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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0번 : 가난 구제와 '나라님'
글쓴이: 민중의료연합 등록: 2004-11-02 14:33:53 조회: 154
인권하루소식11/2

◐ 범용의 인권이야기 ◑ 

가난 구제와 '나라님'  
 
지친 하루를 잊고 쌔근쌔근 잠자는 아이를 등뒤로 나는 조용히 컴퓨터
를 켠다. 오늘 하루 우리 세 식구가 얼마를 지출했는지 가계부를 작성
하기 위해서다. 알뜰살뜰 살아서 1만 원도 안  쓴 날엔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오지만, '아끼고 아끼다가 한번 지출하면 왜 꼭 목돈으로 
나가는지' 뭉텅뭉텅 줄어드는 잔액을 보면 나오는 한숨을 들이키기 바
쁘다.
 
아내의 출산을 계기로 내가 가계부를  작성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지
만, 내 기억으로 흑자를 기록한 달은 한두 번 뿐이다. 알뜰살뜰 산다고 
살았는데, 지내다 보면 항상 예상치를 초과하고 만다. 이 달은  의료비
가 많이 들었고, 저 달은 경조사비가 많이 들었고, 이유는  각양각색이
지만 하나같이 필요한 지출임엔 틀림없다. 비록  우리 집 가계부는 대
부분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난 이것만큼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의 인간다운 삶을 포기할 수는 없으므로" 
 
그나마 나처럼 '적자 가계부'를 기록할 수조차 없는 140여만 명의 최저
생계비 수급권자들은 차라리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
다.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하는  250여만 명의 빈곤층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급 장애인인 이승연 씨는  2002년 최저생계비가 행복추
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그녀는  노령의 아버지와 역
시 1급 장애인인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최저생계비, 장애수당 등을 포
함해 국가로부터 70만 원정도  받고 있다. 내가  살아가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비용 70만 원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데다가 장애인으로서 한달 
평균 15만 8천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등 늘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
는 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28일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실현해야 할 객관적 내용의 최소한
도의 보장에도 이르지 못하였다거나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
위를 명백히 일탈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자구 
노력이 극도로 힘든 이들에게 국가가 한 달에 70만원 정도만 지급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빚이 3천만 원이나 되고  집세도 18개월이나 밀린 
이들에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야말로 '목숨이라도 유지하려거든 죽
을 때까지 빚을 지면서라도 살아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훌쩍 넘어 2만  달러를 바라보는 오늘날, 이  말은 문자그대로 
'옛말'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가  나서서 상위 20%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7배가 넘는 소득불평등 구조를 개선해  3인 장애인 가구가 '인
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실현해야 할 객
관적 내용의 최소한도'다.
 
컴퓨터를 끄고 아이와 함께 잠을 청한다.  그리고 지친 하루를 잊으며 
나는 되뇐다. "가난 구제, 나라님이 아니면 주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나
서야지!"
 
◎ 범용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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