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24] 보험재정 파탄은 노동자■민중의 문제가 아니다. 
- 문제인식이 '재정'에 고착되어 있는 한, 현 상황에 대한 민중적 대안은 없
다 - 

2001년 4월 29일
회원 김범수

건강보험 재정 파탄 문제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한 쪽에서는 
의사들의 배만 불린 무리한 수가 인상이 문제였다면서 불합리하게 인상된 수가
의 인하를 요구하고 있고, 한 쪽에서는 정부의 정책 실패(의약분업과 의료보험
통합)와 시민단체들의 어설픈 정책 개입으로 인해 재정이 파탄난 것이라고 주
장하면서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책임 공방의 승리자가 과연 누가 될 
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누가 승리자가 되든 서로를 향해 던져대던 돌을 
맞는 이는 결국 노동자■민중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런 불길한 예감이 드는 이유는 현재의 책임 공방의 양상이 문제의 본질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하는 '헛 다리 짚기'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서로
를 향해 돌을 던져대는 양자 모두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하
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몫을 뺏기지 않기 위해 수구적 발언과 행동을 서슴
치 않는 이들에 대한 언급은 일단 제쳐놓자. 이들 집단의 수구성과 반동성은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에 운동적으로 미치는 해악은 오히려 크지 않기 때문이
다. 

문제는 현 상황에 대해 '재정파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식의 접
근을 하고 있는 운동진영 내에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노동자■민중의 입
장에서 볼 때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노동자■민중이 심각하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보험재정 파탄'이 아니다. 어찌 보면 재정 파탄은 현 
체제의 항구적 안정을 갈구하는 정권과 자본, 그리고 관리주의적 운동론에 경
도된 일부 시민단체의 문제일 뿐이다. 노동자■민중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
부와 자본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경제적 비용 부담의 전가'와 '건강을 돌볼 
수 있는 기회와 권리의 박탈'이다. 분명 현상은 '재정'을 매개로 표출되고 있
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인식이 '재정'에 고착되어 있다면, 보험재정 파탄 문제
는 어떻게든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민중건강 파탄이라는 문제 
해결의 전망은 요원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현 체제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변혁
성이 거세된 점진적 개혁주의 세력의 영향으로 인해 마치 전자가 운동의 이유
인 양 오도되는 경향이 최근 확산되고 있다. 수가가 인하되고, 정부가 국고지
원을 더 하고, 노동자■민중은 보험료를 더 내서 결과적으로 보험재정이 안정
화되었을 때, 노동자■민중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무엇인가? 고작해야 보험료 
인상의 대가로 정부가 내어놓을 간에 기별도 안 가는 보험혜택의 확대 정도가 
아닌가? 현재와 같은 구도대로라면 정부가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그 이상 있
겠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보험재정 안정화가 민중건강권 쟁취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노동자■민중의 이해와는 별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흡사 
노동자■민중의 요구인 양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필자의 말을 보험혜택
의 확대는 의미가 없는 것이며, 보험재정이 파탄나도록 내버려둬야 된다는 의
미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 나는 단지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무엇이 문
제이며, 운동진영의 과제와 요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상기시키고자 할 따
름이다. 

