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이상 노예로 사는 것을 거부한다..... 이제 분연히 떨쳐 일어나 굴
종의 삶을 버리고 자유를 위한 당당한 투쟁을 시작하며....." 

어느 노동·민중단체의 투쟁 선언문이 아니다. 2월 22일 『국민을 위한 의료개
혁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의사들의 대표자 결의대회 결의문이다. 사회주의 의
료보험제도와 의약분업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의 집회에는 수만명에 이르는 의
사, 의사 가족, 병의원 직원 등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홈페이지
와 투쟁속보 등에 따르면, 지역의사회마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
는 특별 투쟁기금이 의협으로 속속 답지하고 있으며, 미주한인의사협회와 일본
의사회, 대만의사회 등에서 지지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닭고기와 오리고기 
시식행사 등으로 언론과 사회 지도층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등, 성공
적인 집회 개최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며 한껏 부풀어 있다. 


『문제는 '집회 개최'가 아니라, 이들의 '시대착오적 발상'』

"어떻게 의사가 데모 혹은 파업을 할 수 있냐"는 식의 즉자적이고 원색적인 비
난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비난은 지하철 노동자의 준법투쟁조차 '시민
의 발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부치는 정부와 자본의 그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들도 하나의 사회집단이 분명한 이상, 집단적으로 의사표
현을 하고 집단행동을 할 권리는 있다. 문제는 이들이 '데모를 하거나 파업을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들을 집단행동으로 이끌고 있는 '시대착오적 발
상'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을 '사회주의 의료'라고 규정하면서, 자유민주 이념
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사회주의 의료'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나라 의료보험제도의 본질적 특성은 의료보험이 처음으로 도입된 1977년 당시
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단지 중요한 차이라면, 대상자의 수가 전국민
으로 확대되었고, 조합방식에서 통합방식으로 관리운영체계가 바뀐 것 정도인
데, 조합방식으로 운영될 당시에도 보험료 수준을 제외하고는 조합간의 차별성
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조차도 본질적인 변화로 보기는 힘들다. 의
사들이 사회주의 의료의 확실한 증거로 들이대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나 '수
가 고시제' 등은 의료보험제도 출발 때부터 계속 있어 왔던 제도이다. 

따라서 의사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의료보험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박정희
는 우리나라에 사회주의 의료의 씨앗을 뿌린 '사회주의 의료의 주창자'가 된
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위
정자들은 이런 사회주의 의료를 유지·존속시킨 '사회주의 의료의 계승자'가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은 자신도 모르는 새, 사회주의 의료체제 하에서 
살아왔다는 말이 된다. 

이들이 사회주의 의료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들을 좀더 살펴보자. 우선, 흔
히 'DRG'라고 부르는 '포괄수가제'가 있다. 이 제도는 의사협회 회장이 보건복
지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사회주의 의료의 증거로 지목한 것이다. 작년 보
건복지부가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 방침을 철회했을 때, 의협은 "사회주의 의료
를 획책하는 정부의 기도를 막아냈다"며 자화자찬했었다. 다음으로는 금번 전
국의사 대표자 결의대회 결의문에서도 언급된 '목표관리제', '선별지정
제', '총액계약제' 등이 있다. 의사들의 눈에는 의약분업도 사회주의 정책이
다. 한 마디로 의료는 온통 사회주의 투성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회주의 의료의 확실한 증거로 지목하는 이들 정책은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이미 80년대부터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게다
가 'DRG'는 자유민주 이념의 본산인 미국에서 개발되어 적용되고 있는 제도이
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유럽 각국 정부는 우리나라 의사가 들으면, 경
천동지할 정도로 의료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강력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의 자유방임성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정평이 나 있다. 의사 맘대
로 자기가 개업하고 싶은 곳에 개업하고, 전문의도 개업하고, 의원도 병상을 
운영하고, 병원도 맘대로 외래환자를 보고, 환자도 자기 맘대로 이 병원 갔다
가 저 병원 갔다가 할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는 그 예를 찾기 쉽지 않
다. 의료기관의 절대 다수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실상의 '영리기
관'이고, 보건의료비 지출에서 공적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불과하
다. 오죽했으면, '신자유주의 전도사'인 세계은행조차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급
여수준을 높이는 등 공적 역할을 강화하라고 주문할 정도였겠는가? 

결국, 이들은 있지도 않은 상대를 놓고 싸움을 걸고 있다. 국제적으로 볼 때에
는 최소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책에다가 '사회주의 의료'라는 붉은 딱지
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이들의 투쟁은 갈수록 심화되는 의사사
회 전반의 위기의식과 내부적 계층화, 그리고 급속한 사회환경 변화에 대한 부
적응으로 발생하는 대내외적인 불만과 갈등을 '사회주의 의료'라는 가상의 적
에 대한 성전(聖戰)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집단의식의 귀결이다. 따라서 이
들이 수만명, 아니 수십만명이 모여서 집회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직면한 
문제점과 갈등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의료보험 수가를 고작 얼
마 더 올린다 한들, 그리고 이들의 주장대로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한다 한들, 
이미 무한경쟁체제로 돌입한 의료현실에서 뾰족한 활로를 찾기는 힘들 것이
며, 정부의 비교적 느슨한 간섭을 피하는 대신 시장과 자본의 더욱 혹독한 통
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처음 '사회주의 의료'를 언급했던, 의약분업 파동 당시에는 다분히 정
치적인 레토릭(rhetoric)으로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들은 정치적인 레토릭을 사실(fact), 그 자체로 믿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신념(belief)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하다. 이런 탓
인지 최근 의사단체는 보수 우파정당조차 함부로 말하기를 꺼려하는 수구적인 
발언들을 거리낌없이 하곤 한다. 이 모두가 시대착오적 발상이 빗어낸 씁쓸한 
우리시대의 초상이다. 


