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정약용 선생 울다!

본시 법과 제도란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다스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 가
진 자에게는 자비롭고 없는 자에게는 가혹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법과 제도
가 몰인정하기로는 예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였다. 조선 후기, 민중의 처절한 
삶을 그린 시 한 편을 보자.

갈밭마을에서 젊은 부인 울음소리 길고 긴데
관청 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향해 부르짖네
전쟁터에 간 남편이 못 돌아오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예로부터 남자가 스스로 성기를 잘랐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소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을 입었고, 
갓난아이는 아직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삼대 이름이 군적에 올랐다네
짧은 언변으로 하소연하러 갔더니 범같은 문지기 버티고 있고
관리가 소리치며 마구간에서 소마저 끌고 갔지요
남편이 칼을 갈아 방에 들어가자 피가 자리에 흥건한데
"아이 낳은 죄로구나" 스스로 한탄하더이다.
(중략)
세도가의 집에서는 일 년 내내 풍악을 즐기지만
쌀 한 톨, 비단 한 조각 바치는 일 없구나
(후략)

이 시는 1803년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당시에 지
은 '애절양(哀絶陽)-남자의 성기를 자르는 슬픔'이다. 정약용 선생은 <강진 
인근 갈밭마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았는데, 태어난 지 3일 밖에 안 된 아
이가 군적에 올라가, 관리가 아이의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 가니 남편이 "내
가 이 물건 때문에 이런 재난을 받는구나"라며 성기를 칼로 잘라버렸다. 그
의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성기를 들고 관가에 가서 호소하였으나 문지기
가 막아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문란한 조선 후기, 민중이 겪은 고통은 차마 입에 담기 참담한 것이었다. 오
죽하면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차라리 돼지우리로 던져버리는 편이 낫다는 말이 
있었겠는가? 한 평생을 노동과 굶주림으로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돼지 먹
이가 되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삼정문란으로 지칭되는 혹정으로 인해 온 
가족이 야반도주를 해서 화전민으로 산 속을 떠도는 것이 다반사였고, 어떤 
경우에는 한 마을이 통째로 야반도주를 하기도 했다. 관아에 가서 행패를 부
리다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했고, 산 속에서 밭을 갈
아먹던 일부는 도둑떼로 둔갑하기도 했다. 급기야는 여기저기서 민란이 발생
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도 돈 있고 행세 꽤나 한다는 치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떵떵거리
며 살았다. 양반에게 세금을 물리려던 시도들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양반에
게 세금을 물리고자 했던 몇몇 왕들은 왕권까지 위협받았다. 사대부의 나라
인 조선에서 사대부가 세금을 내는 일이란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
약용 선생은 "백성들은 흙으로써 밭을 삼고, 관리들은 백성으로써 밭을 삼는
다"며 그 혹독한 시절을 통탄하였다.

지금이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지난 11월 2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2003년도 건강보험료를 8.5%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내년도 예상 적자를 메우
려면 이 정도의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올해 애초 예상
보다 7,000억원이나 보험료를 더 납부해서 보험재정 적자를 메우는데 크게 기
여한 노동자·민중은 내년에도 온 몸을 내던져 보험재정 적자를 메워야 할 처
지에 놓이게 되었다. 보험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체납보험료 징수도 매섭
게 이루어지고 있다. 가혹한 체납보험료 징수의 문제점을 지적한 한 신문기사
를 보자. 

전남 화순군 김○○(72.여)씨는 유일한 재산인 10평 남짓한 집을 날릴 처지
에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료(31만여원. 월 보험료 3천원) 체납액을 
납부하라면서 지난 7월 말 집을 압류했기 때문이다. 金씨에겐 아들(50)이 있
지만 두 차례 교통사고를 당한 지체 장애인이라 부양능력이 거의 없다고 한
다. 金씨는 "소득이 없어 당장 먹고 사는 게 걱정인데 보험료를 어떻게 내느
냐"고 한숨지었다. (중략) 공단 홈페이지와 전국 지사에는 "체납 때문에 건강
보험을 이용하지도 못하는데 재산까지 압류하느냐"는 항의가 쇄도하고 있다. 
넉달치 보험료 4만3천원을 체납했던 조모(44.여. 경남 마산시)씨는 지난 7
월 장사하는데 사용하는 1t 트럭이 압류됐다. 관광버스를 운전하던 윤모
(54. 강원도 화천군)씨는 지난해 3월 체납된 보험료(19개월치 43만원) 때문
에 임금 압류 통지서가 회사로 배달된 뒤 "회사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
로 해고당했다. 복학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의 월급(50만원)이 부모의 체납보험료 때문에 압류당한 경우도 있
다. 중앙일보 2002.9.30. 

지난 11월 18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전국사회보험노조 간부의 투고에 따르면, 
보험료 징수 실적이 미진할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침 때문에, 공단직원들은 노인독거세대든, 장애인이든 가리지 않고 마구잡
이로 압류와 공매를 실시하고 있다. 게다가 체납된 보험료를 납부하더라도 고
율의 연체료와 압류, 공매비용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욱 가중되
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에게는 이렇듯 엄격한 법과 제도가 기득권층에게는 부드럽
고, 자비롭기 한량없다. 올해 보험료 상한선을 낮추면서 고소득자들의 보험료
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이나 인하되었다. 월 소득이 수억원
에 이르는 고소득자와 백 몇 십만원에 불과한 노동자가 같은 보험료를 내고 있
지만 이를 바로잡을 생각은 하질 않는다. 독거노인의 수십년된 TV에 압류딱지
를 붙이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방자치단체가 납부하지 않은 체납 보험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체납 보험료를 받을 때에도 연
체료 따위는 없다. 지난 2년 사이에 의원 수입이 60% 이상 늘어났다. 그러
나 의료계는 내년도 보험수가가 2.97% 인상으로 결정되자 이에 강력하게 반발
하고 있다. 적어도 보험수가는 8% 이상 인상되어야 하고, 이를 메우기 위해
서 보험료는 14.4% 인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노동자·민중 등
골 빠지는 이야기다. 

요즘 세상에 세금이 과하다고 성기를 잘라 통곡할 일은 없겠지만, 가진 자에
게는 자비롭고 없는 자에게는 가혹한 법과 제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
다. 자신의 노동에 걸맞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소득에 걸맞는 정당한 보험료
와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에게 세금을 물리려는 시도와 다
를 바 없을 지 모른다. 조선 후기, 사대부에게 세금을 물리려던 겁 없는 왕
의 왕권이 흔들거렸던 것처럼 '노동에 걸맞는 정당한 대가'와 '소득에 걸맞
는 정당한 부담'은 한국사회 계급 지배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그러니 
어느 법과 어느 제도가 감히 그런 일을 할텐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다만, 
타락한 지배계급에게 된서리를 내렸지만 결국은 좌절하고만 갑오농민전쟁, 
그 통한의 역사가 이제는 다른 식으로 재연되길 바랄 뿐이다. '가진 자'라고 
언제까지 누리기만 하고, '없는 자'라고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