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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번 : 경찰관에게폭행당하여불구가된남상택
글쓴이: 남택조 등록: 2002-08-25 22:04:33 조회: 1293
【 파출소 연행 회사원 집단폭행 경찰, 합의금주며 협박】
30대, 후유증 심각 직장도 그만둬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된 30대 회사원이 파출소안에서 경찰관 들로부터 집
단 폭행당한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후유증으로 직장마저 잃은 사실이 뒤
늦게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더구나 폭행에 가담한 경찰은 이같은 폭행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합
의금조로 거액의 돈을 주었으며 이를 공개할 경우 구속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등 사건을 은페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9일 남모씨는 지난 7월20일 화순 도곡파출소안에서 부소장인 신모경장 등 3명
의 파출소직원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씨는 같은날 밤8시께 파출소에서 2km 정도 떨어진 S식당에서 후배 4명과 술
을 마시다 주인과 시비가 붙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도곡파출소 소속 주모순경
의 안경을 깨뜨리는 등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남씨는 "연행직후 조사
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신경장, 주순경 , 정모순경 등 3명의 경찰관에 둘러싸
인채 경찰봉과 발, 주먹 등으로 머리와 가슴, 팔 등을 구타당해 늑골이 2개 부
러지는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남씨는 이후 몸이 회복되지 않아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화순과 광주의 병원 등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이화 관련 신경장 등은 처음에는 "폭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가 "난동
을 부리는 남씨를 제압하기 위해 팔로 목을 감고 넘어뜨리는 과정에서 이마 등
에 상처가 났다"고 말해 사실상 폭행을 일부 시인했다.
특히 신경장은 합의금조로 두 차례에 걸쳐 모두 900만원을 남씨에게 건네준 다
음 "이를 다시 문제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받아놓고 이를 어길 경우 
공무집행방해로 구속조치하겠다며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위협해온 것으로 드
러났다.
광남일보 1997년 10월 10일자 - 양근서 기자 -

【 경찰폭행 '4년 입막음' 들통나 】

전남 화순 남모씨 97년 연행 파출소서 집단 구타 당해
가해경찰 사건은폐 협의 현재 형사고발 조사중
사소한 술자리 시비로 연행돼 신장이 파열되고 척추가 부러질정도로 경찰에 폭
행 당하고도 가해 경찰의 사건은폐, 증인협박, 도청 등으로 피해구제를 못하
고 고통을 겪어온 한 시민이 4년여만에 증거를 찾아 가해경찰을 고발했다.
남모씨(37 전남 화순군)는 지난 97년 7월 친구들과 집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중 술집주인과 시비가 생겨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 과정에 경찰의 폭행으로 
신장이 파열되고 흉추 4곳에 이상이 생겨 30여곳의 병원을 돌며 진단서 발부
를 요청했다. 하지만 가해 경찰의 방해로 사건 발생 4년 후에야 단 2곳에서 
만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아 지난해 형사고발을 할 수 있었다.
97년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출동한 신모(38) 경장외 2면의 경찰이 싸움을 제
재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자 화가 난 남씨가 주모 순경
의 뺨을 때린 것이 화근, 결국 도곡파출소로 연행된 남씨는 신 경장과 경찰, 
자율방범대원들 7명에 둘러싸여 구타 당해 오른쪽 흉부를 심하게 다쳐 실신하
고 말았다.
하지만 폭력을 휘둘렀던 신모경장 외 2명의 경찰과 4명의 자율방범대원들은 사
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사건이 발생한 후 남씨와 술자리를 함께 한 친구들
을 불러 남모씨를 훈계하는 장면을 연출해 보이며 남씨가 파출소에 연행된 후 
난동을 부린 것처럼 꾸몄다.
사건 직후 고소하기 위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고통을 호소하는 남씨에
게 병원은 별다른 이상이 없다며 진단서 작성을 회피했다. 전남대학병원과 조
선대학병원에서는 재판 때마다 신체 감정상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제출했다.
오히려 가해경찰들은 평소 남씨가 난폭운전을 해 생긴 상처라고 둘러댔다. 이
에 98년부터 세번이나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남씨가 폭행당했다는 의견을 뒷
받침해줄 진단서가 없어서 매번 소송은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남씨는 지난 98년 8월 갈비뼈 한 개만 부러졌다는 진단으로 합의금 6백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계속된 고통에 지난해 9월 다시 찾은 한 병원에서 '회복
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씨는 결국 신모 경장을 비롯해 7명의 가해자들을 형사 고소했다.
그간 진단서 발부를 거부하거나 이상이 없다고 판정한 병원들은 이와 같은 결
과에 "당시 검사결과를 판독한 의사의 소관"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남씨는 가해경찰이 증인들에게 증언 거부 협박을, 집과 가족들의 전화,핸드폰 
도청은 물론 미행까지 끈질긴 방해를 하고 있다며 호소했다. 실제 남씨와 같
이 술자리를 같이 했던 장모(35 남)시와 홍모(34 남)씨도 " 전화 등에서 도청
의 흔적이 있다"고 말해?ㅆ다. 하지만 가해경찰의 폭력여부에 대해서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말했기 때문에 더이상 할 말이 없다" 며 기자의 전화를 피했다.
현재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광주경찰청 조사계 김삼수 경위는 "수사가 진행중
이라 뭐라 말할 수 엇다"며 "경찰신분과 관계없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 규
정대로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씨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5천여만원을 들였다고 신 경장이 얘기하는 것
을 들었다"며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야 할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고 그 사건마
저 은폐하려 하고 있으니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현재 형사고발한 상태이며 사건 증거가 인멸돼 재수사를 진행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 마무리짓기로 한 수사가 한달 더 연장된 상태. 사건 당사자인 
신모 경장은 지난해 3월까지 곡성 죽곡파출소에서 근무했으나 현재 병가신청
을 내고 행방불명 상태이다.
시민의 신문 2002년 2월 4일 사회면 - 장현주 기자 -

