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의약분업 안 반대를 둘러싼 의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의약품 
분류, 약사들의 임의조제 가능성, 환자의 불편, 수가보전의 문제 등이 그 반
대 이유이다. 그러나, 의사들이 이러한 문제들만으로 그렇게 반발하는 것 같지
는 않다. 진정 이것만이 문제였다면, 전국의 거의 모든 의사들이 거리로 나돌
고, 전국적인 동맹 휴업이 가능했을까?

의사들은 왜 반발하는가? - 시장개입에 대한 저항

의사가 되기까지 한 개인은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의료기관 개설하는데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도 의사들 개인의 투자이며, 여기에 막말로 누구하나 돈 
한푼 보태준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 투자만큼의 기대가치가 실현되기를 바라
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에게는 가급적 제3자의 시장개입이 적은 
시장질서일 수록 보다 유리한 조건을 형성한다. 지금까지의 우리 나라 보건의
료 시장이 비교적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의사들은 보건의
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보건의료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강화되면서 의사
들의 기대가치 실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시장'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추종
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작금의 현실에서 그 동안 보건의료 시장에 
무관심으로 일관한 국가와 난데없이 덩치가 커진 시민단체가 의약분업 정책을 
매개로 보건의료 시장에 개입하면서 의사들과 의료기관의 수입이 상당부분 감
소하였다. 이것이 그 동안 낮은 수가의 의료보험과 보험 삭감에 대한 분을 삭
혀오던 의사들을 자극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
사들이 갖는 불만의 핵심이 현 의약분업 정책 안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있다기
보다는 의료보험 도입이후 의료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이 의사들의 기대가치를 
끊임없이 끌어 내려온 현실에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러
한 의사들의 정서는 일부 의사들이 통신상에서 우리 나라의 의료 현실을 '사회
주의적 의료'라고 내뱉는 말이나, '의료보험은 왜 당연시되는가?'라는 의료보
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의사들의 반발은 극단적 자유주의 논리를 그 배경으로 하고있다는 점
이 특징적이다. 2차 세계 대전 이래 보건의료분야는 '시장 실패'가 인정되는 
대표적인 분야로 보건의료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대부분의 자본주의 경제
학 교과서에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보건의료 시장
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저항하는 의사들의 입장은 이념적 스펙트럼 상 '오른
쪽 끝'에 위치하게 된다. 둘째, 의사들의 이러한 반발은 '집단 이기주의'적 성
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시장 진입에 독점권을 지닌 공급자가 존재하는 시장에
서 제3자 개입에 반발하는 행위와 주장은 시장의 특성상 공급자의 이해에 충실
할 수밖에 없으며, 하물며 독점권을 지닌 집단이 제3자 개입에 저항하는 행위
는 시장을 교란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은 지금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이러한 
상황은 시장에 개입하려는 제3자의 입장에서 의사들의 이러한 측면을 부각시킬
수록 유리하며, 그럴수록 의사들은 불리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
이다. 


