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2] 다시 문제는 의료보험이다
- 의사들의 집단 행동에 즈음하여 -
                                                  2000. 2. 12.
                                                  도 영 경


의사들이 심상치 않다. 작년 11월 30일의 집회와 오는 17일로 예정된 여의도광
장 집회에서 보듯, 해를 넘기고도 그 움직임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대규모 집회 자체는 화산의 간헐적인 폭발 정도로 생각해 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화산이 당분간은 지속적으로, 상황에 따라선 지금보
다 훨씬 더 큰 규모로 폭발할 가능성을 지닌 활화산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의사 사회 내부의 움직임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무능하고 약한 
의협을 비판하며 강한 의협으로의 개혁을 촉구하는 새로운 의사 단체가 결성되
어 많은 의사들의 지지를 모았고, 급기야 1월 8일 열린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
서는 회장 불신임안이 가결되는 사태까지 있었다. 그 결과 의권쟁취투쟁위가 
결성되어 강경한 어조로 정부에 요구 조건을 제시하였다. 명동성당 등 서울 도
심에서 벌어진 '동네의원 살리기' 시위 사진이나 의과대학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제목의 광고가 신문에 실려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을 의사들이 먼저 능동적으로 창출한 것은 아니다. 당연
히 의료제도 전반을 둘러싼 지각의 변동이 본질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선 
의약분업 실시를 앞두고 시행된 약가 인하와 그에 따른 수입 감소가 직접적인 
요인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태가 진전되다 보니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음이 밝혀졌다. 의약분업 논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갑작스런 수
입 감소에 대한 불만과 약사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 같은 감정적이고 즉자적인 
반응이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의사들도 보험 재정과 같은 구조
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 의사들의 요구에는 의료보험의 내실
화, 국고지원 약속 이행 등이 포함되어 있고 투쟁의 대상도 의약분업 주도세력
이나 약사가 아니라 정부에 맞춰지고 있다.

그것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경로였다. 의약분업은 원래 두 마리 토끼를 동시
에 잡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그 하나는 진료와 투약이라는 행위와 관련하
여, 공급자간(의사-약사)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공급자-수요자의 행태를 바로 
잡는다는 것이다. 약의 오남용, 임의조제, 항생제 내성, 의약품 분류 등이 이
와 관련한 문제들이다. 두 번째는 약가-보험재정-진료비라는 재정 기전의 정상
화이다. 의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 약가 인하분의 수가 반영 조치 등이 이에 
관련되는 것이다. 우리 보건의료 환경을 고려할 때 이 두 가지는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의약분업에 관한 의사들의 초기 반응
도 그 두 가지 문제 각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약사의 임의조제에 대한 격한 
반감이 첫 번째에 관한 것이었다면 갑작스런 수입 감소에 대한 불만이 두 번째
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개원 의사의 처지에서는 그 두 가지 문제가 하나로 
합쳐진다. 먼저 일차의료기관, 즉 동네의원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우
리 나라에서, 약사의 임의조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다수 약국을 
여전히 경쟁 관계로 두게 될 것이므로 동네의원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이
게 된다. 그리고 약가 차액 소실에 따른 개원의의 수입 감소는 더욱 치열한 환
자 유치 경쟁을 의미한다. 결국 의약분업의 진행 상황은 동네의원, 개원의의 
처지에서는 위기의식과 불만을 가중시켰을 뿐이다. 의사들은 이 단계에서, 약
사의 임의조제 방지가 경쟁자로서의 약국을 배제하고 일차의료기관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약사의 임
의조제를 조장하는 표현을 사용한 제약회사들에 전례없이 강경한 집단 대응을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것이 현 사태의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동네의원의 생존 문제는 결국 개원의의 수입 수
준으로 귀착되는 것인 바, 그렇다면 핵심적 축은 다름아닌 수가 수준-보험재정
이 되는 것이다. 한동안 의사 사회에서는 의약분업 내용 자체와 수가 수준에 
대한 불만이 정책 일반에 대한 막연한 불신 속에서 혼재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상황을 파악하고 두 가지 목표를 구분하여 접근하고 있다. 때로는 전술적 고
려 속에서 한 가지 목표의 달성을 위해 다른 한 가지를 활용하기도 한다. 예
를 들어, 수가의 인상을 요구하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의약분업안 반대-수용
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17일 집회는 이런 성격이 짙다.

