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련칼럼3] 의사들, 총구를 정확히 겨눠야 한다


최 용 준 / 민중의료연합 


정부의 설득과 회유, 압력에도 불구하고 17일 4만명에 가까운 의사들이 여의도
광장에 모였다.「잘못된 의약분업 바로잡기 전국의사대회」. 이 대회의 명칭이
다. 작년 11월 장충단공원에서 있었던 집회, 그리고 이번 집회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의료의 사회적 측면에 대하여 의사들이 관심을 가졌던 일은 없었다. 물
론 이따금씩 언론이 지면의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이름 
없는 '슈바이처'들을 소개한 일은 있었으나, 모순덩어리 그 자체인 우리 나라 
의료제도를 주시하면서 행동으로까지 이렇게 실력행사를 했던 기억은 없다. 아
니
다. 나의 기억으로는 1988년이던가 1989년이던가 의보수가 인상문제로 의사들
이 집단휴진을 하려던 때가 있었다. 나는 당시 예과생으로 그 때 서울대병원장
이던 고(故) 한용철박사가 했던 말 때문에 기억이 생생하다. "수가인상은 필요
하다. 허나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되나?" 

아무튼 대부분의 시민들이 '고소득자'라고 보는 의사들이, 그것도 일부라고 보
기 힘든 4만에 가까운 의사들이 정부와 시민단체가 그토록 비난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행사한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따라서 그 놀라움 속에는 나름
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실제 일부라 하더라도 적지 않은 동네의원들이 '경
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린 두 아이를 
가진 30대 후반의 젊은 어머니가 더 이상 의사 노릇을 할 수 없다고 치렁치렁
한 머리칼을 싹둑 잘라버린 사건을 쉬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생각은 
그렇다. 동네의원들의 '경영'을 이토록 심각하게 만드는 현재의 정부의 의료재
정은 문제가 있다. 그 내용은 살피고 가리더라도 이 문제를 '앞으로 점진적으
로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는 말 정도로 그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왜 비난 받는가?

그런데도, 그런데도 왜 의사들은 비난 받는가? 적지 않은 언론들이 나와 마찬
가지로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의사들을 비난하고 있다. 언론뿐인
가? 의사들이 '갑작스레' 비난하게 된 시민단체도 그렇고, 노동조합도 그렇
고, TV 인터뷰에서 기자에 걸려든 시민들도 그렇다―단지 표면상으로 잠자코 
있는 것은 정치권뿐이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 적어도 의사와 직접적 이해관계
가 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사를 비난하고 몰아부친다면, 의사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많은 사람의 평가가 똑같다면 돌이켜보아야 
한다. 

이번 집회를 준비하면서 의사들은 많은 논쟁을 하였고 요구의 내용과 요구를 
할 대상에 대해서도 고민했겠지만 실은 그 어느 것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했
다. 무엇보다 스스로 말하듯이 오는 7월로 예정되어 있는 '의약분업'을 하지 
말자는 얘기인가? 그것도 아니다. 이미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가 시행되고 있
는 마당에 의약분업을 하지 않는다면 동네의원의 '경영'은 악화되면 악화되었
지 나아질 것이 없다. 물론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의약품
에 대해서 대체조제를 허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은 옳다. 그것은 정부의 잘
못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문성을 주장하는 의사들의 참여 속에서 해 나가야할 
문제다. 지속적으로 신약이 만들어지고 다종다양한 카피 제품들이 시장에 나오
는 상황에서 어찌 처음부터 완벽한 시험을 거칠 수 있겠는가? 문제점으로 지적
하는 임의조제도 마찬가지다. 결국 지역단위 병의원과 약국의 협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의약분업 자체의 성격상, 법률도 법률이지만 의약사간의 실질적 
협력과 부단한 의료관행의 수정 속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약사'라
는 파트너십이 존재하는 마당에 실증 근거 없는 '전문성'과 감정 섞인 '논리 
전개'가 어찌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제기한 두 가지 문제들
은 사실 의약분
업을 반대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의약분업이 계기가 되었으나 실상 의
사에게든, 약사에게든, 국민에게든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의료재정의 불충분함

