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별 노조·'저항'전략 한계 직면
노조 노동자의 바다에 떠 있는 섬
한겨레
한국의 노조는 노동자의 거대한 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2%, 공무원을 제외한 조직 대상 노동자 1310
만2천여명 중 노조원은 156만8723명뿐이다. 노조 조직률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을 계기로 89년말 19.8%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하락해 12%를 맴돌고 있다. 이
는 덴마크의 노조조직률 81%는 물론 영국 29%, 일본 20%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
이다.
또, 500명 이상 사업장의 대규모 노조 419곳의 조합원이 115만3천여명으로 전
체의 73.5%이고 100~499명 사업장은 29만5천여명(18.8%) 이며, 99명 이하 사업
장은 11만9천여명(7.7%)뿐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주류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부연구위원은 “현재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자들이 아니
라 노조로 조직화된 소수 노동자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라며 “다수의
중소기업과 급증하고 있는 서비스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외됐다”고 진단
한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 찾는다. 세계적으로 완전한 기업
별 노조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산업별 노조와 사용자
단체가 단체협상을 통해 노동조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그 산업 전체의
노동자에게 적용한다. 비정규직은 물론 실업자도 노조에서 소외되지 않으므로
단체협약 적용률이 50~95%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적용률은 11% 정도다.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기업에 있다. 60년대부터 수출지향, 재벌 중심의 경
제 정책을 계속해온 정부와 권위주의적 관리에 익숙한 사용자들은 노동운동의
정치화를 우려해 노조를 기업별로 묶어두려는 통제정책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사회 문제에 대한 노동자의 파업은 노동법상 불법이다. 유럽에서 실업자 재훈
련, 의무교육, 사회보장 확대 등을 요구하며 합법 파업을 벌이는 풍경과는 대
조적이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함을 알면서도 노동운동은 이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했고,
이는 우리 노사관계의 특수성으로 이어졌다. 노조들은 경영이나 정책 참여통로
가 막혀 있는 상태에서 임금인상 등 단기이익 추구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해마다 임투에서 높은 임금 인상을 이루려면 노조는 강력한 전투성을 발휘해
야 하고, 지도부는 구속과 해고의 표적이 된다.
또 기업별 노조는 전체 노동자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절실하게 인식하기 어
려워, 노동자들 내부에 인식의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김훈 노사정위원회 수
석전문위원은 “대규모 사업장의 힘 있는 노조들이 전투력을 발휘해 임금을 인
상하면 사용자는 올라간 비용 만큼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에게서 보충하므로,
대기업 노동자의 이익이 영세노동자들의 희생을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정규
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도 안되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
직이 노동자의 52%가 넘었지만 정규직 위주의 노동운동은 이들을 위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 현재 노동운동은 장기적 대안 없이 `정부와 기업에 무조건 반대’하는 수
동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특히 저항 위주의 전
략은 노동운동이 기업의 변화에 전략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할 기회를 스스로 차
단하기도 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양대 노총이 장기적인 전략을 만들지
못하고 그때그때 현안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고, 비생산적인 노선 대립에 휩쓸
리기도 한다. 특히 민주노총이 주5일근무를 먼저 제기하고도 논의에 참여하지
않다가 이제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입장은 다르지만 민주노총의 제안이 주목할 만 했는데 요
즘은 읽을 게 없다. 정책 역량이 우려할 수준으로 저하되고 있다”고 비판한
다.
이에 대해 손낙구 민주노총 교선실장은 “항상 데모만 하냐는 비난을 잘 알고
있으며, 사회복지 강화 등 능동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면
서도 “롯데호텔, 대우자동차 공권력 투입 등 재계나 정부의 노동자 탄압이 심
해 한정된 재원과 인원을 투쟁 위주로 운영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김훈 수석전문위원은 “사회협약 체결을 민주노총이 먼저 요구하고도 정리해고
에 합의했다고 집행부를 교체하고 노사정위를 탈퇴해 버리는 등 최근 노동운동
은 시야가 좁았다”며 “산업의 급격한 변화나 구조조정 등 중앙 차원에서 노
사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할 문제가 늘고 있어, 노조 중앙조직이 조직과 정
책 역량을 강화해 국가 정책의 책임있는 주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
다”고 제안했다.
박민희 기자
02-10-2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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