이런 과정에서 의사들이 수가에 접근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동물병원의 개돼
지 치료비와 우리 나라 자연분만비를 비교하던 선정적 홍보 방식이나 미국의 
수준과 비교하며 자괴감을 토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자신들이 현 수가 수
준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결론은 우리 나라 의료보험
의 구조적 문제이더라는 것이다. 저보험료-저수가-저급여의 연쇄고리 속에서 
과잉진료와 국민의 불만이 공존하는 기형적인 체계가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개
안하고 다시 본 세상은 이전과는 달랐다. 왜 자신들이 약에 의한 음성적 수입
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왜 1일 환자수 70명을 넘기려 발버둥치고 100
명을 부끄러워하지 못했는지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또 의학적 소신에 따
른 진료 행위가 보험자의 일방적 삭감의 칼날에 매번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
유가 바로 그 체계 속에서 구조적으로 유도된, 그러나 결국은 자신들이 저지
른 과잉진료와 부당청구였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된다. 즉 의사들은 현 의료
보험체계가 자신들에게 강요해 온 명백한 불합리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는 인식과 결의에 도달한 것이다. 완강할 정도로 의사 사회 내부에서 지속적
인 동력이 형성되는 것은 수입의 일부 감소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이러한 배경
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의사 사회의 자괴와 불만을 단순히 의약분업
안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황 인식의 오류이거나 의도적인 왜곡이
다. 정부 당국은 법적 보완 조치로 임의조제와 약화사고 책임 부분 등 의사들
의 요구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집단 행동을 이유없다고 주장하고 있으
나, 이것은 실제로는 수가 인상의 압박 수단으로 의약분업안을 문제삼는 의사
들의 전술과 완전한 거울상을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즉 양측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 수가 수준을 뒤에 감추거나 회피하면서 명분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다.

결국 문제는 의료보험이다. 의사들이 아직 고소득 집단이라는 이유로 현재의 
집단 행동을 배부른 투정으로 보는 것은 부자의 처세에 관한 윤리적 가치 판단
은 될 수 있어도 보건의료의 구조적 모순을 통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
지 않는다. 의사의 적절한 수입은 얼마인가라는 질문도 호기심을 발동시키기
는 하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은 아니다. 저보험료-저수가-저급여의 
의료보험체계는 보장적 기능의 미흡에 따른 국민의 불만, 공급자의 과잉진료
와 음성적 재정 기전 작동 등과 같은 만성적인 문제를 양산해 왔다. 그리고 최
근 표면화된 보험 재정의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급성 악화 상태에 처했다. 의
약분업은 이 중 약가 마진 등의 누수 방지를 통한 급성 악화의 일시 완화와 음
성적 재정 기전 차단이라는 만성적 장애 요인의 교정을 시도하였다. 이에 대
한 의사들의 불만과 저항은 그 자체로 부당하다. 그리고 자신들이 느끼는 문제
의 본질이 의약분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설령 의약분업이 유실된다고 
해서 누적된 불만이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공법이 필요하다. 
만약 현 수가 수준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 그리고 정상적인 진료를 수행
할 수 없다면 국민 앞에 이해를 구하고 정부를 공격해야 한다. 수가 수준이 인
상된다면 그동안 과잉진료에 의해 양적으로 팽창된 비용 중 줄어들 수 있는 부
분을 제하더라도 상당한 재원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를 어디에서 마련할 것
인가? 이 핵심을 비켜 가고서 현단계에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
다수 국민은 현재 보험료를 더 납부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조금만 더 쥐어 
짜 내면 사회보험의 기초가 위협받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의사들 역시 의료
의 인격적 대리자로서 그 모든 불만을 뒤집어쓰기를 원치 않는다면 국민 일반
의 보험료나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방향으로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렇
다면 결국 해결책은 정부의 책임을 증대시키는 방향일 수밖에 없으며, 재원의 
조달은 정권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더 부담할 수 있는 자들로부터 거둬들이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자본에 더 많은 사회적 부담을 지우고 고소득자들이 더 많
은 보험료를 내도록 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아직은 의사들 역시 이 그룹에 포
함될 것이다. 

정부는 의료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
을 냉정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보험급여비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한정된 
국고지원 속에 보험료 수입은 불안정하다. 국민의 보건의료에 대한 만족도는 
극히 낮은 수준이며 의사들 역시 공공연히 사보타지를 외치고 있다. 이것이 위
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상황에서 정부와 의료보험 당국이 무대책에 가까운 
절감 위주의 재정안정 대책으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위기는 더욱 심화될 뿐이
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다만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나 의지를 정
부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