그게 무언가? 당연하게도 그것은 원활한 의료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토
대다. 이는 의사와 약사에게는 경제적 보상으로, 정부에게는 예산 문제로, 민
중에게는 보험료와 본인부담의 문제로 드러난다. 경제적 토대는 서로 다른 주
체들에게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측면을 드러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
래서 의사나 약사의 요구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이 
증액되든지 민중의 직접 부담이 늘어나든지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경
제적 보상을 요구하면서 그 원천을 어디에서 찾을 것은 요구하고 있는가? 아
직 의사들은 이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동네의원의 어려움과 절
박함을, 그리고 그 어려움이 지속될 때 나타날 수 있는 국민건강상의 위해만
을 경고할 뿐이다. 이것은 지난번 KBS 길종섭의 쟁점토론에서 사회자의 같은 
질문은 의사측이 피해나간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 망하게 생겼는데… 
(그런 얘기를 할 계제냐)'.

사실 우리 의료의 진정한 문제는 의사들의 경제적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아프기 전에는 쉽게 의료기관에 갈 수 없다
는 점. 치료에는 민중 개개인의 엄청난 직접 부담이 요구된다는 점, 몸이 아프
더라도 노동시간중에 병원에 갈 수 없다는 점, 직장인 산업현장에서 노동행위 
그 자체 때문에 노동자가 다치고 병들며 목숨을 잃는다는 점, 아프기 전에 건
강을 지키기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는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문제의 근원에
는 건강 이전에 노동과 노동규율을 앞세우는, 건강에 앞서 돈벌이와 이윤논리
를 중시하는 현실이 있고, 이 현실은 우리 나라 기업과 자본가들이 존재 조건
이기도 하다. 이것을 문제 삼지 않고 어떻게 국민건강 어쩌고 하는 말을 어찌 
그리 대담하게 할 수 있을까?


의사들, 총구를 정확히 겨눠야 한다 

백번 양보하여 의사들의 최근 움직임이 의료의 재원 마련을 요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누구에게 요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에 대한 분명한 주장을 제기해야 한다. 해답은 자명하다. 바로 국가가 부담할 
것은 요구하고, 정부가 예산을 확대 편성할 것을 제기해야 한다. 예컨대 시민
단체들이 주장하는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50% 약속이행이나 보건의료
예산 두 자리수 증액이 그런 요구다. 민중들은 의사들의 경제적 보상을 위해 
보험료를 더 부담할 여력이 없다. 노동자들이 생존권 사수에 나서 군화발에 짓
이겨
졌을 때, 농민들이 보험료 납부거부 투쟁을 하며 국민에 호소하였을 때, 빈민
들이 건강의 최소조건인 안전하고 따뜻한 집을 잃고 거리로 밀려 났을 때, 국
민건강을 수호한다는 의사집단이 어떤 발언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정부에 대
해 민중건강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고 어느 의사 한 사람이고 양
심선언을 한 적 있는가. 늘상 그렇듯이 선거철만 되면 뒷간의 파리떼처럼 날아
드는 정치권을 향해 선심공약 남발 말고 복지재정 확충하라고 일침을 놓은 적
이 있는가. 국민건강을 위해 데모를 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민중이 건강을 지키
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마저도 상실해 가는 이 현실에 대해 발언하지 않고
서 '의약분업 제대로 하라'니 '동네의원 망한다'니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
가. 

의사들, 총구를 정확히 겨눠야 한다. 정말 국민건강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무엇
인지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정부가, 국가가, 한창 돈벌어 쓸데가 어딘지 즐거
운 고민을 한다는 자본이 땀흘려 일한 노동자 민중의 건강을 위해 더 많은 예
산과 더 많은 부담을 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사실 문제의 핵심에 벗어난 
채 '의약분업 바로잡기'를 외칠 것이 아니라, 당신들을 비판하기 때문에 당신
들이 미워마지 않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요구가 본질적으로 당신들이 주
장해야 할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의사들이 진정 국민건강
을 위한
다면, 당신들의 집단이해는 이 땅의 대부분인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적 요구와 
건강을 향한 희원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의사들, 민중과 시민단체
가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 자본에 대하여 정확히 총구를 겨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