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되는 환자만 가려서 받는다?

회원 김정연

- 세브란스 병원의 산재요양기관 지정 반납에 대하여 -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금년 5월 1일부로 산재요양기관 지정을 반납하고 더 이
상 산재환자를 진료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현재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3차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 아산중앙병원, 삼성서울병원, 강남 성모병원, 원자력
병원 등이 산재요양기관 지정을 하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이 지정을 반납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핵심적 종합병원이 산재 요양기관 등록
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재요양기관 등록은 법적인 강제규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일정 요건을 갖춘 
의료기관이 근로복지공단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성사되는 데 이번 세브란스의 
사태처럼 의료기관이 스스로 요양기관 등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
지고 있어 산재환자의 진료거부는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핵심적 종합병원들, 산재환자 치료 거부하는 셈

지금까지 의료기관들은 산재 환자에게서 진료의 수익성이 크게 보장되지 못한
다는 점을 고려하여 산재 환자의 진료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왔으며, 따라
서 환자의 수가 적은 종합병원이나 개원가를 중심으로 산재환자 유치에 관심
을 갖는 왜곡된 구조를 낳아왔다. 그렇다면 대형 종합병원에서는 산재환자를 
꺼리고 준종합병원 수준의 병원에서 산재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
인가. 병원의 생산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병상회전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산
재환자는 일반환자보다 재원기간이 길기 때문에 입원 초기에는 각종 검사를 하
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만 치료만을 위하여 입원하는 기간의 수익성은 상대적
으로 낮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산재요양비 지급기준의 협소함이 산재환자 기피의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입원치료 중 발생하는 합병증이나 후유증 등이 산
재로 인정되지 않고 있어 이런 경우에는 환자가 본인부담으로 치료하거나 아니
면 치료를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병원의 입장에서는 귀챦은 절차상의 문제와 
함께 진료비 삭감의 위험부담을 동시에 지게되는 셈이다. 

필자는 인턴시절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산재의료관리원 태백중앙병원에
서 내과 병동 주치의로 근무한 적이 있다(의사가 부족하여 한 명의 전문의가 
250명을 책임지고 그 밑에 인턴 2명이 주치의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는 약 250명의 진폐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야말로 남은 삶을 
병원에서 마감하는 것 이외에는 살아갈 방도가 없는 퇴락한 노동자들이었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3-4명이 사망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간경화로 인한 상부위
장관출혈 환자가 많은 것이었다. 필자는 진폐 환자들은 호흡부전으로 사망하
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실상은 대부분
의 탄광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상 육체적 소모가 많기 때문에 술을 걸게 마시는 
편이고(술은 좋은 칼로리원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 술은 유일한 인생의 안식처인 셈이었다. 따라서 간장 질환을 다수의 
환자가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요양비는 진폐증에 대한 것만 나오기 때
문에 돈이 없는 환자들은 간경화와 같은 중증 간질환이 생긴 이후에도 전혀 치
료를 원하지 않았다. 

최근 자살한 산재노동자 위성태씨도 요양중 발생한 정신질환이 그 원인이 되었
으나 공단은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요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산재요
양 급여의 확대를 통하여 적절한 산재노동자의 진료 뿐 아니라 의료기관의 산
재환자 기피도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기관 산재환자 기피 심각한 수준

모든 환자는 질환의 중등도에 의하여 수준에 맞는 의료기관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산재환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가 있다. 강남에 사는 부자의 감기는 치료하고 
산재환자의 잘린 손가락은 이어주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이 되
지 않는다.

장기간의 요양이 필요한 산재환자가 직업으로 원활하게 복귀할 수 있는 재활병
원이나 장기요양병원이 충분히 마련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직업병은 특성상 일
반질환과 구별되게, 진단을 위해서는 작업공정에 대한 역학조사로부터 시작하
여 각종 첨단 진단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98년 망간에 의한 
파킨슨씨병이 직업병으로 인정된 경우에도 PET 촬영(우리 나라에는 2개 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의료원에만 있음)까지 하고 나서야 망간에 의한 것임이 명확
해 진 바 있다. 현재 국내 최고의 진단 시설과 의료진을 자랑하는 이들 병원에
서의 산재환자 진료의 원천적 봉쇄는 직업병 진단의 기회조차도 노동자들로부
터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대다수 의료기관이 수익성을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내용을 
재구성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어 소위 '돈벌이가 되는 환자'만이 병원의 
환영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각 의료기관에서 홍보하고 있는 '환
자 중심의 서비스 개선'이라는 허울 좋은 미사여구 뒤에는 바로 이윤을 좇아 
의료서비스를 개선한다는 냉엄한 자본의 논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환자 기피는 직업병 진단의 기회마저 빼앗는 것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기관 지정 반납 사태는 여타 대형의료기관에도 영향을 미
쳐 산재환자들을 또 한번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이 연출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브란스 병원의 산재요양관 지정 반납 사태는 일개 사립병원
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산재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또 한번 제한하게 하
는 구조적 변화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재문제는 주지하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
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해 이상관 투쟁의 경험을 통하여 확인 된 것처럼 산재
를 당하고도 각종 제약과 조건 때문에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
황들이 만연되어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투쟁이 승리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요양관리 제도 개선이 일부 형식적 수준에 머무르고 만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
다. 따라서 산재 요양관리상의 문제점인 요양관리기관 지정과 관련된 문제점
을 중심으로 요양관리제도 개선을 위한 투쟁이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의 내용은 민중의료연합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