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2번 : 코뮤니즘의 꿈은 계속된다, 자율은 영원하다 - 조정환의 《아우또노미아》 |
| 글쓴이: 갈무리 [홈페이지] |
등록: 2003-10-09 04:39:35 |
조회: 398 |
다중의 자율을 향한 네그리의 향해!
<아우또노미아> 출간!!
<제국>의 통제와 온몸으로 싸우며 인류의 대안적 삶을 고민해온 안또니오 네그리,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세계최초의 본격 연구서!
21세기 다중의 시대에 맑스의 혁명적 사상을 되살려 내는 개론적 입문서!!
사회주의의 붕괴, 사회민주주의의 제도화, 민족해방운동의 보수화 이후
오늘날 다중지성의 시대에 가능한 인간해방의 새로운 길에 대한 성찰!!!
제국의 밑바닥에서 분출되는 저항과 탈주와 구성의 힘에 대한
정교하고 신중한 탐색!!!!
아래 기사는 한겨레 신문 10월 4일자 <아우또노미아> 서평 기사입니다.
<아우또노미아>조정환
조각조각 수입된 ‘네그리 사상’에 생명을
조정환의 <아우또노미아>는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이며 <제국>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안토니오 네그리의 삶과 사상을 세밀하게 파헤친 본격 연구서이다. <제국>의 출간 이후에 국내외에서 쏟아져 나온
네그리에 대한 글들의 대부분은 네그리의 견해를 옹호하는 것이든 비판하는 것이든 그의 사상의 일부만을 건드리는 단편적인
성격의 것이었으며, 심지어는 그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하는 경우도 잦았다.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아우또노미아>는 <제국>에서 열매를 맺어 그 이후로 계속 발전하고 있는 네그리 사상의 발전궤적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연구서라는 점에서 가뭄에 단비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네그리의 이론을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비판적 분석, 계급분석, 주권형태분석,
국가형태분석, 변혁론(이행론), 조직론 등 여러 측면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논리적·역사적·논쟁적
축을 따라 여러 각도에서 그의 이론을 검토한다. 이러한 포괄성으로 인하여 이 책은 네그리라는 한 인물의 사상에 대한
연구서이면서도 20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에 대한 다각적 연구서를 겸하고 현대의 진보적 사상들에 대한 간접적 참고서를
겸한다.
지은이는 네그리의 사상을 단편적이고 굳어진 조각들이 모여서 이룬 닫힌 체계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변화에 응하여 “부단히
자신을 갱신하는 열린 체계”로서 제시한다. 네그리의 사상에 대한 여러 입장에서의 비판들 하나하나에 대해 응답하는
대목에서도 그는 곡해되거나 일면적으로 이해된 부분의 전후 맥락이 드러나게 하는 방식 혹은 비판의 뒤에 숨은 공통점이
드러나게 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하여 일면적 이해 혹은 몰이해에 입각하여 잘못 형성된 소모적인 대립점들을 바로 잡는
동시에 생산적인 대립점들이 드러나도록 돕는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네그리의 사상을 아직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나 그의
사상에 공명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의 사상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유익한 참조서로 추천될 수 있다. 그들의 비판이 올바른
이해에 입각하도록 함으로써 생산적인 논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자신이 소개하는 네그리의 사상에 대해 취하는 관점은 ‘전폭적 옹호’의 관점으로 읽힐 수 있다. 이는
사실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동일한 실천적 지향을 갖고 함께 고민하는 ‘협동’의 관점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실천적 협동의 관점에서 볼 때 저자의 네그리 소개는 지은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사상의 고유한 특성은, 표면적으로는 자본의 지배 아래 있고 자본에 의하여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본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저항과 창조의 능동적 힘들이 전문적인 정치가집단(당)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수평적으로 연합하는 데서
새로운 인류공동체의 건설을 본다는 데 있다.
예의 능동적 힘들이 개개인들을 통해 혹은 창조적 협동으로 결속된 집단을 통해 표현되는 원리가 바로 자율, 곧
‘아우또노미아’이다. 지은이는 “자율은 영원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의 혁신에 관한 책인 동시에
‘영원’에 관한 책이다. - 정남영/경원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아래 기사는 리브로 북커스에 10월2일자 <오늘의 책 today bookers>에 올라온 기사입니다.
