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참패=정권 심판’ ?
이번 지방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를 했다. 곧장 ‘여당 참패=정권 심판’이
라는 등식이 등장했다. “노 정권 실정에 대한 민심의 심판” “내각 책임제라
면 정권을 내놔야 할 국민의 레드 카드”라는 말까지 나온다. 노 대통령으로서
는 지난 번 탄핵 발의 때에 못지않은 역풍을 또 한번 맞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필자로서는 이 민심의 정체, 민심의 소재에 대해 적잖은 의문과 회
의가 있다. 이번 투표율은 51.3%, 그러니까 유권자 절반 가량이 기권을 했다.
그 무언의 다수 (silent majority)의 민심은 무엇일까? 물론 우리는 그것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전 국민의 총의 (總意)를 헤아리려면, 당연히 이 ‘무언
의 민심’을 카운트해야 한다. 그 절반을 배제한 51.3%의 80%는 분명 전체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를 마치 전체의 민심인 양, ‘국민의 심판’ 운운 하
는 것은 침소봉대 이자 논리의 비약이라는 생각이다.
‘선거 참패=정권 심판’이라는 공식이 불합리한 또 다른 면이 있다. 이
번 선거 막바지 단계에서 일어난 야당 여당수 얼굴에 칼질이라는 돌발 사건이
표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한 동정표가 ‘싹쓸이’를
가능케 했다고 한다. 민주 선거의 원칙인 정책/인물 선택이 아닌, 어느 한때
사람들의 일시적인 감정의 폭발 현상을 진정한 국민의 여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노 정권 실정 (misgovernment)에 대한 심판”, 이를 곰곰히 생각해 본
다.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고, 그 시비를 가리기엔 아직 시기상조인 현
재 진행형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돼서 이번 선거에서 표를 던진 그 민심은 잘
한 것(들)엔 그렇게도 철저히 외면, 80%의 싹쓸이를 가능케 하였을까? 열 번
잘 해도 한 번 잘못하면, 모두가 헛것이 되기 때문일까.
누가 뭐라 해도, 참여 정부는 우선 정부 수립 이래 한국 정치의 고질이
던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었다. 대단한 일을 해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정의
무풍지대 이던 검찰/사법부를 이만치나 정화하고 또 독립 시켰다. 외부에서 날
아오는 쪽지를 보고 구형/선고를 일삼던 시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이젠 막
걸리 선거, 돈 선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깨끗한 선거 풍토가 마련됐다. 이
제 돈 뿌려 표 얻으려는 정치인은 자기 무덤 스스로 파는 꼴이 되지 않는가.
그리고 노 대통령은 사상 초유로 탈권위, 본격적인 민주화 시대를 열었
다. 한국 역사상 지금 만치 인권이 신장되고, 언론의 자유가 있고, 각 이해 집
단이 소리 높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일찌기 있었던가. 심지어
한 때 신성 불가침이던 대통령을 오늘 날은 시민/네티즌들이 ‘갖고 놀지’ 않
는가.
“경제가 파탄이다” “살기 더 어려워졌다”지만 작년 (05년도)에 해외
여행자/유학생 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그들이 외국에서 쓴 돈 (카드 사
용) 이 100억 달라가 넘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보유 외화가 넘쳐나 개인
들의 해외 투자를 적극 장려한다. 언론들은 있는 사람들이 돈을 안 쓴다, 장사
가 안돼 서민 생활이 말이 아니다 라고 비난 일색이지만, 고급 백화점/레스토
랑 일쑤록 붐비고, 고가품일쑤록 날개 돋힌듯 팔린다. 실업 문제만 해도 한편
으론 외국 노동력을 매년 20여만 명씩 수입한다. 이것이 경제가 파탄된 나라
의 살기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일 것인가.
그런데도 참여 정부의 인기가 말이 아니다. 왜 그런가? 두 가지 큰 이유
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노 대통령의 의욕 과잉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짧은 기간 내에
해보려/해내려 한다. “새 판을 한 번 짜 보겠다”는 다분히 이상주의 의욕,
숱한 난관과 거센 역풍을 맞을 수 밖에 없다. 혁명 보다도 더 어렵다는 개혁,
민주 체제에서 그 하나 하나 모두 민주 절차를 거쳐야 하니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일 것인가.
두째는, 우리 국민의 “빨리 빨리”하는 조급성이다. 그 무엇이든 단 시
간 내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그것도 내 몸 내 피부에 와 닿게 효
과가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장 실망하고 분노한다. 지금 없는 사람
들의 입에서 조차 불평/불만의 소리가 나오는 연유다. “개혁, 개혁 하면서 개
혁된 것이 무엇이냐?” “부동산 값 잡겠다더니 어디 잡혔느냐?” 현재 진행
과정은 무시한채 지금 당장 결과를 내보이라고 아우성이다. 집권 3년 여 정부
에 너무나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다.
노 대통령은 언젠가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오늘
날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인간의 기본권인 거주권의 개념은 사라지고, 오직 있
는 사람들의 치부 수단, 투기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고. 역대 대통령 중 어
느 누구가 문제를 이렇게 사회정의 입장에서 접근, 최대다수/최대복리를 위해
풀어 보려고 심혈을 기우린 사람이 있었던가.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노 정권 남은 임기 1년 6개 월여, “고 마이 웨이” 할 수 밖에 없다.
“독선/ 아집을 부린다”는 비난/매도가 거세지만, 그 평가는 먼 훗날 역사에
맡기고, 스스로 말한대로 “역사적 책무를 다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우물가에 가서 슝늉 달라”는 조급성을 누그려 뜨려
야 한다. 그 가는 방향이 옳고, 일하는 사람들의 열의가 보인다면, 좀 느긋이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근 반 세기 동안 쌓이고 쌓인 각종 적폐를 뿌리 뽑는 일
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장동만:e-랜서
칼럼니스트>
http://kr.blog.yahoo.com/dongman1936
저서: “조국이여 하늘이여” & ‘아, 멋진 새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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