열쇠는 의료의 공공성이다. 물론 의료의 공공성 강화는 오래 전부터 언급되었
던 주장일 뿐 아니라, 점진적 개혁주의자들 역시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
고 있다. 그러나 '공공의료 강화'라는 명제는 오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운동진영의 실천적인 과제로 설정되었던 적이 없었으며, 단지 모호한 이
념적 지향으로만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다. '공공의료 강화'에 공감한다는 사람
들조차도 '현 정세에서 공공의료 강화 주장은 추상적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
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라는 것이 그 반증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의료의 공공
성 강화는 숱하게 열거되는 많은 운동 과제들 중의 하나, 그나마도 실천적 우
선순위가 매우 떨어지는 장식용 수준에 불과했다. 이제 의료의 공공성 강화는 
보건의료운동진영의 실천적인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며, 다른 여타 과제들
은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맥락에서 재구성되어 다시 제출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의료의 공공성 강화가 전제되지 않은 그 어떤 대책도 노동자■민중의 입
장에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점진적 개혁주의자들이 열거하고 있는 개혁과제들의 조합이 노동자■민중의 문
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한 오판이다. 일례로 이들이 주장하
고 있는 대부분의 개혁과제들(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대체하는 보수지불제도 도
입, 주치의 제도 도입, 일차의료 강화, 심사평가의 전문성 제고, 보건의료 관
련 기관들의 효율성 제고 등)은 이미 미국에서 매우 정교한 형태로 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보건의료부문의 문제점들이 이 같은 조치들을 통해 해
결이 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자본의 통제력
이 더욱 커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의료인과 환자의 불만과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접근성은 개선될 여지를 보이고 있
지 않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혁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점진
적인 개혁과제조차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보건의료
운동진영의 보편적 가치로 여겨졌던 일차의료조차도 '어떤' 일차의료냐에 따라
서 노동자■민중에게 이로울 수도 있고, 도리어 해로울 수도 있다(미국에서는 
Gatekeeper 역할 강화를 통한 일차의료 강화가 오히려 노동자■민중에게 해로
운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보수지불제도 개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
용된다. 유럽의 경우와는 달리 미국에서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인두제는 보건의
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이해와는 무관할 뿐 아니라, 심각한 경우에는 역행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포괄수가제는 보건의료의 합
리적 체질 개선에는 도움이 될 지는 몰라도 노동자■민중의 이해와는 별반 상
관이 없어 보이며, 총액계약제나 예산제 역시 재정절감책 혹은 보건의료체계
의 효율성 제고 방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보건의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통제권 강화와는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의료의 공공성과 보편적 접근성이 보
장되지 않는 채 시행되는 총액계약제나 예산제는 노동자■민중의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더욱 제약할 수 있다. 결국 개별 개혁과제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것의 성격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노동자■민중에게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미시적인 개별 사안에만 
시선을 집중한다면, 애초의 순진한 의도와는 달리 노동자■민중에게 해악만을 
끼치게 될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어떤'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의료의 공공성'이다. 따라서 의료
의 공공성 혹은 공공의료 강화는 다른 여타 과제들과 동급으로 나열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운동의 출발점이며,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다 좋은 말
인데, 그럼 지금 당장 뭘 하자는 말이냐?"라는 식의 질문을 필자 개인에게 하
지 말기 바란다. "그런 주장을 하는 네가 해답을 만들어서 내놔 봐라"는 식의 
방관자적이고 수동적인 자세가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담론의 운동적 물화
(物化)를 가로막았던 가장 큰 요인이었다. 

'수가 인하'가 아니라 '공공의료기관 이용시 본인부담금의 획기적 경감', '공
공의료기관의 양적, 질적 확충', '도시형 보건지소(주민건강센터) 신설', '민
간위탁된 국공립 의료기관 환수조치', '국공립 3차의료기관의 공익성 강화' 등
이 최우선적인 요구로 제기될 수는 없었는지? 선전 및 홍보 내용도 "의사들 때
문에 재정이 파탄났습니다"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받
기 위해서는 공공의료를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가 될 수는 없었는지? "재정이 
파탄 상태인데 이런 주장이 적절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앞서 누차 지적한 것
처럼 문제의 본질을 여전히 파악하고 못하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점진적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의 결정체인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모형
과 '공공의료를 중심으로 한 의료체계의 전면적 개편' 이 둘은 이념적으로 전
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으며, 운동적 귀결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둘
은 "이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합리성을 제고시킬 것인가? 아니면 이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할 것인가?" 그리고 "현행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비
효율성'으로 볼 것인가? '반민중성'으로 볼 것인가?"라는 점에서 갈등 관계일 
수밖에 없다. 분명한 점은 점진적 개혁주의자들은 '민중건강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변혁적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민중들로 
하여금 현 제도를 수긍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현 제도를 획기적으로 뛰어넘는 
민중적 보건의료체계를 상상하지 못 하도록 막고 서 있는 장벽이다. 이들은 노
동자■민중들에게 자신들이 제시하는 현실과 미래만을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점진적 개혁주의자들이 가지는 관리주의적 운동론의 가장 큰 특징이
자, 가장 결정적인 폐해이다. 

물론 현실의 투쟁은 피■아가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
며, 이념과 장기적 지향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차
이가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지금 어디
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지조차 모른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채 주위에서 하자는 대로, 가자는 대로 따라
가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내가 정말로 문제로 받아
들여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
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