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19] 의사 '중심' 의료 개혁의 참뜻  

회원 최용준

의약분업·의사파업 사태의 전개 과정 속에서 의료계가 보이고 있는 가장 긍정
적인 변화는 무엇보다도 한국 의료 현실에 대한 진지한 탐구 자세의 형성에 있
다. 물론 의료계뿐 아니라 여론의 일부에서는 사실 여부에 대한 진지한 확인 
없이 우리 나라 의료 현실에 대한 곡해와 편견 속에서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
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9월 이후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의료계에서 
이따금씩 표명되는 의료 개혁 주장은 "왜 조금 더 그런 주장과 실천이 빨리 나
오지 않았나" 아쉬움을 남길 만큼 큰 인식의 변화라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의료 현실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희망적

이러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간명하게 표현된 것이 '의료 개혁'이다. 물론 의
료 개혁을 외친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미 퇴임 직후 부산 앞바다에 YS를 찍
은 시민들의 손가락을 동동 띄워 놓았던 그런 김영삼 정권 시기에도 정부가 
1994년「의료보장 개혁위원회」1997년「의료개혁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련의 
정책 개발 작업을 벌인 바 있다. 지금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의료단체 대표자회
의는 말할 것도 없고 의료계가 '적'으로 몰아붙이는 몇몇 시민 단체들중에서
는 이미 '의료개혁' 자체를 활동 목적으로 표방하거나 아예 '의료개혁 시민연
합'처럼 이름에 의료개혁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단체도 있다. 그런데 이제 
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지 얼마 안되는 의사들의 '의료 개혁'의 주장이 각별
할까?

임상의사, 즉 사람의 건강과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도움
을 주는 의사들은 그들이 행하는 노동의 성격상 개별자로서 환자에 대한 서비
스, 개별 환자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임상의사에게 의
료는 곧 진료실 안에서 일어나는 제반 과정이며 그것이 임상의사가 보는 의료
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런 임상의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의료계가 이제 자
신의 의료행위가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단지 진료실 안의 환경과 
관행을 바꾸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뼈 속 깊이 깨닫게 된 것이
다. 그리고 어떤 방향이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과 주장을 진료실의 범위
―정당한 진료에 대한 보험 삭감과 그에 대한 불만―를 넘어서, 의약분업―실
거래가에 대한 불안심리와 임의조제·대체조제에 대한 불만―을 넘어서 나아가
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큰 변화가 이번 사태가 어떻게 종결되든 향후 의료 현
실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각별하게 되어 버린 의료계의 의료 개혁 주장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 의료 개혁 주장이 적지 않은 의사들에 의해 의사 '중
심'의 의료 개혁으로 요약되고 있다. 그냥 의료 개혁이 아니라 의사 '중심'의 
의료 개혁. 우리는 이 말 속에 긍정성과 위험성이 함께 있다고 본다. 의사 '중
심'의 의료 개혁이라는 말이 의료계 '안'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면, 의사
들이 진료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료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고 진료실 안의 
의료를 규정하는 의료 제도와 의료 정책에 좀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해
야 한다는 말로 풀이된다. 이 점은 거꾸로 그간 의료계가, 가까이는 지난 정
권 때부터 크게 두 차례의 '개혁'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
도 현실에서 주어지는 개혁의 계기가 있었음에도 그저 나몰라라 하고 단지 '수
가 인상' 주장만을 되풀이했던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포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차이를 간과하고 여과 없이 의료계 '밖'에서까지 의사 '중심'의 
의료 개혁을 외치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한 마디로 넌센
스다. 더욱이 최근 복지부와의 협상에서 의료계가 보여준 실망스러운 태도―의
료 현실이나 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는 긍정적 주장
은 제쳐둔 채 경찰청장 사과·복지부 실무자 문책·의료법 규정에 대한 해석 문
제 등등을 첫 번째 의제로 내세우는―는 그저 낯두꺼울 뿐이다. 협상에서 의료
계가 꺼낸 조건 따위는 사실 의료계의 '자존심'을 위한 것인데, 그것이 협상에
서의 기세 싸움인지는 모르겠으나 대관절 그 자존심이 뭐관대 그 얘기로 사나
흘을 허비하느냐는 항변이 설득력 있을 만하다. 이런 식으로 '정부를 상대로' 
무엇을 얻어낸다 해도 '국민을 상대로' 얼마나 더 큰 것을 잃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앞서기만 한다. 팝 가수 ABBA의「Waterloo」그 한 소절이 생각나는 대
목이다. "Waterloo, couldn't escape if I wanted to … how I could ever 
refuse I feel like I win when I lose"


의사 '중심' 의료 개혁의 긍정성과 위험성 

이 점에서 그래도 젊은 의사들,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 일각에서 "국민
을 위한, 국민과 함께 하는 의료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의사들이 진료실 안팎으로 의료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앞장서고 문제 해
결을 위한 노력에 발벗고 나서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러한 자
기 다짐과 주인 의식이 지나쳐 자신의 주장과 권리만을 고집하고 독단적 태도
로 문제 해결에 임하는 것은 반성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다. 이 점에서 어렵사
리 비공소위가 환영할 만한 9월 7일 성명과 두 차례에 걸친 대정부 요구안을 
내었음에도 실제 협상 과정에서는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고 한 달이 되어 가
는 시점에서조차 태도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은 그나마 의료계에 걸었던 
국민들의 기대감을 무위로 만들고 있다. 의사 '중심' 의료 개혁―그저 구호로
만 외치기 전에 우리 의사들에게 던져주는 그 참 뜻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 볼 
때다. 안에서 새는 쪽박은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P.S.1. 본 칼럼은 필자가 희망연대 신문 [Rapport] 3호에 기고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P.S.2. 본 칼럼은 민중의료연합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