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공지사항

 
3376번 : [민간인학살 100문100답]3편:해방정국에서 학살은 시작되고
글쓴이: 학살규명 등록: 2004-11-17 15:37:13 조회: 172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100문 100답

발행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ㅣ 편집 사무처ㅣ삽화 박건웅ㅣ발행일 2004년 11월 17 일

 

3편 : 불안정한 해방정국에서 학살은 이미 시작되었다.

 

22. 해방군인가? 점령군인 가? 노동자 대학살 (화순탄광 노동자 학살)

 

1946년 8월 15일 광주 8.15 기념식 에 참석하려던 3천 화순탄광 노동자들을 미군 제40사단이 토끼몰이 하듯 쫓는 과정에서 김판석 씨 등 여러 명이 미군 총에 맞아 사망 또는 실종되고 수백 명 이 부상당했습니다. 공장 자주관리를 추구하던 당시 전국노동조합평의회에 대 한 미군의 와해 작전의 일환으로, 해방 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자행한 최초의 민간인학살 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 후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 군'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23. 전선이 형성된 적이 없는 독도에도 폭격은 쏟아지고 (울릉도, 독 도 폭격)

독도 인근 해역에 서 조업중이던 어선에도 미군은 전쟁 발발 전부터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여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알려진 것만도 1947년 4월, 1948년 6월 8일, 1952년 9월 15일, 1952 년 9월 22일 네 차례입니다. 우리나라의 동쪽 끝에서 일어난 독도 학살은 전선 과 무관한 비전투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 특징인데, 미군은 조업 어부에 대해 어떤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인종차별적 시각을 드러냈습니 다.

 

24. 대구의 진보인사를 싹쓸이하다 (대구 10.1사건)

대구 지역 중심 의 1946년 '10월 항쟁' 이후 미군정과 경찰은 수천의 관련자들을 검거하여 그 중 수백 명을 처형했고, 진압과 검거 과정에서도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습니 다. 또 항쟁에 연루되어 형무소에 갇혀 있던 이들과 풀려났다가 뒤에 국민보도 연맹에 강제 가입된 이들도 전쟁 발발 후 모두 학살당했습니다. 대구시와 인근 의 가창, 월배, 본리동, 성서, 칠곡, 경산 코발트 광산 등이 이와 관계 있는 주요 학살지입니다.

 

25. 제주 4.3사건도 여기서 말하는 민간인학살 사건인가요?

제주 4.3사건의 비극은 1947년 3.1절 행사중인 제주도민을 미군정이 강제해산시키고 이들을 향 해 발포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발포사건에 항의하여 곧 총파업이 단행되었고 경찰과 서북청년단은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합니다. 결국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 대가 1948년 4월 3일 탄압에 항의하고 단선단정에 반대하며 봉기를 하게 되고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개방 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는 끊 임없이 무력충돌을 거듭합니다. 이 과정에서 최소 3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합 니다. 당시 미군정은 얼마 안 되는 무장대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제주도민 전 체를 상대로 '빨갱이 사냥'에 나섰으며 육지에서 온 토벌대는 약탈, 폭행, 방 화, 살해 등의 범죄를 수없이 저질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를 없애더라 도 미군정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고 이는 당시 경무대장이던 조병옥 이 "대한민국을 위해 전 도에 휘발유를 부어 30만 도민을 모두 죽이고 모든 것 을 태워버려도 좋다"라고 말한 데서도 드러납니다. 요컨대 제주 4.3사건은 대 표적인 민간인학살 가운데 하나입니다.

26. 여순사건은 군대의 반란 사건 아닌가요? (여순사건)

1948년 10월 19 일 당시 여수에 주둔중이던 국방경비대 14연대는 제주 4.3사건의 진압 출동 명 령을 받고 "같은 민족에게 총을 쏠 수 없다", "미제 침략 반대", "단선단정 반 대"를 내걸고 부대를 이탈합니다. 반군은 20일에 여수시를 장악하고 곧이어 순 천, 구례 등 전남 동부지역 전체를 장악합니다. 하지만 10월 27일 진압군이 여 수시를 완전 진압하면서 사건은 종료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학살은 오히려 진압 이후에 대대적으로 자행되는데, 진압군은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잔인하게 학살했고 산으로 들어간 잔류부대원과 공비들을 소 탕한다며 마을 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습니다. 이렇게 학살당한 민간인의 수 는 여수, 순천, 구례, 광양, 보성, 고흥 등지에서 약 1만 명에 이릅니 다.

