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4] 민간 개인의료보험 출시와 의보재정 위기에 즈음하여
     
     - 정부는 지역의료보험 국고지원 50% 약속을 이행하라 -


민중의료연합 
도 영 경




부끄럽지만 오늘은 집안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 결혼한 지는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고 지금으로부터는 벌써 1년 반도 더 지난 때이다. 필
자의 아내는 저녁상 머리에서 잠시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하더니, 그날 오후 모
생명보험사의 암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좀 뜻밖이라 당황해 하
고 있는 사이, 아내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타박에 대비해 기선을 제압하려
고 준비해 둔 듯한 근거를 하나둘 대기 시작했다. 자기 주변 사람들은 이미 
다 가입했다는 대세론, 결혼은 가정 앞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
는 성숙한 자세를 요구한다는 명분론, 10년만 보험료를 내면 70세까지 보장이 
된다는 상품의 우수성이 연달아 제시되었다. 둘 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데, 
하루 담배 한 갑을 아끼면 되는 저렴한 보험료 수준이라는 것도 근거에 포함되
어 있었다. 마치 보험회사에 갓 취직한 신출내기 보험모집인처럼 보여 서글픈 
웃음을 짓는 것 말고는 계속 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 앞에 대고 우리 의료
체계와 민간보험의 문제를 논할 계제도 아니어서 왜 한 마디 의논도 없었느냐
고만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대답인즉슨, 보험설계사와 전화 통화를 하다 보
니 그 보험사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하나는 가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큰돈도 
아니라서 혼자 결정했다고 했다. 아내는 워낙 거절을 못하는 심성이라 그 장면
은 눈앞에 선하고도 남았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서는 해약환급금이나 그
동안 들어간 보험료를 따져 보더라도 해약하기가 아깝게 되어 버렸다. 그 이
후 지금까지, 급여이체 통장에 월급이 들어 온 며칠 후면 어김없이 급여 입금
란 바로 밑에 필자와 아내 이름이 각각 따로 찍힌, 둘이 합쳐서 3만원에 가까
운 보험료 자동이체 흔적이 찍히고 있다. 필자의 급여명세서에서 2만원이 먼
저 의료보험료로 빠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필자의 이런 집안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실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암보험은 필자와 아내가 가입하기 전인 1996년 말 이미 가입자가 8백 
50만 명을 초과하였다고 하니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아내와 같이 입소문을 통해 암보험의 필요성을 설득당하고 또 자신이 자발적
인 권유자가 되었을 대다수 사람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하나
쯤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암보험이나 성인병보험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건강관련 민간보험의 확대 속에, 최근 민간 개인의료보험이 출시되
어 판매 경쟁에 돌입하였다 한다. 지난 주 경제지를 위시한 일간 신문들은 교
보생명이 민영의료보험 형태의 상품인 "개인의료보험"을 2일부터 판매하기 시
작하였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업계의 판매 경쟁을 예상하였다. 이는 질병당 고
정금액을 보상하던 기존 건강관련 보험상품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보이고 있는
데, 그것은 의료제공체계, 즉 병원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는 점이다. 보험 
가입자가 질병으로 보험회사가 지정한 병원에 입원할 경우, 보험회사는 질병
당 약정된 보험금으로 병원비를 직접 지급한다. 지급하는 비용 중에는 의보급
여대상 치료비의 본인부담금 전액을 포함하여 MRI 등의 고가검사장비에 대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만약 병원비보다 보험금이 크면 잔액을 가입자의 통장
에 입금시켜 주고 부족한 병원비에 대해서는 보험가입자가 추가로 부담해야 한
다. 보험료와 보장 수준을 보면, 30세 남자가 20년 만기로 매달 4만2천1백10원
의 보험료를 내어야 3대 질병(암, 뇌졸중, 급성심근경색)이 생겼을 때 치료비
로 2천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상식적으로 얼른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다. 850만이라는 많은 사람들
이 암보험의 가입자로 있다니 이는 특정 계층, 부류에 국한된 현상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지역의료보험 가입자들이나 직장 가입자들이나 공히 보험료의 
인상에는 매우 부정적이다. 즉, 대다수 사람들은 언제 혜택을 입을지도 잘 모
르는 암보험에는 자발적으로 가입하여 몇 만원의 보험료를 기꺼이 내는 반면, 
국가가 책임지고 있고 질병과 관련된 모든 위험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의 
보험료 인상에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 현실이다. 과연 이런 현상을 두고서, 전
체가 아닌 개인만을 생각한다고, 제 앞가림에만 바쁘다고 국민을 비난할 수 있
을까? 또 이윤을 존재 이유로 하는 민간 보험회사에 대해서 국민의 건강을 담
보로 장사하려고 한다는 양심에 호소하는 감상적 비난 이상을 던질 수 있을까?

