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성장 후(後)분배'라는 한국사회의 정통적 주류 이데올로기 앞에서
노동자·민중의 삶과 생활을 위한 권리는, 경제성장이란 그늘아래에서 외면되거나 혹은 정부나 자본이 베풀어주는 '시혜'의 일부로서 간주되어 왔다. 이는 70년대 개발독재하에서 뿐만 아니라 97년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전략이 구조화되고 일상화된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산적 복지'를 통하여 복지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고 하고, 그리고 '참여복지'를 통하여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 하에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복지를 실현시킬 것이라고 섣부른 기대도 가져보았지만 노동자·민중의 복지가 '잔여적이고 시혜적인'인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한편 지금 시대는 '가난이라는 굴레'가 극소수의 사회적 부적응, 일할 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800만이 절대적 빈곤상태에 놓여 있다는 조사결과도 제출되어 왔고, 노동을 하는 인구 중 50%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불안정 고용상태에 놓여 있고, 이들의 임금 수준이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가 있다.
'가난한 노동자'는 이제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 이러한 고통은 더욱 가중되어 '빈곤의 여성화'라는 용어는 일반화되었다.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건강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구수도 이미 150만 가구에 이른다. 국민연금가입 대상자 중 40%는 연금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처지에 있어 이들의 노후생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또한 신용불량자는 400만에 달하고 있어 정상적인 사회,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고 2,30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중 10%가 실업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한 시대패러다임이 낳은 결과이다.
아무리 자본과 정부가 부르짖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이며 가장 효과적인 소득분배방안이며, 일자리 만들기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하더라도 이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 것임은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삼성경제연구원이 2004년 시대적 트렌드로 정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니 '2만 달러 국민소득 시대'니 하는 허울좋은 구호는 노동자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극소수 자본과 그 자본운동에 기생하는 소수 계층만을 위한 것이다. 문제의 뿌리를 없애지 않는 정책과 구호는 허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정부는 위와 같은 사회적 공동체를 해체하고 극단적인 양극화의 결과를 빚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전략을 더욱 힘있게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한칠레 FTA 협정체결을 필두로 한 무역자유화 흐름을 한일 FTA, 한싱가포르 FTA체결 등으로 이어가려 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자본 유치를 목적으로 지속적인 노동유연화 전략과 함께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운동의 '손과 발'을 '신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이름하에 묶으려는 기도를 꾀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유치의 최적의 조건을 마련하고, 아울러 자본운동의 영역을 노동자, 민중의 삶과 생활의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전략속에서 교육, 의료 시장의 개방과 더불어 국내의 법과 제도를 '이윤 경쟁'의 수렁으로 빠져들게끔 고치려 하고 있다. 이른바 영리법인의 '교육기관, 의료기관에의 진출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건강보험제도를 개악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노후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국민연금제도를 부담은 늘리면서
나중에 받는 액수는 줄이는 개악 기도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내놓고 있는 '기초생활보상대상과 수준의 확대' '본인부담상한제의 도입을 통한 중증질환자의 부담 경감' '공공의료 30%확충을 통한 인프라 구축' 등의 정책과 제도는 과거 정부의 '복지패러다임'과 전혀 다르지 않는 이른바 '잔여적, 시혜적 조치'일 수 밖에 없음은 명약관화하다. 물론 자본과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전략이 항상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낳고 있는 결과가 참혹한 만큼 언제나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투쟁은 있었다. 2003년에는 김주익 열사를 비롯한 다섯분의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희망이 없는 사회'에 대한 처절한 저항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이 엄동설한의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강제추방에 맞선 저항을 하고 있다. 특히 방지거병원 노동자, 서울대간병인 노동자,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장애인 이동권투쟁, 그리고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저항의 몸짓은 소수이기에 더욱 가열차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투쟁은 '소수의 저항'이 아니라 '다수의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2004년을 우리는 '빈곤의 일상화, 보편화', 삶의 공동체성을 파괴하고 사회를 양극화 시키는 이윤중심의 시장주의적 사회로 재편하려는 것에 맞선 다수 대중의 '대안운동'을 시작하는 첫해가 되어야 한다.
대안운동의 시작은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첫째, 빈곤의 일상화·보편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능력, 고용여부, 인종, 성, 국적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적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쟁취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하에서의 최저생계비 수준과 대상을 최저임금과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의 형성을 위해 '사회연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둘째, 시장과 경쟁, 효율의 논리로 급속하게 이윤 추구의 영역으로 편입해 들어가는 교육, 의료, 교통 등의 사회적 서비스를 공공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2004년 급속하게 추진할 것으로 예견되는 교육, 의료, 교통 등의 서비스 시장개방과 '민간참여와 선택권'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제반 서비스체계의 시장적 질서재편에 맞선 공동의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이와 동시적으로 사회 공공적 재편의 상과 패러다임, 모델을 대중적 실천과 투쟁으로 만드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두가지 운동은 필연적으로 자본·시장중심의 사회재편 및 전략과 항상적으로 갈등하고 긴장하며, 그것의 힘의 역관계에 따라 실현 여부가 판가름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이를 지속시킬 수 있는 조직운동이 아울러 요구된다. 그리하여
셋째, 위 두가지를 출발점으로 하여 기존 사안별 단체운동, 부문운동의 수평적 연대이 갖고 있는 일회적, 품앗이식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적·대중적 운동주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위와 같은 출발지점에서 우리가 발걸음을 얼마나 떼어놓을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노동자·민중에게, 노동자·민중이 열어가는 '희망이 있는 사회'의 전망이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