 

27. 지리산에 사는 죄? (산청, 함양)

빨치산 토벌차 지 리산에 온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는 1949년 7월 18일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설통바위 부근에서 매복중이던 공비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국군은 이 사건을 통비분자에 의한 것으로 보고 200여 명의 마을주민을 통비분자로 몰아 학살합 니다. 이 밖에도 여순사건 이후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토벌군에 의한 주민 학 살 사건은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리산에 사는 '죄'밖에는 없는 수많 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28. 이발사의 외상장부가 살생부가 되다 (함양 도북마을 학살)

도북마을 학살은 1949년 9월 20일 낮 12시경 마을 주민 32명이 수동면 당그래산에서 빨치산 내 통 혐의로 학살당한 사건입니다. 사건 발생 직전에 마을 이발사 정주상이 경비 병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넘겨졌는데 당시 지서장 최홍식은 빨치산 내통자를 찾 는다는 명분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끌어들이는 참이었습니다. 결국 이발사의 외상장부에 적힌 마을 주민 32명이 고스란히 산으로 끌려가 학살당했습니다.

 

29. 전신주보다 못한 목숨 (고흥 전신주 사건)

1949년 5월 3일 밤 전남 고흥군 과역면 도천리와 남양면 노송리 경계 지점에서 전신주 약 10주 의 전선이 절단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빨치산은 토벌대의 연락망을 교란하기 위해 전선을 절단했고 이에 경찰들은 전신주마다 주민 한 사람씩을 붙여서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선 절단 사건이 발생하면 주민들을 빨치 산 내통자로 몰아 살해하곤 했습니다. 당시 고흥경찰서에서도 5월 9일 마을 주 민을 다수 연행하여 고문한 후 주민 6명을 학살했는데, 전남 동부 전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30. 토벌대인가, 학살부대인가? (문경 석달마을 학살)

석달마을 학살은 1949년 12월 24일 정오 24가구에 127명의 주민이 거주하던 경상북도 문경군 산 북면 석봉리 석달동에 국군 2사단 제25연대 3대대 7중대 2소대의 무장군인 70 여 명이 느닷없이 들이닥쳐 자신들에게 대접이 소홀하다는 것을 트집잡아 주 택 24가구 전체를 불태우고 주민 전체를 마을 앞 논바닥과 마을 뒤 산모퉁이 두 곳에 모아놓고 학살한 사건입니다. 마을 뒤 산모퉁이에서는 석봉리 동회에 참석했다가 귀가하던 청장년들과 학교에서 하교하던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학살 되었는데, 단 2시간 만에 마을 주민 86명이 학살당했고 이 중 32명은 15세 미 만의 어린이였습니다.

 

(4편에서 계 속)


 

4회 : 민간인학살 - 이념 체제 의 대립과 국가책임성 분리의 문제

 

일시 : 2004년 11월 18일 목요 일 늦은 7시 / 장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

발표 :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 구소) - 강성현(역사학연구소)

 


 

4대 개혁입법(과거청산법 제 정,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법 제정)을 위한

연합집회가 20일 토요일 오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있습니다. 참여, 지지, 격려 바랍니다.

일시 : 2004년 11월 20일 토요 일 늦은 5시 / 장소 : 여의도 국민은행 앞

 


1호 법 쟁취 농성 투쟁 돌입 (2004/11/3)

2호 340명 인권활동가, 과거청산 법 제정 촉구 선언 (2004/11/4)

3호 어찌 잊겠는가 그 속에서 스 러진 영령들이여, 합동위령제 엄수 (2004/11/8)

4호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 민위원회 공식 발족 (2004/11/9)

5호 과거청산법 국민 절반 이상 지지 (2004/11/12)

6호 한나라당 과거사진상규명법 에 대한 흑색선전 중단하라 (2004/11/16)


 

1편 : 이땅에서 해원 하지 못한 억울한 죽음들 (보러가기)

2편 : 온 국민이 잠재적인 적! 국가가 국민을 선별하다 (보러가기)

 

*자세한 내용은 학살규명 범국민위 사무처(이춘열 019-265-5694, 02-773-5158)로 문의바랍니 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는 학살 의 진실을 세상에 널리 알려

사회적 공론화와 입법을 통한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 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 학살의 진상을 밝혀 다음세대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잣대를 높이는 데 기여하 고자 합니다.

 

민간인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살아남은 우리들 이 해야할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여려분의 참여와 후원은 폭력과 억압의 시대를 넘어

인권과 평화의 시대로 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100만 피학살 원혼들이 해원하고 유족들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은폐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동참해주십시 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서울 용산구 후암동 445-8번 지 3층(140-190)ㅣ전화/전송 02-773-5158 ㅣ genocide2002 at hanmail.net



정규표현식
[ 0.09 sec ]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글쓰기 | 답장쓰기 | 수정 | 삭제 |

 

 

[140-801]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48 신성빌딩 4층
TEl : 02) 774-8774   Fax : 02)774-8773  E-mail : tsmyr@jinbo.net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