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5번 : 서울'왕'과 부산'사람' 그리고 ... |
| 글쓴이: 통일바라기 |
등록: 2004-11-30 17:24:25 |
조회: 160 |
<통일뉴스 연재 5> 서울'왕'과 부산'사람' 그리고 국가보안법
<김삼석의 軍바로잡기> 14년째 정신분열증 호소하는 애국군인 권대현
김삼석(군사평론가,‘반갑다 군대야’지은이, hiarmy3 at
hanmail.net )
● "나는 서울에서 왕처럼 산다"
지난 2001년 5월 22일자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미
국투자회사 칼라일 그룹 서울 사무소의 20대 재미동포 정 아무개씨가 미국의
친구들에게 보낸 서울의 생활에 대한 편지를 실었다.
"나는 서울에 발령받아 침실이 3개나 있는 큰 아파트를 받았다...두 번째 침
실은 젊은 여자들을 위한 '할렘'이며 세 번째 방은 여러분 친구들이 한국에 오
면 묵을 방이다. 나는 한국에서 왕처럼 살고 있다." "젊은 여자로부터 매일 5
∼8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평균 3명의 여성으로부터 매일 밤 집에 같이 가자는
제의를 받는다." 는 내용을 빠뜨리지 않았다.
당시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가 아시아지역 고문(전 시티은행 고문)으로 있는
칼라일 그룹 한 직원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넘어 짐승처럼 방탕한 생활의 한 단
면이다.
이는 국내 반민족자본을 접수하고 있는 미국 투기자본의 탐욕이 황제처럼 즐기
고 돼지처럼 살찌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 그룹의 대주주인 부시가 올 11월 재선했다.
그들의 인맥은 탐욕의 투기자본을 휘두르며 또 다른 '황제같은' 돼지를 키울
것인가.
11월 1일 한미시티은행출범이 그렇다.
칼라일 그룹을 비롯한 투기자본은 일찌감치 한국의 몇몇 은행과 건물을 먹어
삼켰다.
군사주권에다 경제주권마저 빼앗긴 경제식민통치 아래 백성들의 생활은 하루하
루 입에 풀칠하며 사느라 아우성이다. 몸서리 쳐진다.
한국경제와 금융권을 쥐락 펴락하는 미 군산복합체의 놀이패에 극과 극을 낳
은 셈일까.
여기 극과 극이 있다. 국가보안법이 낳은 한 젊은이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서울의 '왕'은 아니다. 더더욱 평범한 삶도 아니다.
부산의 외로운 정신분열증 환자다.
'송창식 노래를 좋아하던 털털한 청년' 애국군인 35살의 권대현. 91년「애국군
인」사건은 그에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2004년 11월의 모습은 1991년 상황에 멎은 투병생활이다.
● 13년째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91년「애국군인」사건의 권대현
잠시 타임머신을 갈아타고 13년 전으로 가보자.
- '군사투쟁’ 2개 조직 방위병등 11명 구속
1991년 4월 23일, 국군기무사령부(사령관 구창희 중장)는 군 내부에서 유인물
제작·배포와 독서회 활동 등을 벌여온 2개 조직을 적발, 서재호(26) 해군 상
병과 오곤수(22) 육군 상병을 비롯한 방위병 7명과 민간인 4명 등 모두 11명
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군 기무사에 따르면 서 상병
은 해군 ○함대 사령부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육군 ○○사단에 근무하는
방위병 등 7명과 함께 지난해 5월부터 <애국군인>이라는 유인물을 만들어 5차
례에 걸쳐 매회 1백∼2백50부를 부대 안과 대학·재야단체 등에 배포했다.
(경향신문1991년 4월24일)
구속자에는 22살의 권대현 일병도 포함되었다.