국민은, 물론 필자의 아내를 포함하여, 개인적 차원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전국민
이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의료서비스 이용시 입원
진료의 경우 약 40%, 외래진료의 경우 약 67%에 이르는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
고 있다. 급여의 제한과 미흡한 보장성 때문에 우리 나라 의료보험은 의료보장
이 아닌 '할인진료'나 '반쪽자리 의료보험'이라는 비난을 들어 온 지 오래이
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구성원, 특히 가장의 중한 질병은 가계의 파탄으로 바
로 이어지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위험에 대한 회피책으로 매달 몇 만원의 
민간보험의 보험료를 아까워도 아까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보험회사
는 수요에 대한 적절한 공급이라는 시장의 법칙을 합리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 
뿐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적 상황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는 점
이다. 무엇보다 민간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국민의 더 큰 부분 중 경제적
으로 취약한 계층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이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위험
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는 답이 없다. 환자의 나이가 왠만큼 들
었고 부양을 받는 위치라면 그들은 병원을 찾지 않거나 치료에 소극적일 것이
다. 그것이 빈궁한 가정에 대한 도리임을 그들도 잘 안다. 최근 빈민을 대상으
로 이루어진 어떤 조사에 의하면, 만성질환자의 57%가, 일상적 치료비를 넘어
서는 경우 응답자의 37%가 비용 문제로 치료를 받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
다. 그렇지 않고 질병을 치료하다 보면 가정 생활의 기반은 파괴된다. 전세는 
월세로 옮겨지고 빚은 늘어간다. 우리들 눈에 눈물을 가득 고이게 하는 다큐멘
타리나 전화 모금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는 본인부담 상한제와 같이 질병으로 인한 가계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장
치가 의료보험제도 내에 마련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즉, 꼭 필요한 의료서비
스에 엄청나게 높은 경제적 장벽이 있음을 뜻한다. 그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
는 아예 치료비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잘 살아 버리거나, 아니면 민간의료보험
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암보험은 이런 토양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
다. 이것이 허울좋은 우리 전국민 의료보험의 단면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상황을 낳은 근본적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정부이다. 의료보험이 실시된 이래 정부는 의료보험의 발전에 극히 무관
심하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50%의 국고지원 약속조차 이
행하지 않음으로써 의료보험의 재정 악화를 초래하였다. 보험재정의 악화는 급
여의 확대를 어렵게 만들어 보장성을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한 대신, 보험료
의 잦은 인상을 불가피하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을 샀다. 진료에 대한 질
적 관리에는 개념조차 없었다. 국민의 건강 보호라는 당초의 취지를 무색케 할
만큼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도록 유도함으로써 국민과 공급자들의 불만과 상호 
불신이 누적되었다. 그 결과로 국민의 의료보험에 대한 기대와 신뢰도는 시간
이 흐를수록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국고지원 50% 약속을 지켰을 경우에는, 세대당 317,311원
의 보험료 부담을 경감하고, 보험급여를 대폭 확대함과 동시에 본인부담 상한
제를 도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2000년 지역의료보험 누적적립금을 약 1조 
2천억원(1999년도 보험급여비 4개월치에 해당) 규모로 유지함으로써 지역의료
보험 재정의 안정도 가능했다고 한다. 결국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현정부 들어 국고지원률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고 국고지원 이행 요구
에 대해 정부는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만약 현재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의보재정의 고갈
을 앞두고 다시 보험료를 인상하려 한다면 민중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파국을 초래한 책임은 국민의 건강을 지킬 본분
을 회피한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지적해 두고자 한다.


* 알림: 칼럼의 성격으로 인해 이 글을 포함하여 여기에 실린 글들은 일반적으
로 민중의료연합 조직의 의견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