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징계를 보며

의약분업과 의보통합 등 의료개혁에 앞장 선 두 의과대학 교수에 대한 대한의
사협회(의협)
윤리위원회의 징계가 내려졌다. 이번 징계는 메카시즘, 비공개 일사천리로 진
행된 과거 독재정권 하 군사재판의 악몽,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수구세력의 
사상검증 시비를 연상하게 할 만큼 무자비하고 몰상식한 폭거이다. 의협 윤리
위원회는 수많은 외부의 비판과 의협 내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강행하
였다. 우리는 이를, 의협 회원 2인에 대한 의협 내부의 징계를 넘어, 의협 내 
일부 강경 세력이 향후 우리 의료의 방향에 대한 자신의 집요한 의도를 사회적
으로, 정치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본다. 수많은 사회단체들이 이에 대하여 자신
의 비판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징계를 주도한 세력은 7월 11일 발표한 [징계사유]나 [김용익과 조홍준
이 소속돼 있는 건강연대가 의료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 구체적 사례들]을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혀 왔다.
구구한 나열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크게 의사의 경제적 이익과 권위에 대한 침
해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와, 극도의 사적 성격을 지닌 현 의료체계
의 개혁에 대해 보인 과민반응으로 요약된다. 심지어는 "의료계를 사회주의화 
내지 공산주의화하는 데 앞장 서 왔음을 모든 의료인에게 공개하는 바이다"라
고 하면서, 철지난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하는 유치한 선동까지 덧붙이고 있다.

우리는 먼저 이번 징계 조치 자체의 부당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미 많은 사
회단체들이 성명과 논평을 통해 밝혔듯이, 개인의 양심과 정치적 소신에 따른 
행위를 회원에 대한 징계로 해결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처사이다. 우리는 수많
은 의사들이 저질러 온 비윤리적 행위들이 그동안 의협 윤리위원회에서 징계
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윤리위원회의 징계의 대상이 되
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이번 건에 대해서는 갖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징계를 강
행하였다. 조직에 대한 맹목적인 보호본능과 이단자에 대한 가혹할 정도의 복
수는 언제나 함께 하는 법이다. 이는 독재정권이 권력과 기득권의 부패, 비리
에는 눈을 감으면서도 그것을 고발하는 양심 세력에게는 국가보안법의 칼을 겨
누었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꼴이다. 의협의 징계는 근대사회 이후 기본권
으로 인정되고 있는 양심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조치일 뿐이다.

또한 우리는 의협 내부에서 비합리적인 강경 세력의 득세와 주도, 그들의 대사
회적 행태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모
든 개혁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의 사적 의료체계가 대다수 국민에게 불
신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를 비롯한 공급자들에게도 많은 불만을 낳
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김용익, 조홍준 교수는 의료정책의 전문가로서, 대학
병원의 임상 교수로 일하면서, 누구보다도 우리 의료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은 의사들이 진정 명예롭게 의업을 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과 국민을 위한 의료체계를 만드는 일이 다르지 않다
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실천하였다. 그들은 국민과 의사가 한정된 재원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며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의사가 한편에 서서 정부에 의
료체계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환경이 형성되기를 염원하였다. 그런 환경은 의사
가 돈을 위하여 환자를 진료하고 자본을 축적하도록 만들고 있는 현재의 의료
체계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의사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인이 아닌 전문가로서 
거듭나야 한다. 의약분업을 전후한 의료대란이 있기까지 많은 의사들, 특히 젊
은 의사들은 그들의 합리적인 주장에 공감해 왔고 어떻게든 일대 수술이 불가
피하다고 느껴 왔다. 그러나 현재 징계를 주도한 의협 내 강경 세력은 이를 정
면으로 거부하면서 여기에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딱지를 갖다 붙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의사 집단 내부는 '배신자'에 대한 응징과 복수의 목소리만이 
높게 울려 퍼지고 있고, 상식을 가진 많은 의사들은 그에 대해 침묵하고 있
다. 이는 의사 집단 내부를 위해서도 불행할 뿐만 아니라 향후 우리나라 의료
를 위해서도 암울한 일이다. 김용익, 조홍준을 밟고 27일 의사결의대회로 세
를 몰아가고 있는 의협 내 일부 세력은 자신의 입지를 위하여 의료개혁의 전망
과 의사의 진정한 자존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의사들이 이번 의협 윤리위원회의 폭거를 규탄하고 반성하기를 기
대한다. 또 향후 국민과 의사 모두를 위한 합리적 의료정책 수립의 일 주체로 
새롭게 서 나갈 것을 기대한다. 의협 인터넷 홈페이지 첫화면에는 "국민을 위
한 열린 의협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와 있다. 우리는 이번 징계 조치와 
그 말을 도저히 함께 이해할 수가 없다. 진정 국민을 위한 열린 의사단체가 되
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의협은 겸허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2002년 10월 14일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