑으로서 실천하기를 바란던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노숙인들의 대한 권리 인권 복지가
향상 되어나고 물어보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아는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게 했던 것처럼 노숙인들은 쉼터에 이용자가 아니고 그들의 말에
복종하는 종속적인 관계다 보니까? 노숙인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
은 어디로 가는지 없고 향상 종속적인 상하관계에 있기 때문에 최 변방의 민중
의 삶은 이루 말할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에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노숙인들은 쉼터를 거부한체 이땅에서 죽어가고 있으며 거리에
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는 실무자와 운영자들을 보면
서 역시 노숙인 복지를 자신들의 명예와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의 방법으로 채
택하였던 것이다.
진정 노숙인 복지를 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한다며 정부에 돈을 얼마나 받을까
고민하는 시간에 정부에 대해 노숙인 권리와 인권을 보장하라고 투쟁을 하는
것이 정당한것이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노숙인 인권이나 권리의 담보로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많은 노숙인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밝는 행위가 지
속되고 있지만, 전실노협은 침묵으로서 그들을 방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 실직노숙자 종교시민단체는 어찌하여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쉼터를 감
사원에 진정서 하나 제출 못하는 이유 무엇인가?
기관의 모순때문인가? 아니며 노숙인들을 존재가 되어야만 전실노협이 존재할
수 있기때문인가?
언제나 타협적인 자세인 전실노협을 보면서 노숙인들의 희망은 없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고, 언제나 시설중심의 사고하는 전실노협이 있는 한 노숙인 인권
은 부르지는 당사자들은 찾아 볼수 없을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