【 전남 화순 남씨 사건 법정으로 】
"가해경찰 저벌 될 때까지 싸울 것"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해 5년째 억울함을 호소하던 남 모씨 사건이 법정으로 옮
겨갔다.
지난 97년 술자리 시비 끝에 경찰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지금까지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남 모씨는 올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고 시민단체들을 
쫓아 하소연 한 끝에 비로소 변호사를 만나 특수부 715호에 이 사건을 접수했
다.
그간 남 씨는 "가해 경찰이 자신뿐만 아니라 친,인척들에게도 협박과 회유를 
강요하고 있다"며 "폭행을 휘둘렀던 경찰 7명 전원이 처벌을 받지 않는 이상 
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왔었다.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남 씨를 대신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형 남택
조 씨는 "폭행을 당한 후 동생이 병원을 찾아 고통을 호소했으나 그때마다 병
원에서는 사소한 진단밖에 끊어주지 않았다. 이때부터 가해 경찰들이 조직적으
로 사건을 은폐하려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병원을 옮기는 곳마다 아픈 부위
가 다르게 나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결국현재 동생 남 씨는 
한 병원으로부터 '회복 불능'이라는 말은 들은 상태다.
덧붙여 남택조 씨는 "우리 가족들과 더불어 폭행당한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 핸
드폰,집 전화번호에서 도청의 흔적이 있다. 가해 경찰들의 주장처럼 자신들이 
잘 못이 없다면 왜 이런 일을 벌이겠냐"
고 반문했다 
한편 남 씨의 진정서를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본격 적인 조사는 한 달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하고 있으며 시민단체인 전국공권력피해자연맹
은 "남 시를 적극 도와 법원에서 그의 억울함을 밝혀낼 것"이라고 밝히고 있
다.
시민운동연합신문 2002년 5월 13일 ~ 5월 19일 - 홍정기 기자 - 






【 진정서 】

진정인 : 남택조 ( 남상택의 형) 
전남 화순군 화순읍 광덕리 15-11번지 
피해자 : 남 상 택 016-374-9492, 017-604-4840 
제보자 : 형: 남택조 011-790- 6405 
피 진정인 : 1. 신강식 ( 화순 도곡 파출소 경장 ) 
2. 주용주 ( 위 상동 ) 
3. 정수영 ( 위 상동 ) 
4. 문광근 ( 방범대원 ) 
5. 백종록 ( 방범대원 ) 
6. 양동삼 ( 위 상동 ) 
7. 김대환 ( 위 상동 ) 


