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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 호 - 200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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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 -서울특별시립 동부병원 민간위탁 소동의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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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공공의료기관인 '서울특별시립 동부병원'은 최근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한번은 '사스(SARS, 중증급성흡기증후군) 지정병원 문제'였고 다른 한번은 '민간위탁문제'였다. 전자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님비현상'에 대한 문제의 한 예로 개탄의 대상이 되었고 후자는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 공격에 대한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전자는 그 사안의 특수함에 따라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매우 시끄럽게 전개되었고, 후자는 뜻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용히 이루어졌다. 전자의 문제는 이라크 전쟁 마무리와 함께 조용해졌으므로 후자의 문제를 다시 한번 다루어 보겠다. 이는 아직도 '공공의 적'들이 칼자루를 쥐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유일한 종합병원",
"신축공사를 마무리"지은 "새 병원", "최신식 건물에 총200병상 규모로 운영하고 있"고 "저소득층, 노숙자, 행려환자 등 주로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반진료도 성실히 시행하고 있"는 병원, "앞으로 쾌적하고 편안한 가운데 최신식 의료장비를 갖추고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손쉽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병원, "공공의료기관의 모델병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겠"다는 병원, "아직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병원문턱이 높게만 보이는 저소득 시민…을 비롯한 모든 시민을 내 가족을 돌보는 마음으로 주인처럼 편하게 모시겠다는" 병원. 그러면서도 "서울 동북권 지역 주민들의 건강증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라는 병원이 '동부시립병원'이다.(서울특별시립 동부병원 병원장 인사말, http://dbhosp.seoul.go.kr/).
앞의 인사말은
(다른 민간 병원, 심지어 일부 민간위탁 된 공공병원에서는 찬밥 신세인)“저소득층, 노숙자, 행려환자”에 대해서도 (다른 병원에서는 돈을 내지 않으면 전혀 제공되지 않는)“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최신식 건물”과 “의료장비”로 “제공하는 병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병원문턱이 높게만 보이는” 사람(이런 사람, 이런 시민이 얼마나 많은가)도 쉽게 올 수 있는 좋은 병원을 서울이라는 특별한 시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으로 운영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병원은 바로 이런 병원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병원을 없애려 하는가? 오히려 이런 병원은 더욱 늘려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다.
저소득시민과 행려환자의 비율이 높아 발생하는 적자와 현재의 예산을 확대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동부시립병원’을 민간위탁 하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지금처럼 운영해서는 당연히 적자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공공병원의 목적이고 이에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은 소위 ‘국가’나 ‘정부’의 역할이다. 이것을 못하겠다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 아니 그 권력을 내놓아라. 민간위탁을 반대하며 전문가를 동원한 경영진단과 경영합리화를 주장하는 몇몇의 주장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상투적일 뿐더러 옳지도 못하다.
일반적으로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직종을 넘어 대부분 어려운 조건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경영합리화의 주장은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목을 자르고 스스로의 목을 조이는 즉, 노동강도를 높이라는 주장과 다름 아니다. 이것 역시 민간위탁을 주장하는 근거의 다른 의도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해왔고 더욱 잘하기 위해
1997년 9월부터 2002년 6월까지 5년여간 321억원이라는 막대한 시 비용을 들여 신축공사를 하고 2002년 새롭게 개원한 병원을 민간위탁 하겠다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 예산까지 지원해가며 팔아넘기겠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발상인가? 그리고 그것을 승인해준 시의원은 누구인가? 정책입안자와 승인자는 신분을 공개하라. 그것이 소신이고 떳떳하다면 못할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 책임을 철저히 묻고자 할 뿐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못된 심보에서 비롯한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일이었든,
아니면 이후 몇 년을 고려하여 치밀한 계산 하에 준비된 음모이든 ‘서울특별시립 동부병원’의 ‘민간위탁 시도 만행’은 잠시의 소동 끝에 일단은 물밑으로 사라졌다. 모 대학병원과의 협상과정의 난항이 민간위탁 결렬의 한가지 원인이겠지만 항의 방문을 비롯한 재빠르고 단결된 투쟁이 그 기본적인 힘이었음은 자명하다.
다만 너무 쉽게 뒤로 물러선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이 이번 소동을 벌인 것이 ‘민간위탁’을 이루어 내겠다는 것도 있지만 다른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의도는 민간위탁이었을 것이고 만일 아무런 저항이 없었거나 약했다면 민간위탁은 그대로 진행됐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힘을 한번 시험 해본 것이다.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다양하고 끊임없이 이러한 도발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되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말고. 즉, 그들에게 이 문제는 ‘밑져봐야 본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이 벌어지면 따라다니며 뒷수습만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그런 주장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찾아내어 끝까지 응징해야 하고 동시에 우리의 계획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투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번 민간위탁 소동에서 얻어야 할 우리의 교훈이다. |
아픈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하는 '건강의 파수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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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료연합 |
우리나라에서 '건강의 파수꾼'이라는 의료인은 노동자․민중이 건강하기를 바랄까?
만약 “예”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무척이나 순진한 사람이다. 의료인도 인간인 이상, 심정적으로는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자․민중이 건강해서 병원에 올 일이 없어지면, 그리고 약 먹을 일이 없어지면 당장 돈벌이가 신통치 않아 질텐데 어느 누가 그러기를 바라겠는가?
환자가 줄었다고 투덜대는 후배 의사에게 “기다려라, 참고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독감이든, 눈병이든, 크게 한 번 유행할 테니까”라며 위로하는 것이 평범한 선배 의사의 모습이다.
