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18] 의사의 권리와 환자의 권리 : 의권 논의에 부쳐

회원 최용준  

작년 하반기 이후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료계의 요구는 다양하였으나, 의료계 
스스로가 규정하는 이번 투쟁의 성격은 "의권 쟁취", 이 한 마디로 압축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논의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서울대 김
용익 교수는 지난 8월 12일「OhmyNews」와의 인터뷰에서 "의권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다…국민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돼서 국민들로부터 위
임을 받는 권한…'주권이 재민 (在民)'하듯이 '의권도 재민 (在民)'하는 것"이
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하여 임기영 교수는 "의권재민론 (醫權在民論)의 
허구"라는 글에서 "물론 의권은 천부적 권리가 아니"지만 "의권이 궁극적으로 
환자의 권리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권리"이며 이에 대한 "세계 사회의 합
의가 이미 오래 전에 끝"난 마당에 "새삼스레 다시 합의할 필요도 없"으며 "한
국의 의사들이 지금 '의권쟁취'를 외치는 것은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자의 권리를 되찾아 주자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의권' 개념이 중요한 이유 

이러한 주장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장래 한국 의사들의 정체성을 자리매김하
는 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번 의료계의 투쟁은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뚜렷한 이념적 지표를 갖지 못하고 있던 한국의 의사들에게 "의권'이라는 화두
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의권' 개념은 지금 당장
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장래 이에 대한 의료계의 '동일시(同一視)'를 통
하여 한국 의사들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 짓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
다. 그런데 과연 '의권'이란 무엇인가? 

임기영 교수는 이 질문에 의미심장한 답변을 하고 있다. 그에게 "의권이라 함
은 임상의사가 소신과 양심에 따라, 그 어떤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환
자를 위해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을 의미"하므로 "의권
은 의사의 권리이자 동시에 환자를 위한, 환자의 권리"라 것이 그의 주장의 요
체다. 그는 이어 말한다. "환자의 최대 이익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병 
치료의 전문가인 의사에게 치료 받는 것이며 의사 아닌 이런 저런 비전문가들
이 의사에게 치료 받을 환자의 기회를 가로채거나, 의학적 결정 (medical 
decision making) 과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의료와 
의학이 차지하는 지위를 감안해 볼 때 그의 주장은 진실의 일면을 반영하고 있
다. 그러나 우리는 의학적 결정에 대한 불간섭이라는 그의 주장이 왜 유독 "이
런 저런 비전문가"에만 국한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추측컨대 그가 자
신의 주장의 타당성을 보편적 수준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은, 그의 글이 의
약분업이라는 쟁점을 둘러싼 의료계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씌
어졌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여기서 그가 지칭하는 "이런 저런 비전문
가"란, 적어도 의약분업이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약사"를 의미함을 쉽게 미루
어 짐작할 수 있다. 


언제 환자의 권리가 진정으로 위협 받는가 

그러나 우리는 "환자의 최대 이익이 보장 받지 못하는" 경우가 언제인지를 너
무도 잘 알고 있다. 어떤 경우에 아픈 사람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가를 무
수히 보아 왔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 의사를 찾지 못한다. 늘 직장에 매달
려 있고 여전히 살인적인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우리 국
민들이다. 아이들이 아파도 일에 매달린 부모는 함께 소아과를 찾지 못한다. 
또 사람들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의사를 찾는 것을 망설이기도 한다. '진료비 
할인 제도'에 불과한 반쪽 짜리 의료보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중한 병일까 두
려워 치료를 미루고 병을 키우게끔 한다. 

또 김대중 정부의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의료보장 정책과, 정부와 학계, 의료
계 일각이 입을 맞추고 있는 사보험 도입 논란을 보면, 국민의 16.1%가 어떠
한 의료보장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것은 곧 환자의 권
리,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잠재적' 환자의 권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은 더 이상 남의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미국의 현실 속에서 
환자의 권리이자 의사의 권리인 '의권'은 어떤 존재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
까. 일찍이 아놀드 렐만 (Arnold Relman)이 경고한 것처럼, 의료 분야에 침투
한 금융자본 (보험회사)는 환자를 치료하려는 임상의사의 진료상의 자율성을 
심대하게 훼손하는 역기능을 낳고 있다. 이것이 미국의 진짜 현실이다. 또 이 
점에서 병원자본의 이해가 보험회사와 다를 이유가 없다. 


의권의 출발점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요컨대, 보편적 의미의 의권이란,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외면하는 국가권력과 
이윤을 좇아 정상적 진료 행위를 방해하는 자본의 힘으로부터 온전하게 독립하
려는 의사들의 노력에서 출발한다. 이미 의료계가 '국민건강권'을 말했다면, 
환자 개인의 진료상 불간섭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의료계의 구호가 무색해진
다. 제도의 조정과 의약간의 이성적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를 의권 논의에 중심에 부각시키고, 건강보장에 무책임한 국가권력
과 예견되는 병원자본과 금융자본의 이윤추구의 논리에 환자의 권리가 희생되
는 것을 부수적인 문제로 수수방관한다면, '의권'이 의사의 권리이자 환자의 
권리라는 임기영 교수의 주장은 대단히 기만적이라는 얘기가 된다. 

두 번째로 의권이 환자의 권리이기도 하다는 그의 주장이 그저 '정치적 수
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환자의 권리이게끔 하는 의사윤리의 새로
운 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권리는 대단히 주체적 개념일 수
밖에 없다. 환자의 권리를 의사가 알아서 보장해줄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고 
환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informed 
consent"는 긍정적 의미에서는 환자의 주체적 참여의 초보적 단계이고, 부정
적 의미에서는 의사가 임상적 측면에서조차 환자의 권리를 알아서 "보장해줄" 
수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의사의 권리이자 환자
의 권리로서 의권을 정립하고자 한다면,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
라 환자 스스로 낫도록 돕는 것"이라는 고래(古來)의 금언, 혹은 "환자와 의
사, 보건의료 노동자는 건강의 공동 생산자(co-producer)"라는 줄리앙 튜더 하
트(Julian Tudor Hart)의 신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참된 의권 확립의 첫 걸음을 위해 

임기영 교수와 김용익 교수가 전거하고 있는 것은 서구 의료전문직의 역사적 
궤적이다. 우리의 의권 논의도 여기에서 출발할 수 있고 두 사람은 이에 훌륭
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의권이 '형성'되는지 '쟁취'되는지 여부는 서
로 다른 진영에서 벌이는 이념적 싸움박질은 될 수 있어도, 국민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것으로서 의권 논의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올바른 의권의 확립이란 우리 의사들이 이러한 문제에 천착
하고 당면 문제를 풀어나갈 때 비로소 참다운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 때문
이다. 


P.S.1. 본 칼럼은 필자가 희망연대 신문 [Rapport] 2호에 기고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P.S.2. 본 칼럼은 민중의료연합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