그는 당시「애국군인」사건으로 국군 기무사령부와 군 교도소 생활 후 정신분
열증에 갇혀 지금껏 13년째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동아대학교 영문학과에 1988년도 입학했던 권대현, 대학 2학년 때 53사단 단기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동아리 선배인 서재호(26)씨 등 9명과 함께‘애국군인’
이라는 유인물을 만들어 나누어 준 혐의로 91년 3월 21일 긴급 체포되었다.
그뒤 국군기무사에서 20여 일간의 조사를 받은 후 소위‘남한산성’이라 일컬
어지는 군 교도소에서 9개월을 복역하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1월 출소했다.
출소 뒤 권 씨의 모습과 생활은 정상궤도에서 멀찌감치 비껴나 있었다.
영창에서 길들여진 기상, 취침시간에 맞춰, 방 안의 모든 물건은 군대식으
로 '각’을 잡아 정리했다.
간단한 대화의 경우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곧 알아들을 수 없는 자신만의 이
야기로 빠져들었다. 13년 가까이 여전히 갇힌 수인처럼.
● 기무사와 군 교도소에서의 10개월
검거 뒤 관련자들은 철창매달리기, 열차렷 등 육체적 기압 뿐 아니라 20여일
동안 기무사 지하의 빨간 벽지, 빨간 카펫이 깔린 30평 정도의 방에서 조사를
받거나 혼자 앉아 있으면서 '모든 것이 공포로 다가오는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국방부 영창은 각 방에 3명 가량 수감되는데 옆면과 뒷면은 벽이고 앞면은 개
방형 철창으로 되어 있는 이중구조다.
수감자들은 수면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14시간 동안 정좌 상태로 앉아 있어
야 하는 '이중의 형벌’을 받는다.
대소변의 생리적 욕구도 헌병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각 방 사이에는 CC카메라
가 설치되어 24시간 수감자들을 감시하며 정좌자세를 강제했다.
그들이 수감되어 있던 91년 7월경에는 한 수감자가 그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
고 반입된 화장품 병을 깨서 손목에 자해를 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권 씨는 그 속에서 극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거나
이유없는 헛웃음을 웃곤하더니 수형생활 6개월에 접어들어서는 벽에 머리를 찧
고 바닥을 뒹구는가 하면 다른 수감자에게 물건을 던지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
였다.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신경안정제 정도의 진료만이 이루어졌다.
아버지 권영옥씨는 말한다.
“군 교도소로 면회를 갔는데, 애가 계속 비실비실 웃는 것이 정신이 나간 것
같더라구요. 군의관이 사회에서도 이랬냐고 물어보길 래, 전혀 그런 일이 없다
고 얘기했습니다.”
● 기무사가 쏘아 올린 '애국군인 사건’
그의 평범한 인생을 가로질렀던‘애국군인’사건은 어떤 것이었는가.
대학 1학년을 마친 권 씨는 90년 단기사병으로 53사단에 입대하게 된다.
이때 단기사병 출신의‘한두레' 선배 서재호 씨 등은 사병들의 시각에서 군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의‘애국군인'지를 준비하고 있었고, 권 씨는 흔쾌히
같이 했다.
당시‘애국군인'지의 제작을 맡았던 서재호 씨의 얘기다.
“당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보안사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군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었던 시기였죠. 대
한민국 군이 일부 정치군인들의 욕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면서도, 군의 유일한 매체인 ‘국방일보’는 군인들의 몰의식화 측면으로만 보
도했습니다.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의 아들들은 대부분 입대 면제된 가운데,
이름 없고 힘없는 아들들만 모인 군에서는 매년 1천명이 넘는 사병들이 훈련과
정이나 군기사고로 사망하지만 군내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너무도 당연히 넘어
가고 잊혀져 버렸습니다. 누군가 이런 것들을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
다.”
‘애국군인’ 지는 일반 일간지에서 발췌한 군 주변의 변화 흐름에 대한 소식
과 한 해만도 1천여 건이나 발생하는 총기사건에 대한 소식을 실었고, 그 외
일반 사병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야기들과 4컷 짜리 만화도 있었다.