코뮤니즘의 꿈은 계속된다, 자율은 영원하다 - 조정환의 《아우또노미아》
이성문 기자(mongkey at libro.co.kr)
Oct. 02. 2003 | 안토니오 네그리는 마이클 하트와의 공저인 《제국》을 통해 현실 자본주의의 역동적인 변화와 그에 저항하는
급진적 흐름을 포착해냄으로써,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쇠락한 운명을 걸었던 맑스주의에 생기를 불어넣고 거대서사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했다. 온갖 진영과 온갖 이즘들 측으로부터 찬반양론을 몰고 온 네그리는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세계적인 사상가로서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조정환의 《아우또노미아》(갈무리)는 바로 이 네그리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 겸 입문서다.
안토니오 네그리 사상의 굴곡은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하여 한 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아우또노미아 즉, 자율로
번역될 수 있는 그의 사상이 이탈리아의 전통적 노동운동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는
스스로 철학적 도제수업이라고 불렀듯이 위대한 철학가를 통한 배움과 대결, 사유의 씨름을 통해 개념을 창안해내고 가다듬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천적 활동가인 네그리는 현실에 대한 실천적 대결의지로부터 개념을 창안해왔다. 그래서 프랑스 망명 당시
알튀세르의 권유로 《자본론》에 대한 강의를 묶은 《맑스를 넘어선 맑스》(윤수종 옮김, 새길)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의 관심과 개념들은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경험과 실천, 논쟁의 축적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가적 면모를 지닌 이 열정적인 활동가는 이탈리아의 경험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그는 조작된 테러리즘혐의와 〈붉은
여단〉의 수괴라는 혐의로 평생 수배, 투옥, 망명, 재투옥, 연금의 삶을 살았다. 투옥되어 있는 동안 그는 스피노자를 연구하고
《야만적 별종》을 펴낸다. 감옥을 본격적인 사유의 시간으로 바꾸어버리고, 망명을 들뢰즈/가타리와 접속하여 새로운 개념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바꾸어버렸다. 더 이상 외부가 아닌 곳 ‘제국’ 안에 전적으로 갇혀 있지만 다양성과 특이성을 창출하며,
제국의 지배를 횡단하는 자율적 삶으로 바꾸려는 ‘다중(多衆)의 활력’이라는 그의 사상은 이렇게 그의 삶과 공명한다.
정치학에서 윤리학을 아우르는 그의 변화는 《제국》(윤수종 옮김, 이학사)의 발간과 더불어 그의 문제의식이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적 차원을 획득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이탈리아 아우또노미아 운동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전통적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과 공명하면서 점차 세계적 차원의 운동이 되어 가는 것과 결부되어 있다. 네그리의
개념은 더 이상 이탈리아적 경험의 기억이 아니며 세계적 차원에서 재정립되고 가다듬어졌다. 이것은 이제 비로소 네그리를 읽을
시간이 도래했다는 것을 뜻한다. 조정환의 《아우또노미아》는 이 시점에서 찾아온 본격적인 비평이다.
참을 수 없는 다중의 활력!
어디에서부터 방대한 사상가의 이야기를 시작할까? 조정환은 무엇보다 먼저 네그리를 맑스주의에서 뿌리깊게 남아있던 생산력
객관주의를 비판했던 주체성의 계보학자로 그려낸다. 사회구성의 힘을 주체적 변형의 힘에서 찾기 보다 주체를 소거한 물질적
총합으로 이해했던 생산력 객관주의와 달리 네그리는 가치척도로 규정될 수 없는 산 노동의 힘, 활력이 사회를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조정환은 알튀세르조차 누가 호명하는 가에 따라 다른 주체성을 갖는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로서 주체를 사고했던 또
다른 객관주의라고 지적한다. 자본의 주도하에 사회가 이런 저런 모양으로 변화되고 노동은 그러한 변화를 잘 읽고 그것에
대응하거나 저항한다고 인식하던 객관주의적 시각은 네그리에게서 전복된다.
그는 자본=사회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으며 사회를 구성하는 힘은 노동(교환가치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가치척도를 벗어난
인간의 모든 활동과 행위들)이며, 이것은 결국 주체성의 변형으로 나타나고 사회구성은 다양하고 특이한 주체성의 총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꼬뮤니즘으로의 이행을 ‘물질적 재전유’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다음 단계에 도래할
것으로 사고하는 전통적인 시각에 수정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제 꼬뮤니즘으로의 이행은 주체성의 변형, ‘영원하게-되기의
과정’이 된다. 조정환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다중에 의해 창조되는 (절대적인) ‘자유롭게
되기’이다.”(263쪽) 《제국》이 불러 온 가장 큰 논란거리 중의 하나는 과연 ‘제국주의인가, 제국인가’ 하는 것일 게다.
