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1] 계급적 의료보장투쟁을 위한 우리의 과제
 
                                                                   2000년 2월 5일
                                                   민의련 보건정책연구실, 이진석
 
 우리 나라 의료보험제도는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작된 이래  1989
년 전국민의료보험 실시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 조합방식으로 운영되어 
오던 의료보험은 1998년 공무원·교직원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의 통합에 이어  올 7
월 예정된 직장의료보험의 통합으로 관리운영 방식의  일대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의료보험통합일원화는 1988년 농민들의 투쟁 이후 진보적 보건의료운동의 중요한 운동 
과제 중의 하나였다. 비록 관리운영방식의 변화가 의료보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직접적
으로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위한 유용한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우리는 당혹스러운 주장에 직면하게 되었다. "노동자가  봉이냐?"라
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그것이었다. 실제로 노동자가  봉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진
위 판단은 뒤로 미룬다손 치더라도 이 같은 노동자들의 항변은 상당히 보편적이고, 광
범위한 것이었으며, 의료보험통합을 주장해 온 세력들을 곤경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것
이었다. 
 
 작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의료보험통합을 둘러싼  노동계의 논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의료보장제도에 대해 수동적 
참여자에 머물렀던 노동운동진영이 의료보장제도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적인 참여자로 
급속하게 인입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1977년 당시 의료보험제도는 국가권력의 
통치력 강화를 위한 방편으로 도입되었다. 그리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
동이 본격화되었지만 억압적 통치체제와  열악한 경제적 조건하에서 노조조직의  사수
와 기본적인 임금인상 투쟁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
까지 노동운동은 의료보장을 비롯한 사회보장 일반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관심  이상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어진 논쟁을 거치면서 노동운동은 부정
적인 측면에서건 긍정적인 측면에서건  의료보험제도에 대해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
기 시작했으며, 이에 기반한 사회적 발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보험통합을 둘러싼 노동운동진영의 주장들은 자신의 운동적 이념과 노선을 온전
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는 상당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노총이야 애초에 노동운동의 대의와 원칙을 저버린 조직이기 때문에 재고할  가치
가 없다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민주노총조차 상당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금번 논쟁  과정을 거치면
서 확인하게 되었다. 최근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에 대해 흘러나오고 있는 민주노총의 
입장이 그것인데, 민주노총은  의료보험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연유가 
어찌되었든 현행보다 보험료를 더 내게 되는 노동자들의 반발은 어쩔 수  없다라는 것
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험료를 더  내는 노동자들이 과연  누구인가?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속해 있으면서 소득 수준이 높은, 그리고  대다수가 노조에 포괄되어 있는 조직노동자
들이 바로 그들이다. 전체 노동자 중 비조직노동자의 비율이 90% 이상이고, 1999년 현
재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 노동자들의 비율이 전체 임금 노동자의 53%(약 582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최소한의 경제적  이해조차도 집단적으로 요구할 수 있
는 틀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대표조직으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이들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 이들이 진정으
로 의료보장의 혜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 뿐 아니라, 민주노총이 이들의 요구를 포
괄할 때 명실상부한 노동자의 대표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보험
료에 대한 조직노동자들의 반발을 설득할 수 없다며 난감해할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
으로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노동자에게만 전가시키는 
국가권력과 자본에 대해 노동자의 노동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너희가  비용을 더 
부담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노총은 결국 조직노동자들의 경제적 이
해만을 대변하게 되는 동시에 조직노동자와 비조직노동자, 고소득 노동자와 저소득 노
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경제적 격차를 벌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
이다. 즉 당장의 경제적 이익은 챙길 수 있을지언정 노동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연대의 
기반과 노동계급이 사회적 보편계급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
이다. 
 
 그렇다면 계급적 관점을 견지한 노동자 중심의 의료보장투쟁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변혁운동의 역사는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융
합의 역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융합해  들어갈 노동운동이 조직적으로 대오를 준
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에는 우리가 불씨를 만들던가, 아니면 비록 작
고 미약하더라도 꿈틀대고 있는 불씨를 찾아 이를 키워내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주위
를 둘러보자. 우리와 함께 계급적 의료보장투쟁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나갈 노동운동의 
불씨가 어디에 있는지? 그 불씨가 있는 곳이라면 가시덤불과  진흙구덩이 속이라도 우
리는 달려나가야 한다. 그것이 서서히 빗나가고 있는 노동운동의 의료보장투쟁을 바로
잡는 길이요, 계급적 의료보장투쟁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준비하는 길이요,  민중의료
를 향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