'애국군인’ 지의 핵심적인 주장은 ‘국군의 대미 종속성 극복’, '정치군인
의 정치개입 근절’, '사병들의 인간적 대우’ 등이었다.
매호마다 100부씩 서면의 한 인쇄소에서 제작되어 몇몇 휴가 나온 사병이나 단
기사병들, 그리고 각 학교와 시민단체에 배포되었고, 1년 동안 5호까지 발행되
었다.
●‘권대현을 사랑하는 모임'
권 씨의 가족들은 장남인 권 씨의 입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하지만 모친이 버는 돈으로는 세 식구의 생활조차 빠듯하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동아대의 선후배들이‘권대현을 사랑하는 모임’
http://my.dreamwiz.com/dhsarang/ 을
만들었다.(016-852-7051 서재호/ 국민
은행 137-21-0090-071 서재호)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줄려고 하지만,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가족들은 몇 해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계획했으나 소송에 많은 돈
이 들고, 또한 정신분열증의 경우 그 원인을 '고문'으로 명확히 규정할 수 없
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권 씨의 치료를 거의 무료로 맡아오던 한 의사의 도움으
로 권 씨는 양산의 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또 2003년 5월 28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권 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
로 인정했다.
이어 정밀검사를 거쳐 2004년 4월 경, 권 씨의 '민주화운동 관련 가혹행위로
인한 정신 장애'에 대한 국가보상이 있었다.
서재호 씨는 11월 18일, 전화통화에서 "권 군이 군민주화 운동을 하였다는 이
유로 기무사와 군, 그리고 영창생황을 통해 얻게된 정신질환에 대해 국가 보상
금이 지급되었습니다만 권 군의 치료와 재활에 우리의 노력을 더 기울여야 되
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서 씨는 "건강상태는 입원 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의식상태는 91년 당시의 현
실에 멎어있습니다. 재활을 위해 투약을 하고 있지만 병원비와 간식비가 많이
들어갑니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2001년 11월 인터넷 매체에 권 씨의 투병소
식이 알려졌지만 그때 잠깐 뿐이었다.
● 극과 극을 달린 두 젊은이, 그리고 국가보안법
91년 3월, 한 젊은이는 국방부 영창에서 똥오줌도 헌병의 허가를 받아야 했
고, 각 방 사이에는 CC카메라가 설치되어 24시간 정좌자세를...정신분열증..
2001년 5월, 또 다른 한 젊은이는 침실이 3개나 있는 서울의 아파트를 받아..
젊은 여자한테서 매일 5∼8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평균 3명의 여성한테서 매
일 밤 집에 같이 가자는 제의를 받고....
오늘도 분단과 식민지, 투기자본의 광란이 서울시내에서 가로등 뒤 커텐사이
로 넘쳐난다.
국가보안법이 낳은 극과 극은 서울의 '왕'을 떠올릴 때마다 필자를 정신분열케
한다.
필자만의 생각일까. 오히려 정신분열이 일어나지 않으면 정상이 아닐 지경이
다.
그러면 우리 사회 전체가 군영창이란 말인가.
'애국군인'지에는 '국군의 대미 종속성 극복'이 주내용이었다.
군대가 미국에서 벗어나 스스로 두 발로 서자는 것이 아니었나.
미국의 끝없는 탐욕, 호화방탕한 돼지생활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 군복입
은 '애군군인'들의 소망이었거늘.... 부산의 '군인'은 이제 더 이상 국가보안
법의 피해자가 아니다.
자랑스러운 국가보안법 거부자다.
서울의 '왕'을 미 본토로 쫓아내고, 부산의 '군인'이 '사람'으로서 평범한 생
활을 되찾을 날은 머지 않을 것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정신분열증 호소하는, '젊은이'를 끌고 갔던 국가보안법을
기억하자.
우리 모두 정신분열증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