제국주의의 대두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내이션=스테이트의 강화를 가져온다. 지난 세기 민족해방 운동을 보면 그것은
분명하다. 네그리는 제국주의가 이런 저항들에 직면하여 오늘날 초국적 제국으로 자신을 촉성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외부가 없는 통합된 세계자본주의체제, 자본의 탈영토화, 초국적 사법권력의 영향력 증대, 세계를 대상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전 지구적 경찰력의 등장 등등 제국의 형상을 예시하는 것들은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조정환은 네그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주권적 형식을 넘어 촉성되는 다중들의 협력과 커뮤니케이션의 증대에 의한 ‘다중지성’의 출현이라고
말한다.
아나키즘?
‘다중지성’은 다중의 창조성 위에 질서와 권력을 세우고 자신을 세계의 보편자로 내세우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는(그래서
더욱 파시즘적인) 제국에 맞서는, 우리시대의 사랑하고 욕망하고 창조하는 ‘가난한 자들’의 이름인 다중의 ‘공통성’증대에
다름 아니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노동, 활동이 가치척도를 넘어선 소통적 활동(비물질적 노동)이 되어 가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자본은 다중을 쫓아다니며 여전히 척도를 들이대고 가치로 환원하려고 하지만 말이다. 조정환은 네그리의 제국이
탈근대에 조응하는 것이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절망적이고 투항적인 세계 묘사를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중은 과거 전통적인 공장 중심의 대중노동자가 아닌 이미 삶 자체가 사회적 생산이 된, 다양성과 특이성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변형되어 가는 일하는 사람들의 초국적 이름이다. 더 나아가 네그리는 민족국가의 강화나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주권형식
안에서의 혁명전략에 대해 ‘아니오’라고 답한다. 국민국가적 주권형식안에 권리를 양도하는 내이션=스테이트의 강화가 아니라
양도할 수 없는 자율성의 개화로서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네그리의 분석은 그간
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이 생각해오던 저항계급을 강력하게 조직화하는 형식으로서의 ‘당’을 폐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조정환은 말한다. 전위와 대중을 분할하지 않고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할도 없는, 자율을 양도하지 않는 자기조직화를
강조한다. 네그리는 사회적 노동자의 정치적 자율성과 사회적인 것의 재전유
는 같은 것이라는 등식을 설정한다. 이러한 주장들 때문에 네그리의 사상은 종종 아나키즘이라고 비난받아왔다. 네그리 스스로
아나키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적 아나키즘이 취했던 태도들 가령 반집단주의적 개인주의, 반생산력주의, 자생주의적
신화에 반대했다. 그러나 조정환은 네그리가 그것에 반대하는 대신 집단적 해방, 생산력들의 비국가적 공통계획, 급진적
유물론을 긍정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아나키즘과 맑스주의간의 간격은 주의주의(主意主義)에 사로잡힌 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멀지 않고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한다.
꼬뮤니즘은 영원하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는 가운데 세계는 침묵 속에 빠져들고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한 시대에 와버린
듯하다는 암울한 전망이 있었지만 결국 씨애틀 투쟁이 저항의 불꽃을 당겼다. 씨애틀 투쟁을 전후해 운동의 새로운 주기가
열리고 있다고 전망한 네그리는 그의 말처럼 새로운 주기의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가 된 듯 하다. 조정환의 《아우또노미아》는
네그리의 정치학과 윤리학적 측면을 다루고 있어 아직 한국의 독자들에게 생소한 그의 사상에 종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우또노미아 운동 내부의 다양한 쟁점들과 한국에서의 네그리 수용의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최근 자치공동체 운동과 아나키즘을 비롯한 다양한 조류의 대안적 운동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철학자 이정우는 철학 전문 서평잡지 《아카필로》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과
네그리/하트의 《제국》을 비교를 통해 두 권의 책은 스피노자와 맑스의 위대한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저작이며, 꼬뮤니즘과
노마디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두 가지 소중한 가치’라고 평가한다. 조정환의 《아우또노미아》는 한국에서 네그리 수용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조정환은 이렇게 말한다.
“네그리의 생각은 결코 완결되고 닫힌 체계가 아니다…네그리는 맑스를 통해 맑스를 넘어서 나아간다. 우리 역시 네그리에
의지하면서 그를 넘어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인류의 삶이 계속되는 한 필연적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곳에서 인류의 집단적 자율의 꿈, 코뮤니즘의 꿈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자율은 영원하다.”(416쪽)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