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칸쿤은 제 2의 시애틀이 될 것인가?
1999년 제 3차 WTO 각료회의가 열렸던 시애틀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으로 각료회의가 무산되고 세계화/자유화의 대상과 범위를 더욱 확장시키려는 밀레니엄 라운드를 좌절시켰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3년 9월 제 5차 WTO 각료회의가 멕시코 칸쿤에서 열릴 예정이다. 제 5차 각료회의에서도 농업, 서비스 등의 부문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대립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이번 칸쿤회의에서는 의약품과 지적재산권부분에서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사이의 대립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2001 년 11월 14일 카타르의 도하에서 열린 제 4차 WTO 각료회의에서 "TRIPs 협정(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과 공중 보건에 대한 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이로써, 의약품 특허로 인해 약값이 비싸 국민들이 약을 사 먹을 수 없는 WTO 회원국들은 제네릭(카피약)을 생산할 수 있다는 '강제실시 권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의약품 제조능력이 없거나 경제규모가 작아서 의약품을 자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국가들은 다른 국가가 강제실시로 생산한 값싼 제네릭을 수입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강제실시로 생산된 의약품은 국내수요를 주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TRIPs 협정 조항으로 인해 자국 내에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없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중진국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이로 인해 2001년 도하선언 6항은 2002년 말까지 TRIPS 이사회에서 해결책을 찾기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강제실시의 범위를 몇몇의 개발도상국만으로 국가범위를 제한하려는 다국적 제약자본과 미국에 의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강제실시의 범위나 대상국에 어떠한 제한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제약자본과 미국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2003년 6월, 이집트 WTO 비공식 각료회의에서 미국이 더 이상 질병범위는 문제가 아니라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소위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에 대한 해결책에 관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대립점이다.
강제실시를 '그림의 떡'으로 만들려는 미국과 다국적 제약자본의 시도
미국과 다국적 제약자본은 수혜국의 범위를 최빈국과 일부 저소득 개발도상국으로만 한정하려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가나, 나이지리아, 짐바브웨, 우간다와 같은 대부분들의 개발도상국들은 약간의 의약품 제조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수혜국 대상에서 배제된다. 또한 브라질, 말레이시아,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필리핀,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발전을 이룬 중진국 역시 수혜국 범위에서 당연히 배제될 것이다.
이는 TRIPs를 '모든 이들의 의약품 접근성 향상'을 위한 방식으로 이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도하선언 4항에도 전혀 맞지 않는 제안이다. 값싼 제네릭 의약품이 오늘날 존재하는 것에는 제네릭 AIDS 약을 구입하기로 한 브라질의 힘이 컸다. 브라질의 제네릭 의약품 구매는 제네릭 공급자들에게 판매시장을 형성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이렇게 해서 생산된 제네릭 의약품은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에게도 공급될 수 있었다. 미국으로 대변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제네릭 시장을 최빈국으로만 축소시킴으로써 제네릭 생산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 특허와 의약품 접근성 문제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미국은 브라질, 인도, 필리핀,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의 경우 강제실시와 같은 체계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지 않으므로 이들 국가들이 강제실시와 같은 국제적으로 보장된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후 미국이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양자간/지역협정을 통해 각국이 강제실시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은 눈감고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의약품과 특허권을 둘러싼 싸움은 더 이상 가난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만의 싸움이 아니며, 한국과 같은 중진국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며 이미 개입되어 있는 상황이다. '글리벡' 약값이 비싸 한국 환자들이 인도에서 '글리벡'과 같은 성분으로 제조한 '비낫'을 직구매하여 먹고 있는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의 문제는 개발도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할 수 있는 질병 목록 중 암이 제외되거나, 수혜국 범위가 최빈국만으로 제한된다면 인도에서 '비낫'을 제조하는 것은 지금보다 어려워 질 것이며,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 수출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또한 개발도상국과 미국과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고 중진국을 강제실시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미국의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중진국의 입장은 향후 협상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강제실시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용납할 수 없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 4차 WTO 각료회의에서는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대한 선언문을 통해 '제약회사의 특허권보다 의약품의 접근성 보장이 우선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2003년 제 5차 WTO 각료회의는 이러한 도하선언문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의 질병범위 및 수혜국 대상을 제한하려는 다국적 제약자본과 미국의 압력은 강제실시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강제실시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있어서는 안 되며, 한국과 같은 중진국을 수혜국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요구역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
우리는 칸쿤회의에 참가하는 한국정부 협상단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 한국정부는 "TRIPs 협정이 공중 보건을 보호하기 위한 특히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촉진하기 위한 WTO 회원국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이행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대한 선언문(도하선언)'의 4항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제약부문의 제조기술이 불충분하거나 제조기술이 없는 WTO회원국들이 TRIPs 협정하의 강제실시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의 해법을 찾을 것"을 규정한 도하선언 6항의 해결책을 찾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라.
- 한국정부는 도하선언 6항의 해결책을 강구함에 있어, 강제실시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지지하라.
- 한국정부는 도하선언 6항의 해결책을 사용할 의사가 없거나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겠다는 선언할 것을 요구하는 압력에 반대해야 한다.
- 한국정부는 TRIPs 협정과 관련된 협약에서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옹호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