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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5 호 - 200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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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민연금 급여 55% 인하 조치에 대한 논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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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급여 55% 인하 확정, 노동자 반발 완충시키기 위한 단계적 조치일뿐
정부는 지난 4월 연금개악안을 토대로 보험료는 올리고 급여는 줄이는 방안들을 1,2,3 하는 식으로 제출한 바 있다. 그 당시 말도 안되는 미래 예측을 운운하면서 2070년에 급여액의 두 배를 모아두어야 한다며 무려 2300조 가량으로 추정되는 기금을 적립하기 위해 이같은 방안들을 제출한 바 있다. 워낙 예측 자체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였던터라 정부안의 결정이 쉽지 않았을 터이다. 급기야 7월 19일 신문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현행 급여율인 소득대체율 60%에서 55%로 인하하고 단계적으로 보험료를 올리기로 하였다고 한다. 정부는 이러한 발표에 이어 국민연금법 개정을 국회에 상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국민연금급여 인하 방안 확정은 애초 50%로 인하에 무게가 실려 있던 것을 상기하여 개혁의 폭을 좁힌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55%는 이제 원안대로 50%로 이후 단계적으로 줄어들 것이고 이에 발맞추어 보험료 역시 지속적으로 인상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에 불과할 뿐이며, 노동자들의 반발력을 완충시키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후 매 5년마다 인구노령화가 심각하다느니 고용여건이 어렵다느니 해대며 끊임없이 국민연금을 공격하면서 애초 원안에 다가가도록 급여는 낮추고 보험료는 높이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각종 세제혜택을 자양분으로 성장한 민간연금을 끼워넣을 것이다.
결국 노동자민중들은 노후를 위해서 민간시장에 점점 더 의지해야 함으로써 노동자간 연대가 아닌 저축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제도 속에서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각각 개별적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반노동자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것도 민간연금 뿐 아니라 국민연금 역시도 오늘날 불안정한 금융시장에 투자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연금가치는 언제 폭삭 주저않을지 모르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그 불안정은 더욱 더 증폭된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연금개혁의 본질이다.
정부는 뭐하러 급여는 줄이면서도 그토록 돈을 모아두려고 하는가?
주식시장의 부양과 이를 통해 금융자본을 위한 이윤의 원천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재정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자본의 이해에 부합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에도 복무하게 된다.
이제 노동자 민중은 노후보장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정부 방안을 거부하고 민중적 대안을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돈없다 더 내라 한다. 노동자민중은 거꾸로 요구해야 한다. 왜 노동자민중한테만 자꾸 부담시키냐고 되물어야 한다.
재원이 문제라면 정부에게는 추가 재원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이 재원으로 약자층에 대한 지원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금융에 부과하는 세금과 부유세를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노동관계 측면에서도 고려되어야 하는데, 고용안정과 확대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부담능력을 제고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후 추가재원에 대한 부분은 노동자 임금에 분담금 형식으로 자본으로부터 추가되어야 한다. 자본은 저성장 속에서도 이윤을 추구하며 노동생산성 자체는 부르주아의 통계 이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 부분이 추가재원의 조달로 이어지도록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임금에 추가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사회분담금 형식으로 추가되어야 한다. 노동자민중은 자본에게 이윤에 대한 일차적 분배에 대해 강력히 요구를 함으로써 노동생산물에 대한 주체임을 피력해 내야 한다. 이윤율 저하에 대한 자본의 반작용 노력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전략의 근본적 모순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연금개혁과 관련한 주류적 쟁점은
이처럼 노동생산물을 둘러싼 절박한 투쟁국면이라는 본래의 성격을 인구노령화에 따른 재정고갈이라는 세대갈등으로 치환시키는 전략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도 이것은 사기에 불과하다. 2070년에 먹을 떡이 2003년에 돈을 모아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2070년에 부담가능한 생산물을 창출하기 위해 안정적 고용과 임금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노동생산물을 둘러싼 투쟁, 이것이 연금의 포인트다. 정부의 연금개악노력, 그것은 노동자민중의 온전한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본래적인 연금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벼룩이 한뜀도 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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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보장제도의 과거와 현재(1)
서구에서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민중투쟁의 산물이었다.
자본가 정권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의 요구에 밀려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분출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잠재우기 위해서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였다. 그후 자본가 정권은 사회보장제도를 후퇴시키려는 시도를 그치지 않았는데, 이런 시도를 분쇄하고,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켜나간 동력도 진보적 정치세력과 노동자·민중의 투쟁이었다. 이처럼 서구 의료보장제도의 출발과 발전 과정에는 항상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건강'은 사회구성원이 동등하게 누려야 할 보편적이고 당연한 권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의 출발과 발전은 노동자·민중투쟁과는 거리가 멀었다.
1963년 제정된 최초의 의료보험법은 5.16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최고 통치권자의 명령으로 일본 의료보험법을 베껴서 만든 것이다. 군사정권이 쿠테타 직후 서둘러 의료보험법을 제정한 이유는 동요하는 민심을 안정시키고, 취약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당시 무상의료체계를 완성했다고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던 북한과의 체계 경쟁도 의료보험법을 제정하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제정되었지만 실제로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된 것은 1977년에 이르러서였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의료비 문제로 인한 불상사가 빈발했고, 경제성장이 계속되면서 부의 불균등한 분배가 심각해져갔다. 그리고 중화학공업 주도의 경제발전이 본격화되면서 여기에 필요한 ‘건강한 노동력의 재생산’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의료보험제도의 시행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의료보호법도 같은 이유로 1977년에 제정되었다.
5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해서 시작된 의료보험은 점차 가입대상을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1989년 도시지역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전국민의료보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의료보장제도의 확대 과정>
1963 의료보험법 제정
1977 직장의료보험의 도입(500인 이상). 의료보호법 제정
1979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의 도입
직장의료보험 300인 이상으로 확대
1981 직장의료보험 100인 이상으로 확대
1982 직장의료보험 16인 이상으로 확대
1987 한방의료보험 실시
1988 농어촌의료보험 도입, 직장의료보험 5인 이상으로 확대
1989 도시지역의료보험의 도입 : 전국민의료보험 약국의료보험 실시
그러나 전국민의료보험 시대가 시작된 지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건강할 권리'는 전체 노동자·민중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자본가 정권은 노동자·민중을 통제하는 시혜적 통치수단으로 의료보장제도를 시작했기 때문에 '건강할 권리의 보편적 보장'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단지 의료 문제 때문에 사회적 불안과 갈등이 야기되지 않는 수준이면 족하다. 따라서 자본가 정권이 의료보장제도에 쓸 수 있는 재화의 양도 이미 제한되어 있다. 자본가 정권 입장에서는 사회적 불안과 갈등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돈을 의료보장제도에 쓸 이유가 없다.
이들에게 의료보장제도는 '노동자·민중의 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안과 갈등을 잠재우고, 노동자·민중을 통치'하기 위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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