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은 조선을 세 번 구했습니다.
마침 불멸의 이순신이 끝나고 비슷한 시기에 친일인사들의 발표가 있었습니
다.
그런데 임진란 때 이순신만 싸웠나! 원균도, 의병도, 관군도 싸웠고 이순신은
육군과 함께 한 육전에서는 패했다는 등의 말로 간간이 이순신을 헐뜯는 글을
봤습니다.
일제 알바의 짓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또 이순신의 죽음을 두고 자살이니 위장죽음이니 등으로 말이 많습니다.
너무나 불경스럽습니다.
이순신은 모함으로 두 번의 백의종군을 당했습니다.
지금의 친일반역자 놈들이면 그래 너거들끼리 잘 해봐라며 앙심을 품고 더욱
더 해코지를 했을 겁니다.
이순신은 상관으로부터 대수롭지 않은 거문고 하나를 부탁 받고 아무리 하잘것
없지만 그 오동나무는 나라의 재산이라 공적인 일이 아닌 사적인 일에 함부로
쓸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지금의 친일반역자 놈들이면 출세하고자
마누라 아니 딸까지 같다 받쳤을 겁니다.
이순신은 지금의 해군 총사령관인 삼도수군통제사로 자기 자식을 전쟁터에서
잃었습니다.
지금의 친일반역자 놈들이면 세상이 망해도 군대는 무슨 군대 기생집에서 진
탕 놀다 전쟁지면 이긴 쪽에 빌붙어 살면 되지!
이순신의 죽음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이미 그 시대의 사람에 의해 쓰여진 글
덕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당시 조정은 연이은 4번의 사화로 모함과 반목 그 자체였습니다.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의병장이 어줍잖은 이유로 모함을 받아 깜빵에서 고문
과 매질로 죽고 많은 의병장들이 세상 속으로 숨었습니다.
임진란이 일어나자 왜구는 파죽지세로 단숨에 평양까지 삼켜버렸습니다.
임금님은 신의주까지 피난 가서 중국으로 갈똥말똥 망설이는 처지가 되었고
백성들은 산 속으로 숨어들어 짐승과 같이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갔습니다.
이순신은 47세가 되던 해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어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
리 예견하시고 총통, 화약, 거북선, 군량미 등등 전쟁준비를 착실히 했습니
다.
그래서 육전에서는 백전백패 하다시피 했어나 해전에서는 백전백승하여 나라
를 지켰습니다.
만약 해전에서도 왜구에 졌다면 정유재란마저도 없었습니다. 벌써 조선은 왜구
의 땅이 되었습니다.
육전에서는 조선의 관군도 오합지졸이고 의병은 더욱더 오합지졸이었고 무기
도 변변찮았습니다.
왜구가 10명 죽으면 우리는 100명이 죽는 식으로 전쟁을 치렀습니다.
많은 백성이 이고 지고 메고 이순신 밑으로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왜 일까요?
전쟁통에도 조총, 화살, 창, 칼에 대한 두려움 없이 등 따시고 배부르고 수탈
당하는 것 없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군을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임금을 업신여겼다는 어줍잖은 이유와 모함
으로 잡아드려 전쟁을 대비해 불철주야 준비하고 모아 놓은 모든 것이 원균 지
휘하의 칠천량해전에서 왜구의 손에 의해 깡그리 박살납니다.
거북선 한 척 만들라 치면 백성들의 피고름을 짜야 했습니다.
요즘처럼 손쉽게 기계톱으로 나무 자르고 트럭으로 운반하는 때입니까?
그 당시 화약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십니까?
볍씨를 심으면 한해를 기다려야 곡식을 거둡니다.
정유재란입니다.
또 한번 조선의 운명이 백척간두요 풍전등화가 되었습니다.
죽지 못해 살아남은 패잔병 같은 13척의 배로 그 10배가 넘는 왜구의 배에 싸
움을 겁니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이요 정신나간 짓입니다.
맞습니다. 암 맞고 말고요!
보통 이런 정도로 전력이 차이가 나면 도망가거나, 항복하거나, 이판사판 자살
공격을 합니다.