사 건 개 요 
1. 1997년 7월 20일 일요일 오후 8시 30분경 전남화순군 도곡면 천암리 숲속
의 회관에서 후배, 장명식, 홍을식, 홍기승과 함께 술을 4병쯤마시던 중 장명
식이 도의원 집에 안주가 이모양이냐 하면서 주전자를 땅 바닦에 던졌으며, 이
때 업주 측 문광근과 문병도 여러명이 저희 4명을 때리면서 문병도가 맥주병
을 깨면서 목에 드리 대고 죽여버린다고 2회 이상 외쳤습니다. 
이때 1km쯤 되는 화순도곡 파출소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관들은 이 상황을 보
고 방치하고 있기에, 직무유기를 하고 있어 제가 경찰관 빰 을 한데 때렸습니
다.경찰관과  업주측은 친척 사이엇습니다 이후 저는 곧바로 도곡 파출소에 연
행되었고, 파출소에 들어서자 마자 신강식 경장이 저의 목을 휘감고 2회 머리
를 가격했습니다. 곧바로 주용주(순경) 정수영(순경) 문광근, 백종록, 양동
삼, 김대환 4명은 방범대원 7명에게 경찰봉으로 무차별 집단 구타가 시작되었
습니다. 

2. 오른쪽 흉부쪽을 심하게 구타당하여 기절하였고 또 오른쪽 흉부를 구타 당
하여 또 기절했으며, 저의 상의 옷을 벗겨서 귀와 이마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
아내고 탁자를 한으로 치우고, 구타당해 기절해 누워있는 저를 의자에 앉혀 놓
고 사건을 조작 은패 하려고 신강식이 김영기 문광주 등을 데려와 보는 앞에 
저를 훈계하는 것처럼 목을 3회치면서 사건 은페 목적으로 거짓 연극을 하였습
니다. 정현주씨가 경찰관 부탁으로 파출소에 들어와 저를 밖의로 데리고 나간 
후 맥주한잔 마시면서 경찰관과 일어난 일이니 좋게 무마하자고 달했으나 경찰
관들에 폭행 당했으니 병원에 가야 한다고 선배의 제의를 거절하였습니다. 화
순 중앙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3. 갈비뼈 7번 1개 부러진 것으로 진단이 나왔고, 저와 후배3명과 숲속의 회관
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경찰관 3명과 방범대원 4명 민간인 2명은 숲속의 회
관 근처 고등바우 식당에서 근무시간인데 회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
건시간이 10시라고 주장합니다. 주위사람들은 왜 사건시간이 2시간 이상 차이
가 나는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1997년 10월경 화순경찰서 순경 3명이 찾아
와 화순경찰 서장의지시다. 합의를 봐라 합의를 보지 않으면 공무집행 방해로 
구속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600백만원 수표를 받고 합의했습니
다. 

4. 그런데 몸이 계속 아프고 해서 전남병원 30군데 서울병원 10군데 4년 넘게 
돌아 다녀도 진단을 내주지 않습니다. 합의를 보고 계속 몸이 아프고 병원에
서 주는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에서 대포 터지는 소리가 나며 움직이면 뼈들
이 더붙어 으드득 소리가 나며 식은땀을 흘리며 밤잠을 못자고 악몽에 시달립
니다. 2001년 10월 전까지 40군데 병원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했으나, 병원원장
들은 다친 부분에 대해서 숨기고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기뇨섭 흉부외과에서 
원장이 귀찮게 왜 돌아다니며 치료를 받느냐 봐라 5분도 안돼서 전화가 오지 
않느냐 짜증을 냈습니다. 화순보건소는 법원의 요청이 있을 때 진실을 이야기
한다고 했습니다. 

5. 2001년 10월경 진단이 나왔는데 이빨 1개가 지금까지 흔들림. 뇌좌상 Y자
로 15cm금이감. 경추 5-6번 척추 12번 1번 요추 4-5번 신장 2개파열 1개는 완
치 1개는 피가 세고 있음. 갈비뼈 7개 부러짐. 7번을 진단을 내주고 서울병원 
10군데 전남30군데와 짜고 숨김. 지금까지 치료비가 1억 들어가 신장수술을 해
야 하고 척추 평생 물리치료를 해야 합니다. 병원 40군데에 X레이 필름이 있는
데 제가 가지고 가면 이상이 없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가면 이야기를 
합니다. 

