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료보험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박형근

○ 민간의료보험 도입 - 무책임의 합리화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얼마 전 현 의료보험제도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민
간의료보험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보완적 도입은 현재 의료보험의 
비급여 대상에 국한하여 민간보험을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민간의료보험 도입 시도는 그동안 국가의 보건의료에 대한 책임 이행을 강력
하게 요구해온 민중들의 투쟁을 철저하게 기만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의 급여확
대와 국고지원 확대를 요구해온 민중들에게 네 능력 것 알아서 하라는 식의 대
답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민간보험이라는 카드를 통해 민중들의 요구에 대하
여 돈이 없다는 항변만을 늘어놓던 수세적인 자세에서 공세적인 자세로 돌변하
는 효과마저 누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최소한 이 땅의 관료들도 '복지국가'라는 담론에 대하여 부정은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그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운동진영에서는 국민
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며 보건의료 재정 확보를 위해서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정부를 압박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그런데, 이번 민간의
료보험 도입 발표를 지켜보면서 더 이상 그 전제가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
게 된다. 관료들은 이제는 보건의료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이념적 
경향으로 탈바꿈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보건의료시장에 대한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보건의료의 
시장실패를 야기하는 '보건의료 시장에서 정보의 불균형'이라는 기본 전제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논리는 보건의료시장에서 소비자는 지식과 정
보의 공유를 통해 더 이상 무지하지 않으며,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의 생산을 통하여 시장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신념에 기초한 가치체계에서는 국가의 
보건의료시장에 대한 투자를 통한 적극적 개입은 오히려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
을 통한 시장 효율의 극대화를 모색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정부의 실패
를 초래하게 되는 잘못된 정책일 뿐이다. 대신에, 국가 개입의 범위를 정보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를 생성하여 시장기제가 원활하
게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국한시키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 딱 들
어맞는 정책방안이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이다. 


 ○ 민간의료보험, 과연 제한적일 수 있을까?

 지금 정부는 민간의료보험이 보완적인 역할에 국한될 것이라며 애써 그 의미
를 축소시키고 있지만 실제로 민간보험이 사회보험에 대한 보완적인 역할에만 
머무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해석되는 이유는 첫째로 현재의 의료
보험이 급여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사회보험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
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사회보험의 약화를 초래할 수밖
에 없다는 것이고, 둘째, 조만간 이루어질 국내 보험시장의 해외개방이후에는 
외국의 세련된 보험상품들이 사회보험체계를 극도로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한번 시장에 진입한 자본은 확대재생산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기 때
문에 이에 가장 큰 걸림돌인 사회보험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수단이 동
원될 것이다. 결국 보완적인 범위에서나마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는 것도 사회
보험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켜 결국에는 민간보험 중심 체계로 전환되는 효과를 
지니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 민간의료보험,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직 정부의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무어라고 언급하기
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보완적인 범위의 민간의료보험에 국한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정부는 민간보험의 도입으로 의료보험 급여 확대의 부담을 확실하게 덜
게 될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민간보험에 가입한 사람들
이 비보험 항목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어 이에 대한 수요와 공급자 유인이 증가
하여 의료기관의 수익 증대가 예상된다. 그런데, 이러한 수입증가는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관과 경쟁력 있는 중소 기관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
금 우리의 현실에서 값비싼 민간보험료를 내고서 일반 중소병원이나 의원에서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싶다. 그렇지만, 민간의료보
험의 도입은 공급자들에게 새로운 경영전략을 도입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기 때
문에 전체적으로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찬성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일 것이다. 그
리고, 최신 경영기법에 의해 관리되는 심사요원들에 의한 보다 엄격한 청구심
사와 일부 보험자의 횡포도 예상되지만 민간보험이 사회보험체계를 무력화시키
는 시점까지는 의료기관이나 고객에 대한 통제를 노골적으로 전면화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보험산업과 의료기관 경영이나 정보와 관련된 산업의 성장
이 예측되며, 병의원 경영이나 관리와 관련된 교육기관이 특수를 누리게 되고 
관련 인력의 주가가 높아지는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의료이용자의 측면에서 보면 월 보험료로 몇 십 만원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
은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제도가 될 듯 싶다. 소유한 만큼 남 다른 급여를 받
을 수 있는 차별화 된 상품들이 속속 개발될 것이며, 아마도 병원들은 이들에
게 좀 더 친절 하려고 할 것이고, 남들 보다 다른 서비스를 받는 다는 우월감
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험료 부담 능력이 없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민간보험은 그림의 떡일 것이다. 민간보험의 도입으로 사
회보험의 급여확대는 기대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높은 수준의 본
인부담에 기존에 없던 심리적 박탈 감마저 추가되는 상황에 맞닥트릴 것이다. 
지금 나온 의료보험 상품들이 대략 1인당 월 4만원을 초과하는 수준인데,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잡으면 적어도 16만원을 넘고, 기존 보험료를 합치면 월 의료
보험료가 총 20만원을 훌쩍 뛰어 넘는 수준인데 과연 이만큼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의료이용의 불평등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키는 계기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결국, 민간의료보험은 반민중적인 제도일 수밖에 없다. 민중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값비싼 보험료는 결국 보험회사, 의료기관, 주변 관련산업의 수익확
대에 기여하게 될 뿐이며, 그 돈 마저 없는 경우는 차별적 대우를 감수할 수밖
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 돈을 사회보험체계로 흡수하게 된다
면 소수만이 받는 급여수준을 전체 민중에게 확대시키고도 남을 수 있다. 가
진 자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가려는 현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