세계 전쟁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태평양전 때 싱가폴에서 영국군이 싸
워보지도 않고 일본에 항복합니다. 몰론 전력에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후
그들은 포로로써 태국의 과이강 다리공사에 투입됩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러한 보통의 법칙을 감히 벗어나 장수로서의 불퇴전의 마음
가짐으로 턱도 없고 말도 안돼는 전력으로 싸워 이깁니다.
이것이 울돌목(명량)해전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순신은 불가능한 것을 해내었습니다.
또 한번 조선을 구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이순신은 살아서 조선을 두 번 구했습니다.
노량해전도 이순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면 안 일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이 그랬습니다. 왜구는 병력을 일본으로 철수 하고자 명나라와 온갖
협상을 하는 중이고 명의 장군은 손 안되고 코풀 듯이 패장이 아닌 승장으로
명의 황제에게 이겼다고 전과를 보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순신은 바보라서 지 죽을 줄 모르고 전쟁을 고집했을까요?
몰론 일본쪽의 상황도 있었지만 만약에 왜구가 큰 손실 없이 일본으로 철수했
다가 전력을 다시 보강하여 정유재란처럼 다시 쳐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에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장군의 장수다운 생각에 노량해전이 벌어졌습니
다.
노량해전에서 명은 조선보다 크고 좋은 많은 배를 가지고도 그들은 멀리서 뒷
짐지고 보듯이 방관하였고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이 폭삭 내리 앉은 까닭
에 거지같은 배 여러 수십 척으로 조선수군만 대가리 박 터지게 왜구와 싸우
다 이순신과 많은 병사들이 함께 전사했습니다.
이순신은 왜 죽어가면서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까?
역사의 한 장면을 근사하게 장식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김덕령 의병장처럼 끌려가 맞아죽을 것 같아 죽지 않고도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세상 속에 숨기 위해 죽지 않고도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입니
까?
만약에 퇴각하는 왜구가 이순신이 죽은 것을 알았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졌을
겁니다. 내라도 바로 뱃머리를 돌려 조선수군을 박살내버리고 해상을 장악하
여 조선을 깔아뭉개 버렸겠습니다.
왜 일까요? 이순신이 없는 조선수군은 안코 없는 찐빵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
요, 알맹이 없는 쭉쟁이 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것으로 이순신은 죽어서 또 한번 조선을 구했습니
다.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역사 속에서 장수로서는 비교될 수 없는 한
사람으로 어린 백성이 어버이처럼 믿고 따르든 이순신이 죽었습니다.
《선조실록》(31년 11월 27일)에는 사관(史官)이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죽은 순신이 산 왜놈들을 격파하였다.”(人皆謂死舜臣破生倭)
(《이충무공전서》권14 <하담자유고(荷潭子遺稿)>) 박유의 시에는 “공의 충렬
을 옛 사람에게서 찾아보나, 그 짝을 찾을 길 없고, 다만 ‘제갈무후’와 함
께 같은 수레에 태워 같이 달람직하다.”
그런데 친일반역자 무리들이 뻔데처럼 떠들고 다니는 요즘의 잣대로 보면 이
순신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바보 쪼다 아닙니까?
그 시대에서 봐도 좀 바보 쪼다 같은데!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부귀영화가 있었습니다.
기생과 어울려 놀고 축첩도 하고 얼마나 근사한 한량입니까!
조선의 이름 있는 이 중에는 첩의 자식도 많았고, 조선이 침탈 당하는 결정적
인 방아쇠를 당겨 동학농민 운동이 일어나게 한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도
첩의 자식입니다.
구한말 양반자제의 제식 군사훈련에서 몸종이 양반자제를 업고서는 훈련을 받
았다는 글을 읽고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내보다 잘난 놈 있으면 내치고 쫓아내고 모함해서 죽이고 조선이 망할 때까지
쭉우욱......
다 알다시피 이순신의 전 생애를 통해보면 그는 누구보다 청렴결백하고, 우
국충정 했으며, 철두철미했습니다.
그분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받쳐 세 번이나 지켜낸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컴퓨터와 휴대폰에서 끊임없이 두들겨되는 우리말과 글입니
다.
세종대왕과 성웅 이순신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말글을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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