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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9번 : [민간인학살 100문100답]4편:학살은 최상층의 지시
글쓴이: 학살규명 등록: 2004-11-19 16:10:22 조회: 216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100문 100답

발행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ㅣ 편집 사무처ㅣ삽화 박건웅ㅣ발행일 2004년 11월 18 일

 

4편 : 학살은 의심할 바 없는 최상층의 지시!

 

 

31. 옥녀봉에서 죽어간 사람들

(충 북 청원군  옥녀봉 학살)

1950년 7월 9일(혹은 11일) 국군이 청원군 북위면 옥녀봉에서 괴산군 사리면, 칠성면, 불정면 등지 에서 끌고 온 보도연맹원 800여 명을 학살했습니다. 피학살자들이 옥녀봉 골짜 기에 들어섰을 때 이미 헌병과 경찰 등 40여 명이 기관총 등을 준비한 채 대기 하고 있었고, 이후 4시간 동안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었습니다. 골짜기에 핏물 이 냇물처럼 흐르고 인근 마을의 개들이 옥녀봉에서 배를 채워 밥을 안 먹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청원군의 다른 지역을 포함하여 충북 전체에서 학살된 보 도연맹원은 3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32. 반세기 동안 기름덩어리에 파묻힌 유골들 (경산 코발트광산 사건)

 1950년 7-8월에 경북 경산의 코발트 폐광 수직갱도와 인근 골짜기에서 대구형무소 재소자와 경 산, 청도 지역의 보도연맹원 약 3500명이 군경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목격자 의 증언에 따르면 하루 10대 정도의 군용 트럭에 사람들이 실려왔는데 내려올 때는 빈 트럭이었다고 합니다. 학살은 약 열흘 동안 진행되었는데, 포승줄에 묶여 산 채로 수장되기도 했고 흉기로 가격당하거나 기름에 태워지기도 했습니 다. 경산 코발트광산에는 지금까지도 수습되지 않은 유골들이 반세기 전의 한 을 그대로 품은 채 기름덩어리에 파묻혀 있습니다.

 

33. 꼬챙이 들고 다니던 CIC, 일본군보다 무서워 (경남 보도연맹 학살)

1950년 7-8월 경 경남 일대에서는 보도연맹에 의한 학살이 광범위하 게 자행되었습니다. 양산에서는 목화창고에 감금되었던 350명이 사배골짜기에서 학살당 했으며, 진영에서는 특무대와 경찰이 주동광산과 숯굴에서 300-400여 명을 학 살하고 냉정고개에서도 335명을 학살했습니다. 울산에서도 특무대와 경찰이 울 주군 온양읍 대원산, 상북면 지내리, 웅촌면 오복리 등지에서 869명을 학살했 습니다. 경남 지역은 1960년 유족회 활동 당시 활발한 진상규명 운동이 펼쳐 진 지역이기도 한데, 양산 사배골짜기와 진영 냉정고개, 울산 대운산 골짜기에 서 유족들이 유골을 발굴하여 합동묘를 조성했으나 5.16 이후 쿠데타 세력이 무덤을 파헤치고 유골을 불사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밖에 마산, 진주, 함안, 창녕, 사천, 진양, 하동, 밀양, 삼랑진, 거제, 통영, 충무, 창원 등지에 서도 학살이 자행되었는데 최근 태풍 '루사'로 실체가 드러난 마산 진전면 여 양리 학살은 진주 보도연맹원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보도연맹원을 예비 검속한 주체는 주로 경찰이었지만 학살 명령과 집행은 주로 육군 헌병대와 미 방첩대(CIC), 해군 정보부(G-2)가 맡았습니다. 유족들도 CIC가 떴다 하면 몸 을 숨길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34. 물귀신이 된 원혼들 (거제 학살)

1949년 4월부터 1950 년 7월 25일까지 거제 일대에서는 학살사건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 기간에 학 살된 사람 중 787명이 확인되었습니다. 1949년 4월과 1950년 4월 사이에 거제 지역의 야산대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인근 마을 주민들이 다수 학살되었고, 6.25 이후에는 예비검속자와 보도연맹원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학살자로는 백골, 호림, 백호, 비호부대 등 국군과 우익단체인 민보단, CIC(방첩대), HID (헌병대), G-2(해군 정보부) 등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35. 떠내려온 시신에 대마도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중단할 정도였다

(부 산 학살)