6. 증인들이나 참고인들을 찾아가 만나는 도중 커피나 술에다 다이옥신 20회 
들어 옵니다. 장명식 후배는 커피를 바꾸어 마시자고 하면 커피를 길바닦에 버
립니다. 광주지검에서 머리카락 백개 뽑아서 다이옥신 판명(찰영) 국과수로 넘
어가 다이옥신 판명되었습니다. 또 이들은 80cm 쇠꼬챙이를 던지고 타이어를 
칼로 찢어놓고 브레이크 줄을 끝어 놓고. 도청을 하며. CCTV를 설치해 놓고 5
년간 저를 감시하며 오늘 이 시간까지 제가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7. 보훈병원에서 통근치료 하며 물리치료하는데 40세로 보이는 여자 둘이 따라
와서 물리 치료사에게 허리를 더 세게 눌러라, 죽의 면 쥐도 새도 모르게 시체
를 태워버린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남에 병원들을 계속 따라 다녔으며, 사진
을 보면(가해자들 가족사진)알수 있습니다. 화순 카니발 노래방 종업원 정쌍순
이 처음에는 저를 죽이고 싶었다 오해가 풀려 지금은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고 했습니다. 

고소관련일자 
97년 7월 20일 : 일요일 오후 8시 30분경 화순 도곡면 파출소에서 집단구타 당
함. 
97년 11월 광주지검 경찰관 3명 고소 
사건번호 형제 53216호 (양동호 부장 검사실) 
97년 12월 경찰청 조사계 김일남경위 조사 1회 
대질 신문 없이 관련자 혐의사실 부인, 무혐의 송치 
사건번호 97형제 56708호 공무집행 방해죄로 가해자측 고소해옴. 신강식이 고
소하라 지시했음 
98년 1월 8일 9시 30분 조사. 203호 검사실 (박근범) 
공무집행방해로 집행유해2년징역10월 선고받음 주용주 순경 밤 1회 가격외 나
머지 사실은 부인 
2차 조사후 대질신문. 문광근. 정현주. 김영기 
주용주. 정수영. 김대환. 장명식. 가담하지 않음 2명 
등과 사실 확인 했으나 처음에는 이들이 일방적으로 저에게 파출소에서 난동
을 부렸다고 몰아부처 저는 관련사실을 부인하였음. 
98년 3월 19일 관련고소 무혐의처리 확인 (박근범 검사실) 
98년 3월 고검에 항고 
98년 5월 23일 신청인 항고 기각(혐의내용 인정 자료없음)조사가 없었음. 
98년 대검찰청 재항고 
98년 9월 22일 재 항고 기각 (혐의내용 원청 처분 의견 수렴) 조사가 없었음. 
2001년 7월 15일 청와대 진정을 넣었는데 대검찰청 서영재 부장검사 안타까운 
일이나 사건기록이 일체 없다 재정 신청을 하라 하여 곧바로 재정신청을 어렵
게(힘들게) 재정신청을 하였습니다. 
98년 1월 8일 9박근범) 조사받을 받다 화장실 갔다오다 들었는데 구속시키자 
구속시키면 아픈부위 들통난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박근범)검사 신강식에게 합의봐라 하고 저에게 합의가 안되면 
다시 이야기하라 했습니다. 
검사실에서 합의를 보라한다. 신강식에게 전화를 하니 천만원을 더줄 수 있
다. 두암동 다방에서 만나자고 하더니 일주일을 넘겼습니다. 곡성 죽고 파출소
에 찾아가니 파출소 문을 열어주지 않고 담배만 2대를 피웠습니다. 한참 후 문
을 열고 나오더니 야 또 때리면 고소할래 말하면서 너희 선배들도 때렸습니
다. 
이 사건을 막는데 오천만원 들어갔다. 검찰청 쪽을 보고 오줌도 안 싼다. 사건
당시 너를 때리고 무척 방황했다. 화순 경찰서에서 수습을 했다, 이야기했습니
다. 
2001년 10월경 진단서와 증인 진술서 등이 준비되어 광주지검에 608호(박용
주) 검사실에 배당되었습니다. 
2001년 11월 21일 - 12월 21일까지 수사해 올려라 광주경찰청 조사과 김상수 
경위에게 내려보냈습니다. 조사과에서 저를 부르더니 " 어떻게 때리 더냐고 묻
고 병원 의사들 빼자 공과 명예가 있다 면허가 취소된다, 도청 다이옥신 등 
다 빼고 폭력부분만 수사를 하자, 개새끼 지가 수사를 하지 내려보낸 거야 " 
했습니다. 
김상수 경위가 증인들을 보내 달라고 하여 보내주니 왜 증인을 서냐, 서지 말
라 강요했다고 합니다. 녹취록 증인을 저에게 김상수 경위는 너의 편이 아니
다 죽이고 싶다고 했습니다. 11월부터 한달 연기 또 연기 또 연기하다 2002년 
2월 8일경 608호 검사실로 넘어 갔습니다. 2002년 2월 9일 10시 광주지검 출
두 무혐의 처리되어 올라왔는데 왜 무혐의 처리가 되었겠냐. 생각을 해봐라, 