시장개입의 주체 - 국가와 시민단체

앞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근 50년 이상 국가가 보건의료 시장을 방임
해 놓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서 갑자기 시민단체와 함께 보건의료 시장
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고 있다. 지금시점에서 강력한 드라이가 걸리는 데
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 첫 번째 이유로 현재의 의약분업 실시에 크게 관여하고 있는 시민단체에 주
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시민단체는 그간의 민주화 투쟁 과정을 통해 형성
된 자생적 자유주의 이념을 대표하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은 합리적 시장질서 
구축과 공정한 게임규칙의 정립을 주장하며 우리사회 개혁에 있어 가장 큰 목
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방향은 우리사회 지배권력이 추구하는 
국가적 개혁과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 둘은 이러한 기조 위에서 봉건적 잔
재와 기득권의 이해를 타파하며,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 질서를 구축해가
고 있다. 이들의 행보가 행여 다르게 보이는 것은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른 추
진 속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이 보건의료분야에 투영된 대표적인 사례가 의약
분업이다. 합리적 시장질서의 구축을 통해 비효율과 불합리를 제거하려는 이들
은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는 시장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있다. 
시민단체 입장에서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는 것과 총선 시민연대를 통해 퇴출 정
치인 명단을 발표하는 것과 의약분업을 추진하는 것은 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시민단체가 의료시장에 개입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비자 주권의 문제이다. 많
은 의료소비자들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적극적 개입
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일부 시민단체를 통해 이러한 움직임이 표
출되고 있다.
둘째는 국가의 입장에서 보건의료비의 증가는 국가경제의 잠재적 부담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 국민의료비는 GDP대비 6%수준이다. 결코 높지 
않은 수준이지만 문제는 증가 속도에 있다. 우리 나라처럼 민간 자원이 우세
한 미국의 경우 1960년대에 5-6% 수준이던 것이 지금은 15%에 이르고 있고, 금
액으로 보면 년 1조 달러에 이른다. 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낮추기 온갖 시도들
이 이루어져 왔건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국가의 입장에서 직접적 산출물이 없는 보건의료 산업의 규모가 확대되는 것
은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대한 부담요소를 통제하
고자 하는 이해를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의 경우는 지금부터
가 그 시작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국가의 개입이 경제적 토대가 취약
한 조건에서 추진되는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공급자에게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불가능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만이 살아남는 
경쟁체제의 구축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급자간의 경쟁을 왜곡하는 
음성적 재정기전은 언젠가는 철퇴를 맞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의약분업을 
계기로 표출된 것이다.
셋째, 국가가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을 요구받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지금 현
재 추진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사회의 잠재적 불
안 요인이다. 보건의료는 이러한 불안요인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안전
망의 한 축을 구성하지만 지금의 우리 보건의료 체계는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제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비효율의 요인이 너무 많다. 여기에는 많은 돈이 들어
갈 수밖에 없으며, 그 돈의 많은 부분이 음성적 기전과 비효율을 통해 의료공
급자, 제약회사, 의료기기업자에게 돌아갈 뿐이다. 외환위기 당시 차관을 매개
로 세계은행이 우리 나라의 보건의료 개혁을 주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
다. 

이러한 배경에 기인하는 국가와 시민단체의 개입은 적극적인 재정투자를 수반
할 수 없다는 데 핵심적인 한계가 있다. 국가가 그만한 재정 능력이 없다는 것
도 문제이지만, 정치적으로도 혁명정부가 아닌 다음에야 그 어떤 정치세력도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이념이 팽배한 현실에서 적극적인 재정투자를 추진하
기 어렵다. 토니 블레어의 '제 3의길'이 대처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민간 중심의 의료자원 구조
는 그대로인 채 정책 개입을 통한 자원의 흐름과 배분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국
가의 개입이 추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공급자의 경쟁
을 통해 질 높은 서비스를 유인하는 방식으로 규제와 개입이 지속될 수밖에 없
다. 이 과정에서 사보험의 도입과 대 자본을 중심으로 의료기관이 재편되는 상
황을 피하기 어렵다.


의사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의사들이 아무리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
회적 대세를 거르기는 힘든 상황인데, 지금과 같은 기조와 내용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의사들의 주장이 갖고 있는 성격으로 인해 상대편에게 이용당
하기 쉬운 처지이다. 의약분업에 대하여 지금의 의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
끌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의사들 앞에 닥친 수 없이 많
은 변화의 계기에서 자신들에게 좀 더 유익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기 위해 누
구와 함께 해야하는 지, 그리고 누구를 타격 해야할 지에 대하여 심사숙고해
야 한다. 지금처럼 같은 생각을 가진 의사이외의 모든 이들에 대하여 직설적이
고 거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안될 일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물리력의 행사를 
통해 의사의 이해를 얻기에는 지금의 구도에서 상대의 힘이 너무 막강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의사들은 지금 시장의 논리를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의 길게 보는 안목이 아쉽다.