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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 : 과거청산은 시대의 명령
87.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이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과정에서 소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숨겨진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충격이 있기도 할 테고, 이의 해결방안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도 활발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터져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서 생성되는 긍정적인 에너지이지 일각에서 주장하는 퇴행은 결코 아닙니다. 상처는 드러내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숨기기에만 급급하다면 곪아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88. 요즘 이야기되고 있는 '과거청산'에 민간인학살 문제도 포함되나요?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은 참으로 많은 질곡을 헤쳐왔습니다. 과거청산의 주요 과제는 일제강점기의 친일과 강제동원, 한국전쟁기의 민간인학살,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인권탄압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잔재를 청소하고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 그리고 해방과 전쟁, 국가형성기에 발생한 민간인학살의 진실찾기, 또 군사독재정권의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발생한 무수한 인권탄압 및 조작의혹 사건과 아직까지도 꼬리를 물고 있는 군의문사 사건의 해결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이 과거청산의 주요 과제들입니다.
89. 학자들의 연구로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요?
일각에서 주장하는 민간연구 차원의 '현대사 조사' 방식은 사실상 '과거청산'을 하지 말자는 말과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조사권한과 정부 각 기관의 협조 없이는 진실을 밝힐 수도 없고, 오랜 세월 동안 고통받아온 피해 국민의 구제 장치도 만들 수 없습니다. 또한 과거청산의 또 다른 목적인 잘못된 공권력의 자기 반성의 기회, 즉 국가가 자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공권력을 불법 행사하여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과거를 반성하며 자기 정화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공권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뿌리깊은 불신은 국가가 공권력을 국민 다수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권력자의 편의대로 사용한 과거의 잘못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친일 인사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기념관이 세워지는 등 친일잔재가 곳곳에 드리운 오늘의 상황은 조사 연구가 미흡해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국가의 공식 조사와 입장이 없는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의 뒷받침을 받는 국가기구에서 공식적으로 과거사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한 과거청산 방법입니다. 역사적 평가는 그 후의 일이지요.
90. 과거청산을 위한 국가기구는 어떤 형태가 바람직할까요?
과거청산을 위한 국가기구는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독립적인 국가기구이거나 대통령 직속인 것이 바람직합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회 산하의 기구는 정치권의 정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학술원 산하의 민간기구는 과거청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구성될 과거청산 국가기구에는 전체를 통괄하는 위원회는 따로 두더라도, 일제강점기 피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군사독재정권기의 피해 등 큰 범주별로 독립된 위원회를 두어 강력한 권한을 갖고서 사안별 성격에 맞게 효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해야만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
91. 과거청산 국가기구에는 어떤 권한이 필요한가요?
4.3위원회나 의문사위원회의 조사활동을 통해 드러났듯이 미약한 조사권한은 자칫 가해자에게 면죄부만 줄 가능성이 높으므로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수사'가 아닌 '조사'임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자료열람권, 압수수색영장 청구권, 동행명령권, 증거보전 및 증인청구 의뢰권 등이 주어져야 하며, 권한이 훼손당하거나 증인이 요구에 불응할 때에는 처벌할 수 있는 규정도 두어야 합니다.
92. 과거청산 국가기구에서는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과거청산을 위한 국가기구에서는 기본적으로 각각의 피해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와 유족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조사보고서를 발간하여 국가의 공식기록으로 남기고, 피해자의 유골 발굴 및 수습, 피해자에 대한 위령사업과 명예회복 등의 후속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피해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한 문화 사업이나 기념 사업도 펼칠 수 있으며 사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정책도 건의할 수 있습니다.
93. 과거청산을 위한 국가기구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과거청산 관련 사건들과 그 의미, 해법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국민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청산은 이해관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권력자가 아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다시 쓰는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입니다. 이런 국가적 중대사에 관련 기관이나 정치권에서 몇 명씩 지분을 나누는 식으로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 분야에서 국민 전체를 대표할 만한 사람들이 주도해야만 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94. 과거청산법이 하루 빨리 제정돼야겠네요.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 등 과거사 관련 피해자들이 고령으로 속속 유명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살아 계신 동안에 시급하게 진상조사가 실시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진상을 밝히는 데 꼭 필요한 증언자들 역시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명령입니다. 국회는 정쟁만 일삼지 말고 하루 빨리 법을 제정하여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주춧돌을 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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