민간인 4명을 추가로 지금 와서 고소를 했는데 2명은 무고죄가 되지 않느냐. 
내가 시간을 30분 줄 테니 11시까지 생각을 해보고 그래도 7명을 고소하겠다
면 11시까지 나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달라, 그래도 변함이 없으면 무고죄에 걸
리던 말던 나는 수사를 하겠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지금 봐 줄려고 했는데 무고죄가 들어가면 용서할 수
가 없다. 그래도 저는 7명에 대해서 취소 못하고 그대로 갈렵 니다. 
녹취록을 보여주고 종록이 하고 동삼이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물으니 아무 말
이 없었다. 카메라. CCTV. 도청하며 참고인들 진술 못하게 협박하고 폭력을 행
사 한사람이 문광근이요 이야기를 하니 구정 세고 다시 부르겠다. 젊은 사람
이 안 맞으면 고소를 계속할 수가 없다. 항고. 재항고 또 고소를 했는데. 안 
맞았고 안 아프면 계속 고소를 할 수 없다. 
독직폭행이다. 이쯤에서 그만 끝내는게 어떠냐 물었습니다. 
2002년 2월 25일 10시 608호 출두하여 관련서류 및 증인 녹취록 등을 재출하면
서 다시 한번 관련자들 조사하여 엄벌하여 주십시오. 피해자 진술조서를 받은 
후 서명 날인하였습니다. 정계장은 수사를 확실하게 한다. 
전수사 기록을 검토한다. 참고인과 녹취록 등에 관하여 오후에 더 꼼곰히 수사
하려고 한다. 1시 30분까지 다시 오라 하여 조사 받으러 갔는데 느닷없이 피의
자 신문 조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무고혐의로 긴급구속 할 수 있다면서 조사
를 받았습니다. 무고죄 증거를 대라 하니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증거물 진단
서 등 녹취록 저의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였습니다. 담당
검사는 기회를 주었는데 계속 7명을 처벌해달라 한다며 더 이상 나를 원망하
지 말라면서 무고혐의로 긴급 구속한다하여 동년 2월 25일 오후 3시경 수갑을 
차고 입감 된 후 동부경찰서로 18시경 의로 입감을 당하였습니다.피가 게속세
고  춥고 고통이 심햇습니다 26일 아침 9시경 동부서를 나와 검찰청에서 구속 
적부심 심사를 받는다하여 10시경부터 대기실에서 오후 16시경가지 기다리다 
608호 검사실로 올라갔습니다. 변호사님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검사님에게 민간인 누구 누구를 무고를 했습니까요 ? 라고 물었더니 일
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변호사님과 신강식 외 7명중 2명을 고소취하 하기로 하고 5명을 형사고
발 하는 것으로 하고 검사실에 이야기했는데 안 된다 608호 박용주검사는 사전
에 고소취하서 초안을 잡아놓고 전원을 고소 취하하라 언성을놓여 . 협박을 햇
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고죄로 구속시 시키겠다면서 구속영장 신청서라면서 손으로자
꾸  가르켰습니다. 검사님 만약 7명을 구속하고 무고죄 부분은 제가 받는다면 
어떻습니까요 게속해서 물어보자  무고죄로 구속시킬 수밖에 없다면서 7명 전
원의 폭력부분에 대하여 고소를 취하하고 (단, 민사소송에만 7명 전원 다 한
다) 면서 자필로 작성하여 서명 날인 후 제출하라 하였습니다 수갑을 체위 놓
고서 신경질나. 억지로 서명하자 
나중에 딴 소리 하기 없기다 라고 하면서 검찰 강압에 의해 고소취하를 해야
만 했습니다. 5년동안 가해자 7명과 대질 신문한번하지 안고 가해자들만 보호
해주고 잇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7명전윈 가해자다 1명이라도 무고가된다 고 대
들면 면포크레인으로 파버린다 맞은 것 보다 5년동안 이들의 불법행위 가 더무
섭다고 이야기합니다  공권력피해자연 맹에 진정합니다

정규표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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