『의사 집단의 윤리는 '의사 집단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의 일치 정도에 따
라 결정』

이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하게 된 데에는 의료업 전반의 수익 악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개원가의 사정이 예전같이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에
게 굳이 과장해서 이야기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개업의조차 한결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의료업 전반의 수익 악화는 일면 사실인 측면도 있는 것 같
다. 이들은 "한 달 수입이 200∼300만원도 안 되는 개업의도 많다. 주위에 경
영난으로 폐업하는 의원도 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를 도둑
놈 취급한다"며, 하소연한다. 어떤 이는 "오로지 돈만 벌기 위해 사회적 물의
를 일으키는 의사는 극소수인데도, 언론은 의사 전체의 일인 양 매도한다. 나
만해도 살림살이가 어려운 환자의 진료비를 받지 않고 무료로 진료해 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며, 내심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이들이 하는 말은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으로 놓고 볼 때에 정말로 
악한 사람은 없다"는 시쳇말처럼, 의사 개개인이 다른 사람보다 더 비윤리적
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개인을 놓고 보면, 사회적 평균보다 더 나은 편이라
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윤리'와 '집단의 윤리'는 엄연히 다른 개념
의 문제이다. 의사들은 바로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윤리'는 개개인의 선한 의지나 행실에 따라 결정되지만, '집단의 윤
리'는 그 집단이 사회와 맺는 관계의 구조와 방식에 의해 판가름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의사집단은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도록 국민과의 관계가 형성되
어 있다. 

국민이 많이 아플수록, 병원에 많이 올수록, 필요하지 않은 검사와 치료도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은 돈을 낼수록 의사에게 경제적으로 이롭도록 구조화되
어 있다. 즉, 의사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서로 철저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
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의사 수입이 월 200∼300만원이 아니라 월 20∼30만원
에 불과한 지경에 이른다 할지라도, 국민 입장에서 의사는 '내 살 뜯어먹는 도
둑'으로 비취질 수밖에 없다. 결국, '돈을 많이 버느냐? 적게 버느냐?'의 문제
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국민이 더 건강할
수록, 병원에 적게 올수록, 쓸데없는 검사나 치료를 하지 않을수록, 환자의 직
접적인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수록 의사에게 경제적으로 이롭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면, 의사 수입이 월 200∼300만원이 아니라 월 2∼3억에 이른다 할지라
도, 국민 입장에서 의사는 '내 건강을 보호해주는 파수꾼'으로 비취질 것이
다. 이런 관계 형성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이
미 실현하고 있거나, 그 가능성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인두제로 운
영되는 주치의제도에서는 의사에게 등록한 주민이 더 건강하고, 병의원에 적
게 올수록 의사에게 경제적으로 이롭다. 

좋은 제도에서는 남들 하는대로 평범하게 해도 사회적으로 선한 일로 취급받는
다. 그러나 나쁜 제도에서는 남들 하는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악한 일로 손가락
질을 받는다. 지금 우리나라 의사가 처한 현실이 바로 이렇다. 의사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일치하는 좋은 제도, 의사와 국민간의 윤리적 관계에 대한 집단
적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성찰이 없다면, 의사들이 아무리 '국민을 위한 의료
개혁'을 앞세우고, 전국의 오리고기와 닭고기를 다 먹어치운다 하더라도 이들
의 주의·주장과 행동은 '비윤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2월 22일 집회를 앞둔 
의사들에게서 '집단의 윤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2
월 22일 의사집회가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끝>

* 이 칼럼의 내용은 민중의료연합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전국의사 대표자 결의대회 결의문 

우리 전국의사 대표자들은 더 이상 건강보험제도의 노예로 사는 것을 거부한
다. 

우리 의사들은 왜곡된 건강보험제도의 역사 속에서 말없이 국민의 건강만을 돌
보며 살아왔다. 또한 의학교육, 수련교육, 개원 등에 정부 지원 하나 없이 이
루어진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철저히 유린당하는 현실에 깊
은 자괴감을 금치 못한다. 

의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침해하고 있는 건강보험제도의 틀 자체가 바뀌
지 않고는 우리 의사들은 더 이상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수 없다. 

우리 전국의사 대표자들은 이제 분연히 떨쳐 일어나 굴종의 삶을 버리고 자유
를 위한 당당한 투쟁을 시작하며 정부와 국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국가 통제식의 사회주의 방식을 버리고 국민의 선택권과 의료인의 자율
성을 존중하라. 

둘째, 국민들의 의료이용을 감소시켜 재정안정을 하겠다는 소아적 발상을 버리
고 국민들이 필요한 만큼 의료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민간의료보
험을 도입하라. 

셋째, 관료화된 단일보험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건전한 경쟁을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해체, 분리 운영하라. 

넷째, 목표관리제, 선별지정제(공단만 선택권을 가진 계약제), 총액계약제 등 
사회주의 방식의 정책이 계획된 참여복지 5개년 계획(건강보험분야)을 즉시 철
회하라. 

다섯째, 건강보험재정파탄의 근본 원인이며 의사의 진료권을 훼손한 조제위임
제도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국회 내에 재평가위원회를 구성하
라. 

여섯째, 실패한 조제위임제도를 진찰 후 약 받을 곳을 국민이 직접 선택하는 
조제선택제도로 전환하라. 

일곱째, 정부는 의사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잘못된 각종 고시 및 시행규칙을 즉
시 철회하라. 
전국 228개 시군구 대표자들은 국민건강의 질 향상을 위하여 국민이 대우받고 
의사가 소신진료 할 수 있는 의료제도 개혁을 위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국민건강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2004년 2월 1일
전국의사 대표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