인민군이 한 번도 들어 온 적이 없는 부산에서 학살된 사람도 1만여 명에 이릅니다. 전쟁중 임시수도 가 있던 부산에서는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헌병, 경찰, 청년방위대원 등과 우익청년단 등이 전 주택을 세 차례 수색하며 좌익경력자, 보도연맹원들을 예 비검속했습니다. 이렇게 검속된 이들은 부산형무소 수감자들과 함께 8-9월 사 이에 특무대, 경찰 등에 의해 총살, 수장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발행된 주 간지 <선데이 마이니치>와 <주간조일> 등에서는 부산 앞바다에서 철사로 엮여 떠내려온 시체가 어망에 걸려 고기잡이를 못하겠다고 항의하는 대 마도 어민들의 이야기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36. 무인도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갈 매기섬, 애기섬, 그리고 백조일손)

2002년 진도 인근의 무인도인 갈명도에서 유골이 발굴되 었는데, 이들은 해남에서 끌려온 보도연맹원이었습니다. 여수 앞바다의 애기섬 에서도 여순사건으로 보도연맹원이 된 사람들이 끌려와 학살당했습니다. 예비 검속자 학살은 4.3사건이 일어난 제주도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곳 에서 4.3의 광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또다시 학살되는데, 이중 송악 산 섯알오름 탄약고터에서의 예비검속자 학살을 '조상은 백인데 자손은 하나 뿐'이라는 뜻으로 '백조일손' 사건이라 부릅니다.

 

37. 골령골, 죽음의 구덩이, 비어져 나온 손, 발, 머리 (대전 산내 학살)

1950년 7월 초 대전 산 내 골령골에서는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의 정치 범, 일반 잡범, 미결수와 예비검속자들 3000여 명이 미군과 지역 유지들이 지 켜보는 가운데 학살되었습니다. 학살은 총 10일간 진행되었는데 군경이 후퇴 를 시작한 7월 14∼16일까지도 학살이 계속되었습니다. 대전형무소 학살은 미 군 문서를 통해 여러 차례 확인되었는데, 미 육군 중령 에드워드의 보고서 는 "학살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상층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으 며 미군 제25 CIC 분견대의 활동보고서는 "수형인 학살은 이승만 정권의 최측 근인 김종원이 기획하여 미군의 허락을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 다.

 

38. 대구에서 부산으로? 형무소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에?

(형 무소 수감자 학살)

한국전쟁 발발 후 인 천, 수원, 대전, 공주, 대구, 부산, 마산, 진주, 김천, 목포, 여수, 전주, 광 주 등 전국의 거의 모든 형무소에서 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규모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주, 김천에서는 학살지와 유 골이 발견되어 학살 사실이 확인되었고, 1960년 4대 국회의 양민학살진상조사 특위는 대구형무소에서 1,402명, 마산형무소에서 1,681명이 학살된 것으로 보 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구형무소에서 부산형무소로 이감되었다는 1,172명 이 부산에 도착하지 않은 채 도중에 학살된 사실이 2002년 <국민일보> 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5편에서 계속)


4대 개혁입법(과거청산법 제 정,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법 제정)을 위한

연합집회가 20일 토요일 오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있습니다. 참여, 지지, 격려바랍니다.

일시 : 2004년 11월 20일 토요 일 늦은 5시 30분 / 장소 : 여의도 국민은행 앞


1호 법 쟁취 농성 투쟁 돌입 (2004/11/3)

2호 340명 인권활동가, 과거청산 법 제정 촉구 선언 (2004/11/4)

3호 어찌 잊겠는가 그 속에서 스 러진 영령들이여, 합동위령제 엄수 (2004/11/8)

4호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 민위원회 공식 발족 (2004/11/9)

5호 과거청산법 국민 절반 이상 지지 (2004/11/12)

6호 한나라당 과거사진상규명법 에 대한 흑색선전 중단하라 (2004/11/16)

7호 군의문사, 과거청산법 포함 입법청원 (2004/11/17)


1편 : 이땅에서 해원하지 못한 억울한 죽 음들 (보러가기)

2편 : 온 국민이 잠재적인 적! 국가가 국 민을 선별하다 (보러가기)

3편 : 불안정한 해방정국에서 학살은 이 미 시작되었다 (보러가기)

*자세한 내용은 학살규명 범국민위 사무처(이춘열 019-265-5694, 02-773-5158)로 문의바랍니 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는 학살 의 진실을 세상에 널리 알려 사회적 공론화와 입법을 통한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 하고자 합니다. 또 학살의 진상을 밝혀 다음세대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 이 문 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잣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살아남은 우리들이 해야 할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여려분의 참여와 후원은 폭력과 억압의 시대를 넘어 인 권과 평화의 시대로 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100만 피학살 원혼들이 해원하고 유족들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은폐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동참해주십 시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서울 용산구 후암동 445-8번 지 3층(140-190)ㅣ전화/전송 02-773-5158 ㅣ genocide2002 at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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