물론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의료인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그들이 이런 상황을 통해 잘 먹고 잘 살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아픈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의 파수꾼'이라는 의료인들이 좋아하는 상황은 아픈 사람 하나 하나가 모두 돈이 되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특성으로부터 비롯된다.
병원노동자라고 해서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대형병원에서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때,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특진비'라는 것이 있다. 이 '특진비'는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늘리면서 병원 수입을 올리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병원노동자가 '특진비'에 대해서 보이는 입장은 상당히 이중적이다. '특진비'가 환자의 부담을 부당하게 늘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특진비 폐지'를 병원노동자의 요구로 주장하지 못했었다. 환자가 병원에 진료비를 덜 내게 되면, 병원 수입이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병원노동자의 임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줄어들면 병원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들고, 노동자․민중이 많이 아파야 의료인이 경제적으로 좋아지는 관계, 이런 식으로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우리나라의 노동자․민중과 의료인의 관계이다.
병원 수입만 올려주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특진'
원래 '특진비'은 말 그대로 '일반진료'가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특정한 의사'에게 '특별한 진료'를 받을 때 추가로 지불하는 진료비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에는 무조건 '특진'이다. 대형병원에서 '특진'이 아닌 '일반진료'를 받겠다고 우기다가는 엄청나게 눈총을 받으면서 찬밥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심지어는 진료를 못 받기도 한다. 이제 '일반진료'는 없어지고 모든 진료가 '특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모든 진료가 '특진'이 되어버렸으니, 그 진료는 더 이상 '특별한 진료'가 아니게 되었다. 2000년도에 '특진'은 '선택진료'라는 용어로 바뀌었지만, 환자에게 부당한 진료비 부담을 주는 본질적 문제점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이 건강할수록 의료인도 좋아지는 의료체계는 불가능할까?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는 '이미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충당해주는 사후 보상제도'이다. 평소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증진, 질병예방, 그리고 조기진단․조기치료 등과 같은 서비스는 취급 대상이 아니다. 오로지 질병이 발생한 이후에 필요한 치료서비스만을 취급한다. 이런 제도에서는 질병이 많이 발생해야 의료인이 돈을 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민중과 의료인의 이해관계는 본질적으로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민중이 건강할수록,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수록 의료인이 좋아지는 그런 의료체계는 불가능할까? 노동자․민중과 의료인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하는 그런 의료체계는 불가능할까?
만약 의료인과 병원의 수입이 환자 수와 상관없이 결정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의료인은 환자 한 명 한 명을 돈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이미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노동자․민중이 평소에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치료서비스’보다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이 더 중요하게 취급될 것이다. 어찌 보면 꿈같은 말로 들릴 지 모르지만 결코 꿈이 아니다. 이런 의료체계는 가능할 뿐 아니라,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비슷하게 시행하고 있다. 노동자,민중과 의료인이 같이 좋아지는 것은 우리나라 안에서는 꿈이지만 우리나라 밖에서는 꿈이 아닌 현실이다. |
[노강투쟁소식지 6호]규제강화 VS 규제완화 - 싸움의 출발점을 바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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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강도강화저지 노동자연대 |
광화문 규제개혁위원회 앞에서 '근골격계 대책 마련 촉구' 릴레이 노숙농성이
6 월 9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노숙농성의 직접적인 이유는 7월 1일부터 적용될 '산업보건기준에관한규칙개정안'과 관련 해 안전보건관련 규제를 완화하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의 배경은 경총을 위시한 자본가계급의 “기 업경쟁력”약화라는 아우성과 성토가 작용하고 있다.
개정 시행될 내용이 신체부담작업 다시 말해 근골격계 직업병 예방의 완벽한 대 비책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동안 투쟁의 작은 성과이며 이후 투쟁의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규제개혁위원 회의 행보는 반노동자적임에 틀림없다. 그 동안 98년 '규제개혁위원회'가 설치된 이후 노동자 건강보호와 관련된 제반의 법률 은 물론이고 고시와 예규까지 총 78건의 안전보건제도가 완화?폐지되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 설립의 주 목적이 “기업경쟁력 강화”에 있으므로 규제개혁의 대상이 되는 순간 제도의 완화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따라서 이에 민주노총의 대응투쟁은 시급히 요구 되는 것이다.
그러나 투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심각히 고민해 볼 지점이 있다.
노동자 건강을 옹호하는 진영이 “규제를 강화하라” 또는 “완화하라”는 논쟁에 휘말리는 순간 노동안전보건 자체는 자본가가 규제하는 제도임이 전제되는 것이다.(실제 산업안전보건법은 법적 체계상 노동자보호법이 아니라 사업주 규제법이다) 따라서 기업활동에 위 축을 줄 수 있다면 그 규제는 언제든지 탄력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이 된다. (예컨대 사업자 등록이나 허가 등이 복잡하여 기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누구나 규제를 축소하자고 쉽게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논리가 노동보건의 문제에도 똑 같이 적용되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때문에 노동자건강과 작업장 자기 통제권을 옹호하는 진영은
지금의 투쟁과 동시 에 노동보건관련법이 그 취지와 서술에 있어 노동자권리를 옹호 명문화하는 (즉 자본가규제법이 아니라 노동자 권리 보호 법) 구도로 전환시키는 발상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에 근거하여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노동보건관련법(현재 산 업안전보건법)등이 규제개혁의 대상 자체가 되는 것을 전면 부정하고 이를 현장 및 사회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법적 논쟁과 규율이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전제하더라도, 현재의 규제완화 VS 강화의 논쟁과 싸움의 구도에서 노동자 보호 확대 VS 축소로 싸움의 출발점을 전환하여 한층 적극적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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