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2번 : 홍세화 칼럼 |
| 글쓴이: 책읽다 |
등록: 2003-08-26 21:04:48 |
조회: 544 |
[홍세화칼럼]
잘못된 동성애 편견
무릇 남의 발언과 행동은 비난할 수 있지만 남의 `존재'를 비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성애자들이 동성에게 끌리지 않는 존재이듯이 동성애자들은 이성에
게 끌리지 않는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생겨난 존재'로서, 서로 다른
성징을 갖는 것은 얼굴 모습이 다르고 천성이 다른 것과 똑같이 다양성을 요구
하는 대자연과 하늘의 뜻에 따른 것일 뿐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사
회에서 왕따시키는 일은 마치 여자나 혼혈아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혹은 혈액
형이 AB형이라는 이유로 그 존재에 돌을 던지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게 나니까. 거짓말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잘못한 것 없으니까. 단지 그
뿐이고 그게 전부다.” “왜 동성애자임을 밝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홍석천씨의 답변이다. 그렇다. `단지 그 뿐이고 그게 전부'다. 그는 그의 존재
를 밝혔을 뿐이다. 어디에 잘못이 있는가?
동성애자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소수파에 속한다는 잘못 하나밖에
없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인식을 없애고 그들의 인권 회복을 위
해 싸웠던 프랑스의 한 지식인은 다음과 같은 역자사지를 말한 적이 있다.
4~10%를 차지하고 있는 동성애자의 비율과 이성애자의 비율이 정반대로 나타나
는 사회를 가정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절대적 소수파로 몰린 이성애
자들은 종족 생산을 위한 노예로 전락할 것이란 얘기였다. 다시 말해 이성간
의 사랑이란 있을 수 없고 이성애자들은 오직 아이 생산을 위한 노동에 동원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성애자들이여, 실로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바로 지금 한국의 동성애자들
이 그런 끔찍한 일보다 더 심한 일을 당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감춰야 하
고,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일보다 더 끔찍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젊은 장군이며 잘 생긴 알키비아데스를 사랑한다고 공공연히 선언했던 소크라
테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용인됐을 뿐만 아니
라 특권적 가치로까지 인정됐다. 고대 로마 시대에도 용인됐던 동성애는 기독
교가 강력해지면서 죄악시됐고 오늘에 이르렀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인간
본성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의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서양의 거시적 역사는 가
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60%를 넘는 가톨릭 신자를 갖고 있는 프랑스에선 지난해 `민간연대계약
법(PACS)'을 통과시켜 동성애자들의 동거를 법적으로 인정해 줬다. 법안 제출
때 팽팽했던 찬반 의견은 법안 통과 후 1년이 지난 오늘 프랑스 국민의 70%가
찬성하게 됐을 만큼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인식은 급격히 약해지고 있
다.
또 기독교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네덜란드는 가장 앞선 톨레랑스(용인, 관
용)의 나라답게 지난 9월 하원에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압도
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어느 의원은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개인적으
로는 반대하지만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면서 찬성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서로 앞다퉈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을 자부하는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
은 홍석천씨를 퇴출시켰다. 이는 연예인에겐 사형선고와 같은 전횡적인 폭력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 프로에 걸맞지 않는다는 변을 늘어놓지만
어린이들은 본디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감정을 갖고 태어나지 않으며 또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방송언론인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 묻지 않을 수 없
다. 사회의 그릇된 편견과 인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그것에 추수함
으로써 죄없는 존재에 대한 혐오 감정을 고취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
다. 퇴출돼야 할 사람은 홍석천씨가 아니라 그의 퇴출을 결정한 그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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